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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Oct 13. 2024

공무원에게
존경과 감사가 느껴지다니...

시골생활 10여일째.

10월 1주의 기록>


공무원에게 존경심이 인건 처음이다.


공무원. 이라고 하면 내겐 늘 무표정하게 일로만 대화하는 사람의 느낌이다. '행정', '법', '제가 어떻게 해드릴 건 없습니다.' 내지 여기로 저기로 전화를 돌리거나 여기 가봐라, 저기 가봐라.. 뭐, 그런 인상밖에 없다. (사실 내가 관공서를 방문할 일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어제 면사무소에 민원을 넣으러 갔다. 난생 처음의 민원이다. 집 길가 맞은편 산의 나무나 너무 많이 자라서 우리 집쪽으로 줄기와 잎을 늘어뜨리고 있다. 관리가 안되어서 너무 높이 자랐고 너무 무성하다. 때문에 우리집에 해가 들지 않고 비탈에 자란 나무는 전선주를 감고 있으며 어떤 것들은 이미 고목이 되어 있고 또 혹여나 집쪽으로 나무가 무너질 수도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몇장 사진을 찍어 면사무소를 찾아 벌목을 부탁했더니 '잠깐만 편히 앉아 계시라'고 하고선 이사람 저사람이 의논을 한 후 담당자를 연결해줬다. 사실 방문을 하면서도 내 속에는 '해줄까? 아이고..' 싶은 심정이 가득 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며 몇번을 방문해야 할지... 그냥 일단 말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이 컸다. 그런데 지적도를 떼어주고는 '이 땅이 국유림이 아니라 사유림이라 개인의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드릴 수는 없다.'고 운을 띄우더니 '그래도 이건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하며 진짜 계속 고민을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는 일단 한전에 연락해보자 하시고 이장님이나 마을의 연세 있으신 분께 여쭤보면 혹 땅주인의 연락처를 알 수도 있을거라고 하면서 연락처만 알아오시면 자기가 전화를 대신 넣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번거롭게 오지 마시고 자기에게 연락하라며 직통번호를 포스트잇에 적어주고는 또 당분한다. 예산은 충분히 있으니까 꼭 땅주인 연락처만 알아오시라고, 그러면 자기가 일을 처리해주겠다고.


오히려 이렇게 나무가 무성하도록 몰랐던 자신을 반성하듯 우리에게 연락처만 알아오라고 부탁하는 느낌이었다.....

우리집쪽으로 쓰러질 듯, 전선주까지 감고 있는 나무들


아...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를 정확하게 긋고는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도우려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사진상으로도 위험목으로 보이니 자기도 우리집을 방문해서 눈으로 확인하겠다고까지 한다. 


'왜 이렇게 친절하세요?' 나도 모르게 내 입으로 이 말이 나왔다.

그는 오히려 되묻는다. 

'공무원이니까요.' 한다.

'여기 오시는 모든 분들이 다 잘 사셔야 하잖아요. 제가 그걸 돕는 거고.' 

그냥 당연한 걸 묻는다는 식으로 툭! 던진다.


아.....


이후 우리는 연락처를 알 길이 없어서 일단 땅주인에게 서신을 보내기로 했다. 나무사진을 보내야 하는데 집에 컬러프린트기가 없어서 면사무소를 방문, '우리가 이렇게 서신을 보내려 하는데 한 번 봐달라' 했더니 자기가 다시 작성해 주겠다고 하며 약간의 형식을 갖춘 친절한 표현으로 서신을 써주었다. 대신 써주고 프린트까지 해서... 이 과정에서도 이 분의 친절은 또 감동이었다.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제가 조금 고쳐도 될까요?'라고 우리로선 너무나 감사한 일인데 오히려 겸손하게 계속 우리에게 물었다. '제가 이 사진과 파일을 제 컴퓨터에 보관해도 될까요? 자료를 저장해놔야 또 번거로운 걸음 안하시니까요' 한다. 


그리고 2일 뒤 마당에서 나무를 다듬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우리집을 방문한다. 너무 해맑고 진지하고 성실한 분답게 계속 걱정을 해준다. '위험목이 맞네요. 이나무 저나무 쳐내야 할 것 같고... 아.. 어쩌지... 혹 땅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제가 어떻게든 불편을 없애드려야 하니까 여러가지 법도 찾아보고 여쭤보고 곧 다시 또 올께요.' 한다.


이 공무원만 유독 친절한 성향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아니었다.


이 곳은 분리수거가 너무나 철저하다. 대충 종량제봉투에 넣어 버리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플라스틱의 비닐까지 모두 벗겨서 분리한다. 나도 나름 분리수거는 철저하게 하는 편인데도 이 곳은 너무 철저하다. 면사무소에서 마대를 사서 다시 분리해야겠다 싶어 방문했는데 분리수거 하나 알려주시느라 2분이 아주아주 철저하고 꼼꼼하게 작성해주신다. 전구를 모두 교체하는 바람에 기존의 전구를 모두 버려야 하는데 서울에서는 그냥 내놓으면 관리하는 분이 알아서 버려주셨다. 그런데 여기서는 내가 직접 해야 한다. 어디에 버리는 지 몰라 물었더니 따로 버리는 곳이 있다며 또 친절하게 거기까지 직접 안내해 주신다. 계속...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면서....


