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
오물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리라.
이 평범한 연금술, 들어봤지?
엄마는 지금 연금술의 의미를 체험중이야.
이 새벽, 아주 들뜬 마음으로 네게 편지를 쓴단다.
엄마는 글을 쓰잖아.
너는 음악을 하고.
사실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예술가가 되는건데
엄마에겐 그런 운은 없었어. 너는... 있는 것 같고.ㅎㅎ
여하튼
예술은 엄마와 완전히 먼 단어야.
그런데도 엄마 안에서 꿈틀대는 일명 '또라이'같은 발상은
어디서든 엄마를 튀게 했고
지금은 튀는 대신 침잠하는 방향으로
끝도 없는 길이 엄마 앞에 펼쳐진 것 같아.
너도 알다시피 분당살 때
엄마의 연구실 벽은 수백개의 논문들로 가득했지. 경영학에서 '지혜'를 연구하면서 엄마도 그 정도의 논문은 쓸 수 있다는 발상에 매달려 기어이 논문상을 몇차례 휩쓸었었어. 그리고 2019년부터 엄마는 책으로 삶을 공부하겠다고 지금 8년째 성현들의 글 속에 파묻혀 지내지.
그러다가 글을 쓰기 시작한지 40여개월.
지독하고 치열하다고 남들이 얘기하지만,
사실 엄마는 지금
'자뻑' 중이야.
글쓰기에 재능이 없었던 엄마여서 '자뻑'할 일은 없었어.
하지만 연구에 빠져서 논문을 썼을 떄도 할 수 있다는 자뻑이 없었다면 그리 써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도 자뻑이 없었다면 나름 수년간을 이렇게 매일 쓸 수 있었을까 싶어.
될 것 같으니까, 할 수 있으니까 이리 계속 하는 것 아닐까?
엄마는
늘 자백만 했지, 그 자리에 자뻑은 없었어
늘 한탄과 갈구만 했지, 그 자리에 자랑도 없었어.
그런데
자뻑없이 어떻게
자기 글을
자신있게 내놓을까.
자뻑은 글의 물줄기를 터주는
자생의 시작인 것 같아.
지금 엄마는,
무모할 정도로 내세웠던 겸손이
이 새벽, 무지였음을 알게 됐단다.
아이야,
음악을 하는 네게 엄마가 이 새벽 온몸으로 알게 된
'오물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리라'는 연금술의 비밀은
바로 '자뻑'이야.
41개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삶은 엄마에게 글을 요구했단다.
그래서 그냥 썼어.
쓰고 쓰고 또 쓰고.
계속 썼어.
그러다 어떤 날,
마음에 드는 글이 엄마 손끝에서 나오면 순간 '자뻑'에 빠지곤 했지. 그렇게 매일 쓰다가 느닷없이
시인, 수필가로 등단하고 다시 잠깐의 '자뻑'에도 빠졌어.
자백하건데.
자랑할 것도 없지만
자뻑은 엄마처럼 재능도 없으면서 미친 듯이 쓰는 이에게 꼭 필요한 것 같아.
자기한테 뻑가는 순간이 없는 이가 어찌 자기 삶을 자신할 수 있겠나?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이가 어찌 본연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겠나?
자기 서사가 담기지 않는 글이 어찌 자신의 글이라 할 수 있겠니?
아이야,
자뻑하지 않고 어찌 네가 현을 켜면서 자유로울 수 있겠니?
자신만의 선율을 켜지 못하는 이가 어찌 음악가라 하겠니?
자신을 온전히 믿고
완전한 사랑에 빠진 상태라고 정의하고 싶어.
그리고
예술가들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도 말하고 싶어.
겉으로 표는 안 났겠지만
글을 쓰겠다고 느닷없이 감행한 시골살이는
이 세 단어로 축약된단다.
감정이 글자 그대로 오물 투성이였어.
이 속에서 엄마는 매일 진리 한바가지씩을 퍼 글을 만들어 왔단다.
네가 생생하게 알지.
엄마가 영하 20도의 강추위를 견디려면 나무를 구해 톱질을 해야 하고
차없는 엄마는 먹거리라도 구하려면 하루 4대밖에 없는 버스시간에 맞춰야 하고
새소리, 고라니 바스락대는 소리외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함을 사유로 빚어야 하고
서랍장에서 양말을 꺼내다 만난 시커먼 거미의 난장도 즐겨야 하고.
진리가 되지 못한 엄마의 논리를 만들어가는
귀하디 귀한 오물이란다.
너도 마찬가지야.
손가락에 피가 났지.
승모근이 아파서 절절 매었지.
며칠씩 팔에 각목을 대고서 주법을 바꿨지.
그렇게 네 척추는 S자로 굽었지.
온통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 덕에
넌 세게적인 왕립학교에서 당당하게 수석을 해냈잖아.
우리는 오물 속에서
자신을, 자신의 삶을 대하는 방식을 배우고
그 속에서 움튼 감사와 사랑을 느끼고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는 본성을
온몸으로 체화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니?
그러니 이제,
엄마는 자뻑할래.
자연에 뻑가서 자신에 뻑가는 순간을 많이 만들래.
그래서, 오물 속을 뒹구는 지금의 삶을 더 매혹적으로 일굴래.
너도 그래라.
자지 못하고
세계적인 거장들의 연주에 부럽고
세계 각국의 내노라는 연주자들과 비교되고
낯선 이국땅에서의 생활도 버겁고
또 주변의 기대에 마음이 무겁겠지만,
지나친 겸손은 자기소멸이란다.
겸손은 상대적이지?
자뻑은 절대적이구.
겸손보다 자뻑이 필요한 시점엔 자뻑해야 한다.
엄마는 엄마 스스로가 자뻑할 정도의 글을 쓰고 싶어.
너도 네가 자뻑할 정도의 연주를 해.
내면으로 자뻑하고
외면으로 겸손해라.
그렇게 예술가로서의 네 삶을
순간순간 황홀하게 연출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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