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결과는 맡겨야 해

'사고의 한계'앞에서.

by 지담

우리는 늘 사고(思考)하지.

사고하지 않는, 정신을 움직이지 않는 인간은 없어.

하지만,

사고만으로는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 있단다.


늘 움직이는 이 '기능'은 가끔 고장이 나기도 해.

'기능'한다는 것은 어떤 '구실'을 한다는 의미이고

'구실'을 한다는 것은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는 말이지.


안 가본 곳이지.

지금 나의 힘과 능력으로는 어림없는 곳.

그래서, 우리는 모두

사고하지만 항상 한계에 부딪힌단다.


프리미엄 썸네일(작은) - 2026-01-22T152923.246.png


엄마는 이럴 때 항상 책 속의 성현들에게서 배워.

엄마가 추앙하는 성현은

'인간 사고력의 한계를 넘는 일을 경험으로 배운다(주1)'고 하더구나.


그렇지.

경험이란 실질적인 움직임이지.

'명시적 지식'인 간접경험만으로는 부족해.

'실체적 지식'이 보태져야 해.


이 '실체적 지식'이란 범주는 아주 방대해.

이를테면 못질 하나를 하더라도 그래.

망치를 들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

나무의 둔탁함을 느끼는 것,

날카로운 못에 찔리지 않으려 조심하는 것,

내리치는 힘의 강도도 조절하는 것,

힘들 때 한번 더 내리치는 극복까지.

우리의 신체와 정신, 감정 모두를 사용하지.


뿐만 아니야. 어디에 못을 박아야 다시 무너지지 않을지에 대한 예측,

아직 가져보지 못한 결과를 미리 믿고 움직이는 정신까지.

초월적 지식도 모두 실체적 지식,

즉 경험의 양이 쌓이면서 함께 함양된단다.


ChatGPT Image 2026년 1월 22일 오후 02_28_10.png 알시온(AI이미지 발췌)


시칠리아의 바다에는 알시온(주2)이란 새가 있대.

이 새는 바다 위에 집을 짓고 알을 낳고 부화시킨대.

1년 중 가장 낮이 짧은 동지 무렵,

한겨울인데도 딱 1주일간 파도가 잠잠해진 그 때,

알시온은 집을 지어.


물고기 뼈를 서로 맞추고 잇고 엮고 가로지르면서

곡선과 둥근 면을 조절해

동그란 배모양의 집을 지어.

그리고 그 집을 바다 위에 올려놔.


그러면,

바다가 물결로 살짝 쳐서 아직 야물지 않은 곳을 더 여미고,

구조가 잘 맞지 않는 곳은 다지고 조인대.

또 잘 이어져 있더라고 물결이 쳐서 더 조여주기 때문에

돌이나 쇠로 두드려도 부서지지도, 풀리지도, 손상되지도 않는대.


더 놀라운 건 그 내부야.

오목한 형상과 균형이 절묘해서

알시온만 들어갈 수 있고,

다른 침입자는 물론,

바닷물조차 집 안으로 스며들지 못한대(주3).


대단하고 놀랍고

참으로 신비롭지?


ChatGPT Image 2026년 1월 22일 오후 02_25_29.png AI이미지 발췌

거센 물살 뒤 잠시의 평온한 시기,

짧지만 진짜인 창조의 시간.


이 고귀한 생명의 잉태를 위해

알시온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능력껏 다 했어.

그리고는 있어야 할 자리, 물결 위에 집을 올려 놓았지.

그러자 바다가, 그리고 세상이 그 집을 야무지게 완성시켜 준거야.


ChatGPT Image 2026년 1월 22일 오후 02_33_08.png 알키오네(AI발췌)

사람들은 알시온을 신화 속 새로 알고 있어.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의 신의 딸'인 알키오네(Alcyone, 주4)

남편을 잃고 바다에 몸을 던지자

신들이 그녀를 불쌍하게 여겨

물총새로 변하게 했다는 데서 유래했거든.


하지만, 몽테뉴는 이렇게 증언해.

플루타르크(주5)가 그 새의 집을 열어보고 만져도 보았다(주1)고 말이야.

플루타르크는 몽테뉴가 추앙했던 철학자인데 그도 몽테뉴도 거짓을 말하진 않겠지.


