그루밍하는 단이

온기 48번째 조각

by 비단결의 속도

단이는 침대 위에 누워
아무 일도 없는 얼굴로
자기 몸을 정성스럽게 돌보고 있었습니다.
앞발을 모으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천천히, 아주 성실하게.
겉으로 보면
그저 누워 있는 것 같지만
단이는 지금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를 정리하고,
몸의 감각을 확인하고,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일.
생각해보면
저는 늘 이런 시간을
‘아무것도 안 한 날’로 분류해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이를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삶은 분명히 진행 중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오늘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되는 날.
속도를 내지 않아도 되는 시간.
단이는 그루밍으로
하루를 정리했고,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마음속으로 따라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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