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을 위한 '학교에서 안 가르쳐주는 성공학'시리즈
이 글을 읽기 전에 조금 시간을 내어서 철학자들이 어떻게 부에 대해 설파했는지를
먼저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지금부터 읽어내려가실 글들이 훨씬 재미날 것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philosophybyjw
나는 대화가 좀 되는 상대에게는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당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꿈이 있습니까?'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특별히 갖고 싶은 게 없는데...'
'꿈같은 건 잊은지 오래예요'
또는,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그런 생각...음..해본 적이 없네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세요.
괴롭기 시작할 겁니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없단 말인가?’를 시작으로
‘이런 걸 원해도 될까?’
‘이게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이 맞나?’
‘도대체 나는 여태 뭘 하고 살았지?’
자기학대 수준까지 끌고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나를 괴롭히다 못해 지난 시간에 대한 억울함마저 들게 하는 못된 질문입니다.
그런데 더 못된 무언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내가 불편한 것, 원하지 않는 것, 싫어하는 것을 찾는 데에는 귀재였습니다.
일찍 일어나기 싫고 수학은 괴롭고 관계는 난해하고 아픈 건 싫고...
이런 것들은 애쓰지 않아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죠.
괴롭고 싫어하는 것은 기가 막히게 잘 찾는 걸 보니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은데...
그런데요...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은 못찾는다?
이거이거.. 이상하지 않습니까?
자기를 아는 걸까요? 모르는 걸까요?
그렇다면,
내가 나를 모른다?
그런데 남을 알려하고 이해하려 하고 공감하려 한다?
이런 모순...
왜 자기 자신한테 이렇게 못되게 구는 거지요?
남이 날 몰라줘도 섭섭한데
내가 나를 몰라주니 얼마나 나는 나에게 못되게 구는건가요?
이 모순을 막기 위해 우리는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내가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감각만 발달시키며 그것들을 피하면서 살게 될 지 모릅니다.
정말정말정말 스스로 모순된 삶을 선택하는,
최악의 삶으로 이어질 지도 모르지요.
내가 원하는 그것을 찾는!
이것은 자신의 권리입니다!
내가 왜 이러한 소원을 갖게 되었는지 논리를 따질 필요도, 정당화할 필요도, 근거를 댈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원하는 것을 찾는 것, 그 자체만 생각하십시오.
그래야 내 정신에, 마음에 '원하는 그것'이 심어질 것입니다.
일딴 씨를 뿌려야 부실하든 튼실하든 싹이 나지 않겠습니까?
씨를 뿌리는 것까지만 하면 됩니다.
씨는 자체의 생명력으로 대지의 지원을 받아 세상에 자신을 드러냅니다.
내가 할 일은 뻔합니다.
자꾸 들여다보면서 물주고 먼지닦아주고 관심가져주면 됩니다.
내가 원하는 그것이 일단 있어야 그 다음이 진행되지 않을까요?
일단 찾아야 그 간절함이 세상을 향하게 되고 세상을 향해야 이뤄질 길이 뚫립니다.
'원하는 그 정체'가 스스로 길을 만들어 냅니다!
그냥 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이유도 필요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나의 권리입니다.
그냥 꿈을 찾고 그것을 안에서 밖으로 향하게 하면 됩니다.
이를 찾기 위해 우선,
인간은 본성적으로 ‘욕구’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이미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욕구는 본성입니다.
본성(本性). '본래부터 가지고 있다' 라구요!
우리는 이를 쉽게 ‘꿈’이라고도 하고 근사하게 ‘사명’이라고도 합니다.
본성적으로 내 안에 있으니 내가 발견하면 됩니다.
나밖에 발견할 수 없습니다!
물론, 선택입니다.
있는데 그냥 냅두는 것도 선택,
기를 써서 찾는 것도 선택!
남이 찾아줄 수 없습니다.
유일하게 나만이 할 수 있는 나의 의무입니다.
당연하지요.
나의 권리이니 그 의무의 주체도 나지요.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뭐지?’
나의 욕구를 건드리는 이 질문을 진지하게 해보시기 바랍니다.
괴로워도 억울해도 막막해도 귀찮아도 하기 싫어도
그냥 해보십시오.
지금 당장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눈을 들여다 보세요.
그리고 물어보세요.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뭐지?’
꿈을 찾는 데에는 그 어떤 대가도 치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내게 묻고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만이 치러야 할 대가라면 대가입니다.
낯설지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이런 질문들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다 귀찮다면
미안하지만
당신은,
내 안에 있는데 찾지 않으니 태만한 사람이며
본성적 욕구는 나몰라라 하면서 감각적 욕구만을 쫒으니 탐욕스런 사람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고 싶어한다면 대가없는 보상을 바라는 비겁한 사람이며
내가 꿈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니 영향력없는 사람입니다.
인생 멋지게 살고 싶으면서 출발점에서부터 귀찮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여기서 제가 늘 혼나면서 배우는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글을 잠깐 읽거나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여러번 혼나서 익숙한데 지금 저랑 같이 한 번 야단맞아보자구요.
조금 아프긴 해도 그 깊은 사랑이 느껴지실 겁니다.
모든것-말이나 포도나무, 그리고 그 외 어떤 것이든-은 각각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놀랍지 않은가?
태양의 신 헬리오스조차 "나에게는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머지 신들도 같은 말을 할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뭐라고 할 것인가?
"나는 이곳에서 즐기기 위해 존재한다고 할 것인가?"
가당치도 않다.
https://youtu.be/gl3TBKECCdc
내가 꿈을 꾸면 나는 누군가의 꿈이 됩니다.
내가 바보같이 큰 꿈을 꾸다가 깨지더라도 그 조각은 크답니다.
내가 꿈꾸며 다져놓은 길 위에 분명 누군가는 조금 더 편하게 걷게 될 것입니다.
물론, 아직 발견되지 않는 자신의 꿈을 찾아내는 과정이 녹록치 않겠지만
괜찮습니다.
자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원래 편하지 않습니다.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감정이 들끓어도
그것은 산고의 고통일 뿐입니다.
씨앗을 뿌렸으니 산고가 있는 것입니다.
씨앗은 내 마음에, 정신에 임신한 것과 마찬가지이니 산고가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내 꿈이 내 밖으로 나오려는 진통일 뿐이지요.
우리는 어렸을 때 맹목적으로 산타클로스를 믿었습니다.
너무나 갖고 싶은데 엄마아빠가 절대 사주지 않은 '그것'을 갖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고 빌고 또 빌었지요?
종이에 꼭꼭 눌러 그 어느 때보다 또박또박 바르게 크게 적어서
두 손 모아 기도까지 하며
그렇게 간절히 맹목적으로 빌었던 경험,
있으시지요?
결과가 어땠습니까?
간절히 바라니 다음날 머리 맡에 그렇게 소원하던 자동차가, 인형이, 예쁜 옷이, 게임기가 턱 하니 놓여있지 않았습니까?
꿈을 찾고 끄집어내면 세상은 반응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어떻게 된다고?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된다고?
천만에!!!
오르고 싶으면 쳐다보고
따라가고 싶으면 가랭이가 찢어지도록 뛰어도 보고
먹어 보고 싶으면 일단 입에 넣어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욕구의 동물이며 우리는 인간입니다!
욕구하십시오!
무엇을?
내 안에서 들려주는 소리를!
이거 원, 소리만 지른 것 같군요.
다음 편에는 좀 점잖게..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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