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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Oct 16. 2024

난 미안하지 않다.
나와 나눠야 한다.

마당이 얼굴을 드러냈다.

* 이 글은 1달만에 도시생활을 접고 양평으로 이주한 저의 리얼일상을 이사준비부터 듬성듬성 적어내려 가는 연재브런치북입니다. 헌집과 헌나를 변신시키는 과정을 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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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주의 기록>


핑크뮬리를 주문했다. 

보기만 했지 키워볼 생각조차 못했던 식물이다. 


이쁜 아이를 보는 것과 아이를 이쁘게 키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듯이 이쁜 뮬리를 보는 것과 뮬리를 이쁘게 키우는 것 또한 다른 차원이겠지만 

나는 요즘 마당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사실 엄청난 노동이다.ㅠ.ㅠ)


내부정리가 끝난 후 밀림같은 마당에 발을 대딛으며 처음으로 결정한 것이 일단 나무를 베자! 였다. 10년이상 방치되어 온통 숲을 이룬터라 집으로 들어오는 해를 가리고 도대체 마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연못이 있다고 하는데 어디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낙엽과 풀과 이끼가 마당을 뒤덮고 있다. 


이렇게 밀림같았던 마당이었다. 있다고 들었던 연못부터 그 무엇도 눈씻고 찾아봐도 없고 아무도 손보지 않았던 마당. 이때만해도 이렇게 노동의 강도가 셀줄 몰랐다.


사실 '나무를 벤다'는 것에 주춤거렸던 것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죄책감이었다. 지금까지 '나무를 보호하라'는 것만 알았지 '나무를 베는' 행위는 나쁜 짓이라 여겨왔기 때문이고 둘째, 나무를 베는 것은 전문가들이나 나뭇꾼의 일이지 내가 감히 할 일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3이 모여 회의를 한 결과,

첫번째 주춤거림은 나무가 집을 축축하고 차게 만들기 때문에,

그리고 내 시야를 나무가 온통 가리고 있기 때문에 베기로 했고

두번째 주춤거림은 '이 재미난 놀이를 돈까지 줘가며 남을 시킬 없다!'로 결론났다. 


가진 거라곤 긴장대가위끝에 달린 톱뿐이었지만 우리는 재미나게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오늘도 내일도 매일 한두그루씩. 매일 나무를 베고 다듬고 마당의 풀들을 걷어내고...


처음엔 밑둥가지치기만 했다가 나중에는 1m남기고 베어버렸다. 다시 이쁘게 키우려고... 시야가 트였다. 아래 사진처럼 연못도 드러났다


그렇게 1주일이 넘도록 톱과 가위, 곡괭이, 비질을 해댄 덕에 시야가 트였다. 죄책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마음때문에 완전히 싹뚝 자르지는 못하고 밑둥만 남기거나 1.5m정도의 높이까지만 가지를 쳐냈는데도 시야가 확!! 뚫렸다. 그리고 며칠 뒤 위쪽도 잘라냈고 마당의 잡풀들을 거둬내니 연못도 드러나고 돌들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생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당의 눈코입이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드러냈다.


처음 이 집을 지은 이는 돌들로 경계를 만들어 이쁘게 가꾸어 온 것 같다. 밀림숲을 걷어내니 돌들이 드러나고 돌에 쌓인 이끼까지 걷어내니 조금 모양새가 나오긴 했지만 내가 바라는 마당은 경계없이 길죽한 잔디마당이다. 그 가장자리로 하늘하늘한, 꽃인데 꽃이 아닌 듯 보이는 식물들이 바람에 이리 끌리고 저리 쓸리는 정원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생김새를 드러낸 마당에 박혀 있는 경계석들을 다 뽑아내기로 결정! 


마당에 구획을 나눠두었던 돌들을 다 뽑아내기로 결정. 돌뽑다가 발견한 개미집


돌들을 치우다 만난 수십, 십수개의 다리달린 녀석들은 나의 곡괭이질에 줄행랑을 친다. 

내가 너를 해치려는 것이 아닌데 왜 이리 꼬리도 없는 녀석이 꼬리감추듯 도망치는지.... 


자기 모습 들킬까 명품으로 휘감았던 여성도 기억나고 

자신의 옹졸함이 들킬까 배포있게 계산을 하던 사장님도 기억나고 

자기인격 탄로날까 일그러진 표정속 근엄하게 억지웃음 짓던 나이많은 어떤 공무원도 생각났다. 


보여줘도 되는데... 

드러나도 괜찮은데... 

아무도 해치지 않는데... 

