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달만에 도시생활을 접고 양평으로 이주한 저의 리얼일상을 이사준비부터 듬성듬성 적어내려 가는 연재브런치북입니다. 헌집과 헌나를 변신시키는 과정을 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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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하는 오늘(10/20)은 지난 9/20일 양평으로 이사한지 딱 1달되는 날이다.
벌써... 1달... 시간이 날 버리고 내빼듯 지난 1달이 하루처럼 빨리 지나갔다. 얼추 사람사는 모양새로 집을 만들어놓고 나니... 사고 싶은데 사지 않는, 사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
사실 사야할지 말아야할 지도 잘 모르겠다.
없어도 사는데는 지장없고 얻을 수 있을 것도 같고.
있으면 좋은데 없어도 별 상관없는...
하지만, 나는 태초의 신이 한가지 질료안에 있으면서도 만물이 서로 반목하며 추위는 더위와, 습기는 건기와, 부드러움은 딱딱함과, 무거움은 가벼움과 싸우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해 종지부를 찍겠다고 선언(주1)하고는 '자연'이라는 신을 만들어 모두 정리, 구분시킨 것처럼
이 작은 우리 집의 내부와 외부가 서로 반목하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여기는 이것이, 저기는 저것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매일 궁리가 잦다.
여하튼, 지금 이 집에 필요한 것들이 대충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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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가 필요하다.
난 지금껏 소파없이 지냈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줄곧 우리집 거실의 메인은 책상이었지 소파가 아니었다. 게다가 나의 취향은 아무 것도 없이 그냥 넓은 그 자체를 좋아하기에 가구가 거의 없는 것을 선호했다.
그런데 여기는 사람들이 자주 오는데 앉을 곳이 없다.ㅠ.ㅠ
소파.
소파 아래엔 러그를 깔아야겠다.
헌집인데 바닥공사를 하지 않아 바닥이 보기 싫은 이유도 있고 러그없이 소파만 달랑 놓기엔 또 허전하기도 하고.
소파, 러그.
캠핑의자가 필요하다.
캠핑때문이 아니라 마당에 좀 편하게 앉을 의자가 필요하고 사람들이 오면 몇개씩 꺼냈다 넣었다 하기 좋은 의자가 캠핑의자같다. 캠핑이란 걸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떤 의자가 좋은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예전에 자주 가던 카페 테라스에 캠핑의자를 한쪽에 세워놓고 편하게 펼쳤다 접었다 하던 것이 기억나기도 했고 그렇게 자연에 어울리는 자연스런 의자가 좋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파, 러그, 캠핑의자.
자전거가 더 필요하다.
현재 집에 자전거가 2대 있다. 차가 없는 나의 교통수단이다. 그런데 우리집에 사람들이 오면 자전거로 동네 한바퀴, 강가를 달리는 이 짜릿한 쾌감을 선물하고 싶다. 자전거 2대로는 모자라니 2대 정도 더 구비해놓고 싶다. 난 자전거도 내가 직접 사본 적이 없어서 뭘 사야할 지, 어느 정도 가격대가 그냥 동네마실, 나들이다니기에 좋은지 잘 알지 못한다. 대충 사도 되는걸까?
소파, 러그, 캠핑의자, 자전거.
그리고 제일 하고 싶은 것은 책장을 직접 짜서 4m높이를 자랑하는 서재의 한쪽 넓은 벽을 책으로 다 채우는 것이다. 후다닥 이사를 하는 바람에 이사전날 도배를 했으니 바닥이나 책장을 짜서 앉힐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거니와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면 있던 책장에 펼쳐놓은 책들이 한곳으로 모두 모아지고 공간은 더 넓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소파, 러그, 캠핑의자, 자전거, 책장.
이제는 얼추 모습을 드러낸 마당.
일단 시원하게 시야를 확보해줬고
연못도, 파묻혀 있던 돌들도 드러났다.
우리집마당은 자세히 보면 2층으로 되어 있다.
1층은 돌로, 2층은 잔디로 깔아볼 예정이라 필요한 게 너무 많다. 수년간 손보지 않아 낙엽과 이끼들로 뒤덮인 밀림바닥을 함께 솎아내줄 사람이 필요하고 길과 마당의 경계가 되어줄 소철이나 철쭉과 같은 울타리나무가 심겨야 하고 소나무 밑에는 수국을, 비탈진 곳에는 당귀랑 도라지, 취나물 등을 심고 연못 바위 뒤쪽에는 고추, 상추, 부추, 대파와 같은 것들을 심어 자급자족해야 한다.
소파, 러그, 캠핑의자, 자전거, 책장, 사람, 소철, 수국, 나물들...
그리고 대문이 필요하다.
사실,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은 따로 있어서 대문은 그냥 모양새로 이쁘게 놓으려는 의도외에 기능은 없다. 그래도 저어기 마당끝쪽, 그러니까 마당이 시작되는 곳에 하얀색 대문을 하나 세워두면 좋겠다.
소파, 러그, 캠핑의자, 자전거, 책장, 사람, 소철, 수국, 나물들, 대문
아..... 참!!!
