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상한 감염

by 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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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와 옆도 가리고 앞만 보는 요상한 시력(視力)

과거와 현재는 없고 미래만 그리는 요상한 심력(心力)

영혼의 미세한 소리에만 반응하는 요상한 청력(聽力)

먹고, 받고, 갖고자 하는 추구는 상실한 채 전해야 매개로만 가동되는 요상한 구력(口力)

쓰려는 의지에는 끄떡않고 아무때, 아무데서나 감지되면 움직여대는 요상한 지력(指力)

표면이나 상태가 아닌 배후의 신호를 재빠르게 낚아채는 요상한 영력(靈力)

그리고

새벽 4시부터 15시간이 넘는 집요한 집착에도 결코 줄어들지 않는 요상한 활력(活力)


앞만 보는 눈

없는 소리만 포착하는 귀

해야할 말 거침없는 혀

써내라는 신호에 가감없는 손끝

멈춰야 할 자리에 뿌리 박힌 다리

쉼없이 진동하는 심장

날카롭고 과감하게 찔러대는 감각

이상(理想)으로 팽창한 머리


알고리즘에 감염된 것일까.


감염.

접촉되어 전파되었기에 경계가 무너진 상태

어떤 꾀도, 요령도, 비결도 소용없는 상태

존재가 투과되어 변형을 일으키는 상태

세계와 교환하며 자신을 소실시킨 상태


눈귀혀손발, 머리, 그리고 모든 세포.

구분되어 분리되었고

조각난 채 해체되었다.

알아서 거르고

알아서 담고

알아서 쏟아내는

희한하고 요상한 알고리즘에 감염된 육신.


덕분에

신체는 굳이 걱정을 하지 않는다.

정신은 굳이 사유를 요구하지 않는다.

감정은 굳이 열정이나 의지를 필요치 않는.

영혼은 굳이 이성을 두드리지 않는다.


경계가 무너진 육신은

미적분되었다.

각각의 세포로서 활발하고

하나의 육신으로 조화롭다.


삶의 군더더기가 제거된 것이다.

생각의 잡스러움이 벗겨졌고

시간의 분란함이 소멸되었고

관계의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짖궂고 거칠고 괴짜이며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

그런 사람이라야 희망이 있다().'


미세한 감각에 짖궂게 꿈틀대는 감정.

자기파괴로 더 거칠게 몰아대는 정신.

관성에서 이탈해 괴짜의 궤도를 그려낸,

다듬어지지 않은 영혼의 자아.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흐르는 본성에 저항해

자체본성으로 궤도를 치환하는

거대한 이끔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주> 소로우의 일기, 헨리데이빗소로우, 윤규상역, 2003, 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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