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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Oct 02. 2024

상상속의 집,
그러나 현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꼴

나는 시골로 갑니다!

* 이 글은 1달만에 도시생활을 접고 양평으로 이주한 저의 리얼일상을 

  이사준비부터 듬성듬성 적어내려 가는 연재브런치북입니다. 

  헌집과 헌 나를 변신시키는 과정을 담아냅니다...


[9/6-7일의 기록]


시골(사실 그닥 시골도 아닌데), 여하튼 시골로 이주를 뚝딱 계획하고 진행시켜가는 과정은 신기함의 연속이며 이것이야말로 '끌림'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싶은 심정의 강한 압력에 나는 매일이 흥분상태다. 


앞집보다 2억이나 싸게 내놓은 것도 있지만 케냐에서 30년간 사시던 선교사 부부가 나의 이쁜 집을 너무 탐내 바로 당일에 계약을 했고 그것도 내가 말로만 툭 뱉은대로 (나는 아무런 근거도 행동도 없는 상태에서 '9/30일 시골로 갑니다' 라고 독서모임에서 뱉은 상태) 9월 27일 전에는 이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한달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살집을 구하고 옮기는 것은 무리수인데도 나는 '흐름'에 따르기로 하고, 이쁜 내 집을 이렇게 이쁜 분들과 인연을 맺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컸기에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다. 지난 글에도 썼듯이 그렇게 내가 살 곳도 딱!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믿음이 현실이 되는 경험이 숱하게 많은 나인지라 이번에도 그렇게 믿고 가는 걸로

합리보다는 비합리를, 비합리는 공리를, 공리는 신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을 믿기에 

그 방향으로 나를 움직였다.


신기함은 캐냐선교사부부뿐만이 아니다.

하루 날잡아 양평에 집을 보러 갔고 그 중에 내가 원하는 집이 있을거라 믿었는데

첫번째로 본 집이 딱! 내가 원하던 집이다.


"보여드리려 했던 집 보시기 전에 이 집 한번 보실래요? 사람살기 좀 그렇긴 한데 구조가 너무 좋아서. 굉장히 멋진 집이었거든요. 가는 길이니까 한번 보고 가시죠." 부동산 사장님의 말에 '왠지 느낌이.. ㅋㅋ 좋았다!' 그렇게 우연히 들른 집인데 이 집이라면 건율원을 본격적으로 오프라인으로 만들고 싶다는 머리속의 상상이 이 곳이라면 실체화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나의 상상 속의 집은

거주와 건율원이 한 곳에 있지만 분리가 가능한 곳이면 좋겠다 싶었고

뒤로는 산. 옆으로도 물이 흐르고 앞과 위로는 그 어떤 방해물도 나와 하늘 사이에 놓이지 않았으면 싶었고

도로에서 그다지 많이 들어가지 않길 바랬고

다 똑같이 지은 전원주택단지는 싫고 원주민과 새로온 이주민이 서로 군데군데 소통되며 사는 곳이었으면 싶었는데


이 집이 그랬다.

아니, 이 집이 놓여있는 환경이 그랬다.

그나마 청소하고 찍은 사진, 페인트칠도 다시 해야 하고 밀림이 된 마당도 다 새로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중정을 사이로 건율원(나의 연구실)과 거주지로 구분되는 두집같은한집.

가운데 중정을 두고 좌우로 분리되어 있으니 거주와 건율원(게다가 층고가 무려 4미터!!!)이 동시에 활용가능한 것을 시작으로 집앞을 나가 왼쪽으로는 원주민들의 거주지가 오른쪽으로는 드문드문 한적하게 이쁜 이주민들의 주택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바로 앞에 하루 4번 오는 버스정류장이 있고 집에서 조금 내려가면 아스팔트도 잘 깔려 있으며 시내까지 자전거로 20여분이면 도착하는. 


집은 지붕과 창들과 벽면과 벽면들로 분할된 공간의 조합이 아니다. 집은 그 이상이다. 집은 다른 살아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견고한 물질적 외관과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을 갖고 있고, 그 안에 자기만의 내면을 갖고 숨을 쉰다. 

