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과 순수, 그리고 쓰임에 대한 엄마의 편지
아이야,
엄마는 천주교신자잖아.
20여년 냉담을 했지만 마음에는 항상 그 분이 계셨고
힘들 때마다 그 분께 기도드렸지.
다시 성당에 나가게 된지 5년이 넘었고
당연하지만 매주 미사를 드리고 있어.
엄마는 간절해.
바라지 않고 믿는 힘을 구하고
부탁보다 감사의 마음을 청해.
하려는 의지보다
무엇을 하라 하시는지 마음으로 듣고
잘 살기보다
제대로 쓰이게 해달라 간구하지.
엄마는 엄마가 도구라 여겨.
너희들이 디디고 선 이 땅에
잘 쓰이고 싶어.
능력탓, 조건탓 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 계속 배우면서
내놓고 내놓고 내놓으며
쓰이려구.
엄마는 여기 시골에 살면서 너무 많은 귀한 것들을 배운단다.
하루가 배움으로 넘쳐나.
한발짝만 움직여도 온통 배울 게 투성이야.
이 말은,
그간 얼마나 무지했는지의 반증이고
도시에서의 삶이 얼마나 삭막했는지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겠지.
이렇게 엄마가 자연 속에서 배우며 살게 된
운명같은 우연의 연속은
세상이, 자연이 엄마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다고 생각해.
이유없이 태어난 생명은 없잖아.
엄마가 세상에 제대로 태어나
지금껏 별탈없이 살아있는 이유는
반드시 세상이 엄마를 살려둔 어떤 뜻을 품고 있어서 일거야.
너희도 마찬가지지.
그 뜻이 뭔지 여전히 갈구하고
그 뜻이 이뤄지는 때 엄마는 이 세상에 없겠지.
다 쓰이면 사라지겠지.
쓰이지 않으면 버려지는 것이고.
사라짐 앞에 선 순간,
뜻이 품은 이유를 알 수 있겠지.
그렇게 뜻을 위한 도구로서 쓰이고
마땅히 돌아가야 할 자리로
엄마는 돌아갈거야.
웃으면서...
충만하게...
엄마는 이제 조금 알게 된 것 같아.
엄마가 안다고 여긴 최대의 것이
엄마가 모르는 지도 모르는 최소의 것이었어.
알려고 배우고
배우면 쓰는 것이라 여겼는데
아니었어.
알려고 배우고
배우니 쓰여지는 것이었아.
이렇게 열심히 치열히 쌓은 지식들은
무식과 무지를 벗어나기 위해서였고
그러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모자랐어.
더 깊이 담긴 의미가 있더라.
우리... 이런 말 하잖아.
어린아이와 같아라.
순수는 인간에게서 피어난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태어나 가장 순수한 갓난아기들.
무한을 품고 자연과 가장 가까운
순수의 결정체.
그렇게 순수하게 태어난 우리 모두에게는 신성이 있대.
그런데,
'이성'이라는 기능의 오만한 호기심이
계속 뭔가를 안다고 여긴거야.
배우면 안다고, 아니까 맞다고, 맞으니까 그리 한다고.
이성을 너머선 비이성,
합리를 너머선 비합리에
지식으로 무장한 '이성'을 잣대로 들이대는 것이지.
이성을 너머선 비이성,
이 둘이 일치될 때의 '이성(理性)',
즉, 신이 우리를 창조할 때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은,
'신성'을 담은 인간의 사유능력으로서의
'이성'이어야
진정한 이성인 것이야.
그러니까,
갓난아기와 같은 맑은 영혼일 때가
가장 이성적인 인간인거야.
그래서 과학으로 인간존엄이 위협받는
지금 시대는 '추구'하잖아.
지혜를, 직관을, 통찰을, 공감을...
이 모두는 이성을 너머선 비이성, 즉 초월적 지식이지
그래서 말인데, 어쩌면
'이성'은 '신이 준 양날의 칼'인 것 같아.
훌륭하고 위대한 기능인데
우리는 '안다, 또는 알고 싶다.'는 이유로
이성의 한쪽 날만 사용하며 능력만으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이성의 오만한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몰라.
배움이 지식을 향하면 위험해.
갓난아기와 같은 순수함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버려서
계속 지식을 추구했나 봐.
계속 '지식'만을 탐하는 사람은
어쩌면 가장 이성적이지 못한, 무지한 사람일 수도 있어.
아이야,
살다가 '삶'이 아프게 물을 때는 분명히 와.
벼가 낟알을 맺기 전에는 아주 곧게 위로만 자란단다.
그런데 낟알이 생길 때부터 점점 고개를 숙여.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아래로 내려가 다시 자신이 밟은 땅을,
디디고 있는 현실을 살지.
그제서야 비로소,
낟알은 곡식으로 쓰여.
아프게 물을 때
그 때 진부하게 알던 문장에서 진리를 듣게 된단다.
자연의 모든 이치는 같아.
많이 알아서 위로위로 꼿꼿한 인간은
어쩌면 '정말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사람일 수 있어.
아니면, '모르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래서,
어쩌면 계속 지식을 쌓으려는 자는
신성에서, 아이와 같은 순수성에서 멀어지고 있을 지도 몰라.
아이야.
배움은 삶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삶은 삶의 터전인 세상을 위해야 하고
세상은 생명을 위해야 해.
결국,
배움은
생명 하나하나의 뜻을 이루는 목적성을 지녀야겠지.
뜻없이, 이유없이, 의미없이
생을 부여받은 생명은 없단다.
엄마도, 너희도 그렇겠지.
진정한 배움이란
지식으로의 추구를 너머서
가장 본질적인 가치로서 자신의 삶을 일구는
태도가 아닐까.
무지와 무식이 부른
오만한 호기심이 지식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엄마는 요즘 알아가고 있어.
이제서야 배우면서 느끼는 엄마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아봤어.
너의 하루가,
네 뜻이 가는 길 위에서
너를 잘 데려가도록
이유를 품고 하루를 보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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