인간과 벌레가 별반 다를 것도 없는 것 같고 

나도 수많은 인간벌레 가운데 한명이었던 그 때도 떠올랐다.


근사하게 드러난 개미집에는 많이 미안했다. 

이렇게 집짓고 사느라 애썼을텐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산다는 것은 이런 불벼락을 가끔 맞는 것이라는 걸 너도 이 참에 배워라. 

편하게 잠자던 지렁이와 개구리들도 소스라치게 놀라 어디론가 숨고...


나는 도망치는 벌레와 개미, 지렁이, 개구리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나도 너처럼 세상속에서, 무엇으로부터, 누군가로부터 도망친 적이 많았단다... 

무엇이 두렵고 무서워서였는지 모르지만... 그럴 필요없단다. 

아무도 널 해치지 않아...

그저 너는 너의 삶을, 나는 나의 삶을 일구는 중이니 천천히 다른 곳으로 이주하렴.'



아무튼 마당을 파헤치는 일은 시작전의 겁을 완전히 없애며 서서히 재미로 승화되었다. 


자기 땅으로 자기 모습으로 저렇게 웅장하게 위로 옆으로 뻗쳐 서로 경쟁하듯 자라온 것들인데 인간인 내가 이 곳에 터를 잡았다고, 자연의 것인데 인간이 만든 조건으로 이 땅이 내 땅이라고 주장하며 그들의 거주지를 해치는 것이 너무나 미안했지만

아니다!

하나도 안 미안하다!


도시에서의 나무는 인간에 의해 하나의 부속물로 인간에 의해 사들여져 심겨져 미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여기의 나무는 '인격화'되어 이 땅을 주인처럼 수십, 수백년간 누려왔으니 인간과 동격이고 따라서 나와 너는 동격인 것이다!


그러니, 

나와 나눠야 한다.

자기들이 나보다 키가 크다고 하늘을 독차지해서는 안된다. 

나와 나눠야 한다.

자기들이 먼저 밟았다고 땅을 독차지해서는 안된다.

나와 나눠야 한다.

자기들이 먼저 터를 잡았다고 넓게 뻗치거나 깊게 짱박혀 움켜쥐면 안된다.

나와 나눠야 한다. 

터잡고 있던 모든 생명체들은 이 자연을 나와 나눠야 한다.


너희들의 높은 키가

내 생을 보낼 나의 거주지를 차고 축축하게 하니 너희들의 키를 줄여야 할 것이며

너희들이 시간속에 자라게 한 잔가지들이

수많은 벌레들로 날 위협하니 너희들의 팔들을 잘라야 할 것이며

너희들이 하늘을 가려 빛을 내게 오지 못하게 하니

이 어두운 공포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너희들은 뿌리부터 다시 모습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나에게 너와 경쟁할 자유를 달라.

애초에 이 땅의 주인은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아니었을 것이다.

너는 너의 사회에서의 룰대로 값을 치르고 여기 터를 잡았을테고

나 역시 인간사회에서의 룰대로 값을 치르고 여기 터를 잡은 것이다.


그러니,

그 누구의 땅도 아니었던 이 곳에서 우리 함께 살기 위해서는

너 역시 새롭게 진입한 생명체인 나와 경쟁하여

더 푸르게. 그리고 서로 나눠서 사는 법을 익히라!

그것이 내가 너와, 네가 나와 함께 공존하는 삶일테니.


너도 내게 당당하듯

나도 네게 미안해하지 않고 당당하리라.


그리고 약속하지.

너희들은 나로 인해 더 곱게.... 자랄 것이다. 

더 일찍 해를 얻을 것이고 더 늦게까지 해를 누릴 것이다.

아래가 그늘져 위로만 경쟁적으로 치올렸던 너희들이 아니라 골고루 땅을 양분하며 옆으로, 아래로 이쁘고 곧게 너희들은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1주일을 넘게 꼬박 

나무의 침범에

돌과 이끼와 낙엽의 범람에

그 속에 파묻혀 있던 온갖 쓰레기들의 부패에 

제 모습을 잃었던 마당이 

이제 얼추.... 자신의 모양새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이제 마지막 벗겨내기를 하고

뽑아낸 돌들을 다시 원하는 위치로 재배치시킨 후 그 사이 핑크뮬리를 파종하려 한다.

그렇게 조금씩...그리고 나머지는 내년 봄에...


서둘렀다.

추워지기 전에 사람사는 꼴은 만들어야 해서...

그리고 해냈다...

직.접.


아직 풀도 더 베어야 하고 나무도 다듬어야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참 잘해왔다.



 [건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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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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