집은 그것이 자리잡고 있는 토지의 생김새, 그 견고한 형태 속에 깃드는 빛과 바람, 침묵, 그 외관을 감싸는 푸른 하늘과 땅, 주변의 활엽수들, 지붕의 선 너머로 펼쳐지는 산의 능선들에 의해 마침내 완공된다. 집은 온갖 크고 작은 주거와 관련된 욕망과 필요에 부응할 뿐만 아니라 삶의 취향과 리듬을 만들고 몽상과 내면의 기질을 배양하며 인생을 풍부하게 만든다(주).


집꼴은 형편없다. 

수년간 방치된 듯, 결코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실제 동네사람들이 이 집을 누가 매입할까? 했단다) 집이었지만 구조와 자재가 튼실하면 다른 것은 내가 손보면 그만이다. 


중정을 끼고 'ㄷ'자로 짜여진 튼실한 콘크리트 건축물,

게다가 층고 4미터의 방은 바라던대로 통창으로 시원하여 내가 바라던 건율원 이미지를 담을 수 있다.

층고가 높을수록 창의력이 솟구친다는 것은 이미 이론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니

이 층고가 나와 협력하여 창발시킬 수많은 창조들도 맘껏 기대해본다.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집'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대궐같은 집은 아닐지언정 나의 삶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내겐 꿈이었다. 그 기운과 기세를 산과 자연이 품어, 뿜어내는 그런 집이 내 집이길 바랬다. 그렇게 나의 내면과 섞여 내 삶의 리듬을 만들며 나를 배양시켜줄 그런 곳이 이 집이라면 가능하겠다 직감했다면 말이 되려나.


아무튼 형편없는 집이어서인지 주인이 급급매로 내놓았으니, 

살던 집을 2억이나 싸게 내놓는 베짱에 대한 보상이 엄청 싸게 이 집을 구한 것이라 여긴다.

신기!!

 

뿐만 아니라 양평은 조정지역이 아니라서 취득세도 싸고 

많은 짐을 보관할 창고가 필요했는데 구석구석 공간이 많아 해결됐고

연못을 만들려 계획했는데 중정의 작은 마당이 연못(세입자가 흙을 덮어놨다는)인데다가

마당끝에도 또 작은 연못이 있단다.(아직은 흙과 낙엽으로 덮여 볼 수 없다.)

말도 안돼!!!

암튼 이래저래 지출도 줄이게 되고 날짜며 공간이며 원하는 스펙이며 다 순리대로 착착 맞아간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 

아니, 현실의 계획은 전혀 없는데 상상속의 모든 것이 순조롭게 현실로 드러난다.

혼란과 정리의 반복에서 난 일부러라도 혼란을 좀 당겨써야할 판이다.

순조로움이 영원하지 않으니까 미리 혼란을 당겨써서 혼란의 총량을 줄여야겠다. 

지금부터 오는 모든 혼란은 그래서 땡큐다!!! 

이사갈 때까지 순조로우라!

따라서, 작은 혼란들이여 어서 오라!!


나는 나에게 다소 야박하게 굴 때가 있다.

길게 시간을 허락하지 않고 딱 정해진 시간 안에 그것을 해결하게 한다.

이사날까지 13일정도 남은 상태, 게다가 추석연휴까지 끼어 있어 '이삿짐센터가 있을까?' 싶었지만

늘 그렇듯 '있지. 대한민국에 이삿짐센터가 얼마나 많은데.'하며 오전 9시 땡! 하자마자 이삿짐센터 몇군데 연락. 11시부터 줄줄이 방문견적을 받으러 왔다.


앗싸! 혼란 시작이다! 

하나같이 맘에 들지 않고 하나같이 너무 비싸다.

정신이 혼란스럽다! 땡큐땡큐다! 

뭐 하나는 속을 썩이는 게 정상이지.

그래서 그냥 젤 싼 곳을 정해버리고!


젤 중요한 입주청소.

