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엄마는 눈 2개로는 안되더라.

본다는 것에 대해

by 지담

아이야,

우리에겐 많은 눈이 필요한 것 같아.


엄마가 살면서 눈 2개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눈을 하나씩 만들어가다 보니 많아졌어.


사물을 보는 동그란 눈 2개.

그리고

마음으로 보는 감정의 눈.

몸으로 느끼는 감각의 눈.


또 있어.

나를 보는

관찰자의 눈.

내가 관찰자랑 제대로 소통하는지를 보는

관조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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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얼굴에 달린 예쁜 두 눈은

실체를 엄마에게 보여주겠지?

실체는 실체만으로 보는 힘이 필요하더라.

그런데 이 시력은 시간이 갈수록, 또는 환경에 따라 달라져.

안개가 끼면 잘 안 보이고

엄마처럼 노안이 오면 또 보기가 힘들어져.

그래서, 기능이 환경에 좌우돼.


하지만,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눈이 있어.

감정과 감각의 눈이지.


우리 육체는 정신과 신체와 영혼으로 이뤄져 있잖아.

그것들이 서로 연동되서

감각으로 전해진 것을 감정이 받고

감정이 다시 정신을 자극하면

정신이 활동을 하며 신체를 움직여.


소경이 보이지 않아도 물건의 위치를 감각적으로 가늠할 수 있고

우리가 두 눈을 감고도 아니면 칠흙같은 어둠에서도 조금 불편하지만 길을 찾아갈 수 있잖아.

그래서 신체의 시력은 퇴화될 지 몰라도

감각의 눈과 감정의 눈은 환경에 지배받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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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눈은

감각적으로 민감하게 사실을 포착해내는 눈이야.

사람의 눈빛을 보고 그 사람의 진실과 거짓을 유추할 수 있는 힘은 감각의 눈이 발달된 사람의 힘이겠지. 그래서, 감각의 눈은 신체의 눈이 보지 못하는 본질을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한단다.


감정의 눈도 마찬가지야.

신체의 눈을 감고서도 우리는 심상, 즉 마음으로 그리는 실체의 현상이 있고 그것을 보는 눈이 감정의 눈인데 이 눈은 신체의 눈이 포착한 것에 울림을 줘. 공감을 느끼는 눈은 보여지기 때문이 아니라 이면의 울림을 받는 감정의 눈이 있어서겠지.


하지만, 감정의 눈은 때로 위험한 눈이야.

실체를 외면하고서 마음대로 상상으로 그림을 그려대지. 실제, 즉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감정이 마구 파도를 치면서 너를 감정의 수렁으로 빠뜨린 채 정신의 힘을 무력화시키고 네가 만든 상상이 진짜 실체인 것처럼 믿게 해.


그래서.

신체의 눈이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할 때

결코 거짓일 수 없는 감각의 눈이 반짝여야 하고

감정의 위험한 눈이 정신을 헤집지 않도록 유의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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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3가지의 눈이 '너'라는 육체에서 제대로 기능한다는 전제로

이 눈들 밖에 있는, 그러니까

네 밖에서 너를 보는 눈이 바로,

관찰자의 눈이야.


제대로 보고

제대로 해석하고

제대로 걸어가는지를 보는 외부의 눈.

아, 타인의 눈과는 조금 달라.

타인의 눈은 그 사람의 기능이 어떠냐에 따라서 눈의 효력이 다르겠지만 관찰자의 눈은 말 그대로 네가 만든 또 다른 눈이야.


엄마는 관찰자의 눈을 여러가지로 규정해.

일을 할 때는 일에 눈을 달아서 일의 결과로부터 지금을 보고

대화를 할 때는 엄마와 상대의 관계에 눈을 달고 엄마의 대화하는 태도를 보고

글을 쓸 때는 글에 눈을 달고 엄마가 얼마나 글에 정성을 다해 진심을 쓰는지를 관찰해.

이러한 관찰자의 눈은 늘 엄마를 따라다녀.


지금?

지금은 엄마와 너를 함께 바라보며 엄마가 너에게 사랑을 담아 진실되게 편지를 쓰고 있는지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눈으로 엄마의 육체에 있는 3개의 눈을 가동시키고 있지.


노안때문에 신체의 눈은 안경의 도움으로 실체를 보고

감각의 눈으로는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이야기를 거르지 않고 글에 담고

감정의 눈으로는 너희를 사랑하는 감정을 정신에 보내고.


관찰자의 눈이 조용한 걸 보니

지금 잘 쓰고 있는 것 같아.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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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있다.

이제는 네가 아닌, 전혀 새로운 존재의 눈이 필요해.

육체의 3가지 눈과 이 눈을 감시하는 관찰자의 눈을

한꺼번에 바라보는 초월된 눈,

관조의 눈이지.


엄마는 천주교 신자니까 어떤 때엔 '하느님'이,

또 어떤 때엔 '철학자'가,

또 어떤 때엔 엄마가 되고 싶은 '미래의 나'의 눈으로

지금 현실의 엄마를 보지.


지금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동력도 어쩌면

관조의 눈이 강한 힘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거야.


신의 율법을 잘 따르고 있는지,

철학자들이 알려준 바대로 인간의 윤리와 미덕을 실천하고 있는지,

미래의 엄마가 지닌 모습대로 오늘의 몫을 행하는지,

그리고,

그 도구로서 글을 제대로 활용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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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조의 눈이 가진 힘은 아주아주 위대하단다.

