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편지
아이야,
네 기억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염두하며 하루를 살아보렴.
시간은 네 모든 순간순간을 전부 모아서 미래로 가져가.
그리고 너는,
시간이 '사실'을 죄다 가져가더라도
결코 가져가지 못하는 '기억'으로
'너'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반추하지.
그리고 훗날,
기억을 모두 모아 '인생이 이런 것이구나' 정의를 내리겠지.
인간은 한순간도 이성과 감정을 휴전시키지 못하는 미숙한 동물이야.
그래서 '기억'에 보관된 것이라곤
시간에게 내어준 사실에 감정이 혼합된
희미함 잔재들이야.
엄마도 어떤 날은 감정에 완패했단다.
그렇게 순간의 기억이 감정으로 남아 아직도 가슴을 찔러.
그렇다 보니,
사실인지 아닌지조차 분간하지 못한 채
우리는 기억으로 자기의 인생을 규정하게 돼.
우리는 시간이 네 모든 순간을 모아서 어디로 그리 빨리 도망가는지 알 수 없어.
하지만,
세상이 누군가가 남긴 흔적으로 다음을 이어가는 걸 보면
분명 시간이 모은 네 순간의 보따리도 어딘가에서 펼쳐져
지금의 질서를 잇는데 쓰이겠지.
아이야,
엄마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철학적인 의문을 멈춘지 오래야.
물고기가 바다 밖을 나오지 않는 한 바다 전체를 알 수 없고
나무가 숲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숲을 얘기할 수 없듯이
인생을 다 살아보지 않고서는 인생이 무엇인지,
나에게서 빠져나오지 않고서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음을 인정한거야.
하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내 인생은 이렇게 쓰였구나'를 알게 되는
생의 끝은 반드시 오잖아.
그 때 마주하고 싶은 엄마의 모습,
그 때 말하고 싶은 엄마 자신은
이미 머리속에 그려져 있고 가슴에 품겨 있단다.
그러다 보니,
모든 순간이 소중하더라.
시간이 모아놓은 순간들이
엄마 생의 끝에서 펼쳐졌을 때
안심하고 싶어.
그 모든 순간이 어디서 어떻게 쓰여도 괜찮은
사례로, 증거로 남겨지면 좋겠어.
그래서,
모든 순간, 휴전없는 이성과 감정의 내전에서 이성이 이기게,
모든 순간, 시간의 보따리에 무엇을 넣을지를 기준 삼아,
모든 순간, 어제의 말이 오늘의 행동으로 이어지게 살아.
물론 부족하지만 그리 살아.
아이야,
인생이란, 삶이란, 그리고 인간이란, 나란.
별 게 아니더라.
결코 시간에게 빼앗기지 않는 '기억'에
무엇을 남길 지를
스스로 정해서 '순간'을 살면 되는 것이더라.
이렇게 간단하더라.
하지만,
많은 순간 기억의 내용물로 힘들 때도 있을거야.
잘못 남겼다고 여겨진 것들도 있겠지만
그 기억 역시 남겨져야 할 이유가 있어 남겨졌을 거야.
하지만 그 가운데 네 심장을 아프게 찌르는 것이 분명 있어.
그럴 때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거나
가슴을 때리면서 울분하지.
그런 본능적인 행위를 보면
이성에게 왜 패했냐고,
감정에게 왜 그리 나댔냐고
이성과 감정의 순환과 기능을 우린 알고 있는 것 같아.
네 심장을 찌르는 아픈 기억들에 가슴을 치더라도
우리는 그냥 살아.
훗날, 시간이 모아간 순간들을 좍 펼쳤을 때
사실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그 때야 비로소
그 아픈 기억의 이유를 알게 될거야.
그러니, 그냥 부여잡고 오늘 남겨야 할 사실과 기억을 위해 사는거야.
멀리 가되, 네 발로 발끝을 보며 걸어라.
크게 보되, 네 손에 쥐어야 할 것만 쥐어라.
깊이 알되, '지금'과 '순간'을 살아라.
넓게 담되, '가치있는 사실'을 남겨라.
인생이란 거창한 게 아니더라.
내가 보낸 시간이 훑어갈 '사실'에 무엇이 남겨질 지 알고
결코 시간에게 도난당하지 않는 '기억'에
무엇을 남길지를 정해서
순간을 살면 되더라.
그렇게 쌓인 것이
'내 인생'이더라.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919230
https://cafe.naver.com/joowonw/12681
[지담연재]
월 5:00a.m. [짧은 깊이]
화 5:00a.m. [엄마의 유산]
수 5:00a.m. [필사 - 사유의 손끝에 철학을 품다]
목 5:00a.m. [영혼의 노래]
금 5:00a.m. [나는 시골이 좋습니다.]
토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일 5:00a.m. [영혼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