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다.

어른자식 초보 엄마

by 지담

한예종 2학년, 서울시향유스오케스트라 단원으로도 활동중인

그녀의 연주 끝에 드는

이 낯선 감정은.


거리감이다.


내 딸인데,

딸이 프로가 되어 무대에 서 있다.

내 보살핌없이 스스로 세상속에서 저 자리로 올라가 나를 객인으로 초대했다.


무대 뒤에서 내가 아이의 것들을 챙겨줘야 하는데

이것저것 '엄마엄마!'하면서 나를 자꾸 찾아야 하는데


나는 그저 관객으로서 그녀가 참여하는 무대를 즐기고

지인들과 맥주한잔 나눈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녀 혼자 차를 몰고 집으로.


그녀가 프로로 세상에 서 있다.

서 있는 그녀는 내 딸이다.

내 딸은 프로다.

이 삼단논법이 '어른이 된 자식'을 처음 겪는 내게 아직 낯설다.


거리감이다.


미국에서 이제 대학입학한 아들과 한참 대화를 나눴다.

그는 이제 대학교1학년, 동물을 공부하고 있다.


'엄마, 여기 대학졸업할 때까지 인턴 90시간 해야 한대.

학기중에 시간내기 어려우면 방학 때 여기 남아서 할 수도 있어.

그리고 그 중 괜찮은 곳에 취직할 수도 있고. 정말 멋지지?'


'너 한국에서 안 살거야?'라는 치졸한 질문을 하는 나와

'그건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니까 나중에 대화해도 되겠지?'라는 그.


이제 갓어른이 된 아들과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이 낯선 감정도


거리감이다.


그녀와 그는


아마츄어에서 프로의 길을,

아이에서 어른의 길을,

보호받는 데서 보호하는 길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이해시키는 길을,


내 품에서 세상의 품으로 걷고 있다.


내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다.

세상의 자식이다.


세상에 쓸모있는 인간으로 서야 할

세상의 자식이다.

그 한 인간의 쓰임을 위해

내게 잠시 보호와 양육의 의무가 주어졌을 뿐

내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다.


일치감치

세상의 손으로

세상의 정신으로

세상의 길로 따르도록 안내자역할에 충실했던 나였기에


이제 갓 어른의 길에 접어든 그녀와 그의 걸음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지만

이 느낌의 표면에는

분명 낯선 거리감이 자리한다.


이 거리감은

나 역시 나로써 앞으로의 길을 찾아가라는 메세지다.


무언가가 비워지면

반드시 무언가로 채워지고

누군가가 떠나면

반드시 그 자리에 누군가가 다가온다.


아이가 떠나고 어른이 내 앞에 서 있다.


어른이 된 자식에 아직 낯선 이 어른은

어른으로 자식을 대하는 거리감에

점점 익숙해지겠지


잡은 손의 힘은

서로를 지지하는 정신의 힘으로 옮겨가야 할 것이고

걱정스런 말은

사회적 언어를 섞어 그들을 대해야겠지

보호자가 아닌 동반자로

가르치는 자가 아닌 보여주는 자로

이해시키는 자가 아닌 이해하는 자로

앞서 걷는 것이 아닌 나란히 걸을 줄 아는,


모두에게 낯설게 들어선 이 관계의 재정리에서

나의 정신은 나에게 명령한다.


닮고 싶은 어른이 되라고.

보탬이 되는 어른이 되라고.

너 역시 세상에 쓰임있는 사람으로 보여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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