이 집엔 우편함이 없다.
세워둘 수 있는 우편함이 필요하다. 이런 건 또 어디서 사야 할지... 우편함이 딱 세워지면 '이제 이 집에 사람 삽니다!!!'하고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소파, 러그, 캠핑의자, 자전거, 책장, 사람, 소철, 수국, 나물들, 대문, 그리고 우편함.
옥상에 루프탑도 만들고 페인트칠을 해서 장식도 하고 싶고
집안밖으로 근사한 그림들도 걸고 싶고..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은 많지만 지금 당장 필요와 불요의 경계에 놓인 것들만 나열해봤는데
그 중에서도 굳이 꼭 필요한 것이라곤 우편함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것들이다.
자... 이제 어쩔 것이냐....
에리히프롬처럼 소유냐 존재냐.를 따지고 소로우처럼 '자발적 가난'을 택한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것이 넘치도록 있었던 환경에서 50여년을 살았던 내게 그렇게 가혹하게 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껏 그래왔듯이 아껴쓰고 나눠쓰고 없으면 없는대로 살아왔던 것을 지키면서 더 갖지 않으려, 당장 필요치 않은 것은 기다리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얻고 없으면 대체할 방법을 고안해내는 정도의 노력은 하고 있다.
이 곳으로 터를 옮기면서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버렸는지....
생각만 해도 죄를 지은 것 같아 움찔거린다.
여기서는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더 단순하고, 정갈하고, 소박한 삶을 만들어가려 한다.
나의 '소박'이 누군가에게는 '사치'일수도, '빈곤'일수도, '허세'일수도, '주책'일수도, '유난'일수도 있겠지만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지난 나와의 비교에서 적어도 나는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더 갖지 않으려 시도하는 마음만은 단단하다.
가진다는 것.....
소유한다는 것에 이제 '필요'이상의 가치를 두지 않는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들은 필요와 불요의 경계에 놓인 것들이며 까딱 잘못하다가는 내가 오히려 그것들을 떠받치고 살게 할 충분한 이유를 지닌 것들이다. 마치 너무 좋은 차를 사서 차가 주인인지 사람이 주인인지 모르는 그런 경계 말이다. 집을 너무 정갈하게 가꿔 정작 해야할 것은 뒤로 하고 집이 어지러질까 우려하며 하루를 종종거리는 나는 이제 싫다.
그래서.
가만... 히 있어보려 한다.
엽전 몇개가 필요한지를 떠나 원하면 언제든 살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니 그냥저냥 가만... 히 있어보련다.
그런데 갑자기...
내 정신이 제자리를 이탈하여 뭔가를 자꾸만 갖추려 하고 가지려 하는 것에 화들짝 놀랐다.
진짜.. 내가 소유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무한히 소유하고 싶은 것은 '자아로서의 나'다.
물질적인 소유의 유무를 떠나서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나.... 나의 정신... 내면의 자유....
지금 내가 이 곳에서 정리하고 구분하고 각각 있어야 할 곳에 제대로 배치시켜야 할 것은
무엇보다 내 정신 속 사고가 우선이어야 한다.
자연의 신이 하늘로부터는 땅을, 땅으로부터는 물을, 무주룩한 대기로부터는 맑은 하늘을 떼어 놓았듯 서로 딱 붙어서 떨어질 수 없는 지경의 것들을 떼어 새롭게 자기 자리를 내준(주1) 것처럼 내 정신 속에 강한 점력으로 꿈쩍않고 있는 인식들을 구분, 정리, 재배치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대자연속에 날 데려온 근원적 이유이면서 아주 오랫동안 내가 소유하고픈 정신이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가만...히 있어보자...
사람살 정도는 만들어 놨으니 그냥 애초의 이 곳이 내 거주지였던 것마냥 편안...해보련다.
날마다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더 가치로운 놀이들로 하루를 채워보련다...
그렇게..
물풀이나 고사리처럼 내 본성을 찾아보련다....
* 이 글을 쓰면서 야외나무의자는 베어낸 나무들로 재미삼아 만들어봐야지. 싶은 호기심이 인다.
걱정근심으로 깨어난 새벽으로부터 자유로운 모험을 떠나라.
낮이 되면 날마다 다른 호숫가를 찾고 밤이 오면 어디에 있든 집처럼 편안하거라.
네가 있는 그 곳보다 더 넓은 들판은 없으며 그 곳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가치로운 놀이도 없다.
물풀이나 고사리처럼 네 본성에 따르라.
그것들은 결코 영국산 건초가 되지 않는다.
천둥이 내리치려면 내리치게 내버려둬라.
그것이 농부의 수확에 피해를 준들 무엇이 문제인 것인가?
그것은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사람들이 수레와 창고로 달아날 때 너는 구름 아래로 피하거라.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을 너의 직업이라 여기지 말고 흥겨움으로 여겨라.
진취적이지 못하고 신념이 부족하기에 지금 있는 그 곳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무언가를 사고팔며 노예같은 삶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지 마라(주2).
주1>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동서문화사
주2> 헨리데이빗소로우, 월든, 열림원
[건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