또, 농기구를 사러 농협영농조합장을 방문해서 이것저것 산 뒤에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직원이 내가 산 상자를 들고 따라 나온다. '아니, 제가 들어도 되요. 괜찮아요.' 했는데 '아닙니다. 제가 차까지 들어드릴께요.' 한다. '전 차가 없어요. 자전거 뒤에 실으려구요.' 하니 직접 실어주셨다. 농기구를 고를 때도 그 넓은 곳에서 '이건 어디 있어요? 이건 어떻게 쓰는거예요?' 궁금한 게 많은 나인데 하나하나 일일이 너무 상냥한 미소로 다 알려주신다.


난 여기저기서 계속 물었다.

'여긴 왜 이렇게 다들 친절해요?' 

'원래 모두에게 이렇게 친절하세요?'

'다들 늘 이렇게 웃으면서 말씀하세요?'

'너무 감사해요. 정말 너무 친절하셔서 제가 감동받았어요.'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이런 말들이 나오다니...


난 그들의 한결같은 미소띈 친절에 놀라고 

이런 말이 서슴없이 나오는 상황에 놀라고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이상해서 그들은 놀란다.


환경이 사람을 바꾸는 게 맞다.

공무원이라고 다들 꽉 막히고 답답하고 무표정한 게 아니었다. 

직업이 주는 개인의 정규분포속 이미지는 분명 있을 테지만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만난 '공무원'이라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표정만 친절한 국회의원이나 시의원, 표정조차 없는 동사무소의 직원, 잘난 체를 감추며 애써 경계를 두고 있는 교사들뿐이어서 내 인식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껏 만나왔던 공무원들의 성향이 정규분포일까. 

아니면 원래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자들이라 다 친절한데 유독 내가 만나온 공무원들만 무표정한, 오히려 정규분포의 극단치에 존재하는 성향들이었을까.


시골이라 다 그런 건 아닐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 곳에서 만난 거의 대다수의 분들이 친절하고 '여긴 사람들이 좋아요.'라는 말을 수시로 내뱉는 것을 보면 '환경'이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좋은 사람'이 많은 환경이니 누구를 만나건 

'믿음'이 우선 마음에 일 것이고 

'믿음'이 이니 '미소'가 나올 것이고 

'미소'가 나오니 '관계'의 결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이렇게 한사람한사람... 

모두가 친절한 동네...


이 작은 마을은...

이렇게 친절과 감사가 숲이 품은 들판 가득 들깨향만큼 가득한 곳이다...



유독 사람만나기를 꺼려하고 혼자를 좋아하고 꼭 해야 할 말 아니면 하지 않고 살던 내가 이 곳에서 참으로 내게 맞는 정서의 옷을 걸친 느낌이다. 살짝 나온 배에 힘주며 입은 근사하지만 불편한 청바지를 벗고 고무줄 트레이닝복을 입은 그 편안함....


사람이 주는 힘은 아주 강하다.

우리가 모두 느끼고 싶어하는 감사와 사랑, 친절, 배려와 같은 가치들은 엄청난 스펙의 대단한 사람들의 연설이나 강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서 오가는 눈빛과 손짓과 말투에서 전해지고 배워지는 것이다. 


애초에 기대했던대로 이 대자연은 수많은 선생들이 날 기다렸다.

서서히 내게서 힘을 잃어가던 미소와 친절, 배려, 겸손과 같은 인간의 본성적인 덕(德)을 나는 이 곳에서 다시 배우고 채우고 쌓이게 할 수 있겠다... 짙은 사람의 향... 그 향이 내게서도 흐르길... 그렇게 흘러 넘치길...


이 작은 마을의 시골 공무원, 농기구파는 할아버지, 수도 고쳐주러 오신 철물점 사장님, 전기봐주시던 사장님.. 가지를 한아름 안겨주신 아랫집 아저씨, 불편한 것은 없냐고 매일 물으러 올라오시는 마을 입구 회장님, 고개를 떨며 날 보면 '어디가?'하고 물으시는 할머니...

이들의 힘은.... 너무 강하게 향기롭다...


억지로 바꾸려, 

억지로 짜내려, 

억지로 긁어내려 했던 

내 안의 고름과 상처와 부스럼들이

이들의 눈빛과 말투와 툭툭 던지는 손짓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이제... 이 곳에 온지 10일 겨우 지났을 뿐인데.....



[건율원 ]

https://guhnyulwon.liveklass.com


[지담북살롱]

책, 글, 코칭으로 함께 하는 놀이터,

https://cafe.naver.com/joowo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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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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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5:00a.m. [Encore! '엄마의 유산']

금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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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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