제아무리 육체의 눈이 땡깡을 부려도,

제아무리 관찰자의 눈이 어리석어도,

관조의 눈만 반짝여 준다면

땡깡도 수그러들고 어리석음도 곧 지혜가 돼.


캄캄한 밤처럼 너무 어두울 때도

정신이 맑게 깨어서 무언가에 몰입할 때가 있어. 누구나.

그 사람은 관조의 눈으로 모든 눈의 시력을 깨우기 때문이란다.


감각의 눈이 영혼과 닿아 있기에

감정의 눈이 어둠에 숨어 버리고

신체의 눈이 아무 것도 보지 못해서

관찰자의 눈도 기능하지 못할 때


관조의 눈은

감각기관들을 완전히 거둬들이고

정말 밝은 눈빛으로 널 바라보게 해준단다.

그래서 총명하고 명철하게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현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지.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야.

기쁘고 슬프고 편하고 아프고 ...

하지만,

각기 다른 삶을 사는 이유는

어떤 눈이 강한 시력을 지니는지가 달라서야.


관조의 눈이 반짝이는 사람은

육체의 눈과 관찰자의 눈 모두를 통제할 수 있어.

세상 모든 물이 바다로 흐르지만

바다는 넘치지 않고 변함없듯이,

감각기관으로 모든 방해와 장애가 들어와도

관조의 눈으로 너를 보면

내면이 평온한 상태에서 네 몫을 다 해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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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관조의 눈은

영혼의 눈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아.


여기서 한가지 우려되는 마음으로 이 말을 해야겠는데

영감(靈感)이라고 하지, 사람들은.

'나는 영감이 뛰어나'라고들 말하잖아.


영감은 영혼의 눈으로 보고 느낀 감각이겠지.

그런데 이 영혼의 눈은 앞서 말했지만 바다같이 전체를 품은 눈이야.

결코 강물이나 시냇물로는 바다의 깊이를 알 수 없듯이

전체를 담지 못한 채 느껴지는 영감은

진정한 영혼의 눈이 아니야.

삐딱하고 비틀려서

사실을 왜곡하거나

사실을 보지 못하는 게으른 몽상가의 눈일 뿐이야.


자, 전체를 품은 눈으로 지금을 판단하는 것.

관조로부터 내리꽂은 시선.

날카롭지 않으면 선이 아니듯이

관조의 시각으로 날카롭게 바라보는 눈이 시선이야.

영감이 관조, 즉 영혼으로부터의 감각인데

전체를 보지 못한 채 삐딱하고 비틀리면 시선이 엉뚱한 곳으로 꽂히지.


그러니,

영감이 뛰어나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행동을 보렴.

어제 무엇을 말했으며

오늘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봐.


행동은 바라보는 시선으로 선택한 행위잖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난 사람은

관조의 눈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사람이지.

그 사람의 판단은 믿고 따라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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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영감이 뛰어난 영혼의 눈을 지닌 사람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전체에서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끝에서 시작과 과정을 움직이고

보여주는 행위로서 감정이나 이성을 제어한단다.


영감이 뛰어난 사람이지만

그 시야에 장막이 쳐진 사람은

행위는 없고 말만 있어

이성은 없고 감정만 있거나

전체는 없고 부분만을 사니 삶이 변하지 않는 패턴 위만 걷다가

늘 감정에 절절매지.


영혼에 막이 쳐진 눈이 여기 반짝, 저기 반짝이는 반딧불이라면

진정한 영혼의 눈은 하늘에서 땅으로 번쩍하며 내리꽂히는 번개와 같지.

저~어기 우주 어딘가에서 네 심장으로 내리꽂히며 강렬한 사운드를 일으키는

그 힘. 그 빛. 그것이어야 영감인거야.


여기서 잠깐 웃긴 얘기해줄까?

양혼의 눈. 영안이잖아.

이 영안은 그렇게 미묘하게 자기 자신도 잘 모르거든.

발음도 구분이 잘 안간다!

영안이네!

영~ 아니네!

그냥 웃자고 한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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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조의 눈, 즉 영혼의 눈은

항상 맑고 투명한, 순수한 눈이어야 하고

그 때의 영감이라 불리는 직관이나 통찰등은

제아무리 당장에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없어도 정말 믿음직스러운 눈이지.


그 눈으로 정신에게 지시하여

지금 네 자리에 두 발을 딛고 당당히 서 있게 하는 힘은

머리의 힘보다 훨씬 세다는 것을 꼭 기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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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눈을 떠라.

눈을 밝혀 세상을 담고

그 눈으로 널 비춰라.


그래야 잘 산다.

그래야 행복이고

그래야 쓰이고 누린단다.


아이야...

네 얼굴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지 말고

네 감각과 감정의 눈에 정신을 잃지 말고

네 관찰자의 눈을 항상 데리고 다니고

관조의 눈이 빛날 때엔 네 모든 눈을 감아보렴.

그런 사람은

반드시 오물 속에서도 진리를 볼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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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연재]

월 5:00a.m. [짧은 깊이]

화 5:00a.m. [엄마의 유산]

수 5:00a.m. [필사 - 사유의 손끝에 철학을 품다]

목 5:00a.m. [영혼의 노래]

금 5:00a.m. [나는 시골이 좋습니다.]

토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일 5:00a.m. [영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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