스크린샷 2026-01-22 145106.png 플루타르크(델포이 박물관에 전시된 흉상 / 구글 이미지 발췌)


스크린샷 2026-01-22 144001.png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p.553


아이야.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완벽한, 완전한 준비란 어려워, 아니 불가능할지도 몰라.


왜?

도전은 안 해본 것이고

도전하는 이유는 그 결과를 믿기 때문이고

결과란 지금껏 해보지 않았기에 목표인 것이니까.


인간의 사고는

필연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어.

하지만,

한계까지 모든 힘을 다 꺼내어 썼다면

그 다음에는 초월적인 힘이

네가 만들고자 하는 결과를 위해 움직일거야.

엄마는 이것을 '신성한 무관심(주6)'이라고 배웠어.

스크린샷 2023-12-26 190145.png
스크린샷 2023-06-24 085825.png


그런데, 아이야.

아무에게나, 아무 일에나 이 힘이 작동하지는 않겠지?

그 추운 겨울, 바닷물살도 거칠텐데

왜 1년에 단 7일, 바다는 잠잠해지고

왜 알시온은 바로 그 때 집을 만들까?


신이 있다면,

신은 귀하고 소중한 탄생을 위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배려하시나봐.

귀한 생명이니까 그렇게 바닷물살도 멈추게 하시겠지.

(그럼 여기서 너는 의문을 품을지도 모르겠다. 왜 선한 사람,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인데 죽냐고. 그런데 이는 인간인 우리가 도출할 수 없는 의문이니까 이 담론은 각자의 탐구 속에 넣어두자.)


플루타르크가 알려줬어.

앎(지식)만으로는 인간이 변하지 못하고 덕(德)은 사유의 산물이 아니라 삶의 출적물(주7)이라고. 즉, 실체적 지식이 곧 덕으로 쌓이는 것이지. 엄마가 말한 '한계까지 다 써버린 이후 초월적인 힘에 맡겨지는' 그 순간에 대해 그가 말한 '인간이 덕을 다했을 때 작동하는 우주의 응답(주7)'이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가 관여할 일은 오로지 자신의 할일뿐.

행위의 결과는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주8)라고,

성공과 실패를 평등하게 여기며 행하라고(주8) 경전에서도 말하고 있어.


스크린샷 2025-11-28 185949.png
KakaoTalk_20231119_195152822.jpg


그러니,

네가 나아가는 길이,

바라는 목표가,

원하는 그 것이

옳고 이롭다면,

네 능력껏, 한계까지 모두 꺼내어 써보렴.


그리고 결과는

그 자체의 힘으로 이미 세상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믿고 맡겨보렴.


아주 작은 실천도

우리에게 초월된 지식을 알려줘.


그러니 맘껏 경험하렴.

맘껏 움직이고

맘껏 뭐든

해보렴.


결과는 너의 힘만으로 이뤄지지 않아.

너의 능력과 시간을 모두 진심으로 투자했다면

분명 그 결과는 또 다른 어떤 힘에 의해

'에기치 않은' 순간에

네 손에 쥐어질 거야.



주1>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동서문화사

주2,4> 알시온(Alcyon) : 자연·신화·언어·문학이 겹쳐진 상징적인 존재로 물총새(Kingfisher)의 고전적 이름. 그리스 신화의 알키오네(Alcyone)에서 유래. 남편을 잃고 절망해 바다로 몸을 던지자 신이 불쌍히 여겨 물총새로 변하게 했으며 그 후 신들은 알시온이 알을 낳는 기간 동안 바다를 잠잠하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주3> 알시온에 대한 내용은 몽테뉴(나는 무엇을 아는가, 동서문화사)의 내용을 기술.

주5> 플루타르크(Plutarch, 그리스어로는 플루타르코스 Πλούταρχος) : 기원후 약 46년경. 그리스철학자.

주6> 신성한 무관심 : 올더스헉슬리는 그의 저서 '영원의 철학'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 뒤 결과를 위해 믿고 기다리는 '고행중의 고행'을 신성한 무관심이라고 표현했다.

주7>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플루타르코스, 숲

주8> 바가바드기타, 사문난적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919230


[지담연재]

월 5:00a.m. [짧은 깊이]

화 5:00a.m. [엄마의 유산]

수 5:00a.m. [필사 - 사유의 손끝에 철학을 품다]

목 5:00a.m. [영혼의 노래]

금 5:00a.m. [나는 시골이 좋습니다.]

토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일 5:00a.m. [조용한 혁명]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03화아이야, 빼앗기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