정말 내부가 사람 살 집이 아닌지라 입주청소는 최고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집을 통째로 세탁기에 넣어 살균소독까지 한 후 햇볕에 바짝 말려야 할 판이다. 


리모델링까지는 못해도 살릴 수 있는 것은 죄다 손봐서 살려야 한다.

이 재미를, 내 것을 만들어가는 재미를 돈으로 한방에 해결하는 것은 죄다.

수전과 같은 소모품들은 죄다 모두 새것, 또는 기능좋은 것들로 바꿔야 한다.

인생의 2번째 혁명기인 이 여정을 죄다 내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내 인생을 내 손에 제대로 쥐어줘야 한다. 


그렇게 이삿짐센터는 젤 싼곳, 입주청소는 최고 전문가에게 맡기는 걸로 하루만에 정해버리고!


이제 매일 2시간씩 짐정리 시작하며 혼란을 당겨쓰기로 했다.

여기서 정리해가면 이사가서 정리가 줄어든다.

버릴 거 다 버리고 수년간 살면서 흩어진 모든 살림도구들을 구분지어 정리할 것!


사실 나는 정리의 여신이다. 

단순하게 깔끔하게 보여지는 이면에 차곡차곡 숨겨진 짐이 엄청나다.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한 섹션씩 모든 짐을 꺼내며 한탄하고 있지만 단 하나의 명령!


버려라! 다 버리자!


그렇게 하나의 섹션마다 '버리는 놈 / 데려갈 놈'을 구분지으니

집안 곳곳에는 밖으로 토해진 짐들이 이제야 꺼내준 내게 보란듯이 너저분하게 깔려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매일매일 해야할 것이 계속 쏟아져나오니 너무너무 바쁘다.

혼란을 당겨써도 너무 당기나 싶을 정도로 매일 피곤과 짜증에 시달린다.


그래도

지금은 이런 모양새로 이런 짜임새로 지나야 하는,

깔끔말고 너저분하게 지나야 하는 혼란의 시간.

피할수도 대충할수도 남의 손을 빌릴수도 없는

오로지 내가 감당하고 해내야 하는 노곤의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란과 노곤의 밀도가 강한 압력으로 폭발할 때쯤

주루룩 눈물을 흐르게 하는 소중한 발견의 시간.


딸아이에게 입히고 딸이 딸을 낳으면 입히게 하려고 고급스러운 천에 디자인을 직접 했었던 작은 드레스.

드레스 입고 이쁘게 크길 바랬던 딸은 지금 한예종 4학년, 

음악을 전공하며 드레스입고 악기를 연주하는 24살 어른이 되었다.


삐뚤거리는 글씨로 '내가 좋아하는 동물'로 파충류를 그렸던 어린 아들의 낙서 발견!

동물밖에 몰랐던 아들 역시 미국에서 수의학을 전공하는 꿈의 길로 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아이도 신기해한다.ㅎㅎ


시간의 뚜껑을 열고 감미로운 그 당시를 음미한다.

엄마와 너희들이 만나 우리 이렇게 20년이 넘도록...

우리.. 참... 잘해왔구나.....


계속 눈물이 흘렀고

지금 이 글을 쓰는데도 목이 메인다....


20년이나 흐르다니......

그렇게 너희들이 꿈의 길로 가듯

엄마도 엄마의 꿈의 길로 간다고......

그렇게...

시골로 간다고....


(계속 눈물이 나네.. 어쩌지?)

드레스 입고 찍은 딸아이 돌사진(사진이 조금 바랬다.)


1년이 지나서는 아랫단을 덧대어 입혔다. 이 사진은 둘째(리건이) 돌 때, 그러니까 1년 뒤





주> 고독의 권유, 장석주, 다산책방


[건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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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북살롱]

책, 글, 코칭으로 함께 하는 놀이터,

https://cafe.naver.com/joowonw


[지담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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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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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5:00a.m. [Encore! '엄마의 유산']

금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토 5:00a.m. [지담과 제노아가 함께 쓰는 '성공']

일 5:00a.m. [Encore! '엄마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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