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가 되어]라는 노래를 무지무지 좋아하지만
나는 먼지가 싫다.
방방마다 돌아가는 청정기 필터에 얼마나 먼지가 붙었는지도 자주 본다.
먼지가 많이 붙은 날엔 '이렇게 방에 먼지가 많았구나' 기염하고
먼지가 별로 붙지 않은 날은 '내가 다 마셨구나' 하며 기염한다.
먼지를 일으키는 장본인은 나다.
이 방에서 어슬렁거리는 생명체는 나밖에 없으니 먼지의 주범은 나다.
기껏해야 커피를 타러 왔다 갔다 하는 것말고는,
조용히 책상에 수 시간 앉아있을 뿐인데도
늘 먼지가 많다.
먼지를 없애려면 나를 없애야 한다.
생명체가 살아 돌아다니는 한 먼지는 계속 생긴다.
먼지에 민감한 것은
전체가 검정색인 너른 책상 탓이다.
내 서재는 층고 4미터에 전면이 통창이고 커튼이 없다.
못박는 것도 싫고 뭘 주렁주렁 매다는 것도 싫다.
뭣보다 책상에 앉아 전면에 보이는 푸름이 좋아 커튼을 달지 않았다.
그러려면 한낮 햇빛을 고스란히 받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오후 3시경
해가 본격적으로 창으로 들어올 때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돋보기를 써야 글자를 읽는 두 눈이,
이 작은 먼지는 어찌 이리 또렷이 보는지 기이하고,
빛은 먼지를 보여주려던 게 아니라
깨끗했음을 보여주려던 것인데
먼지만 보는 나도 기이하다.
이어이 펜을 놓고 손에 물티슈를 쥐게 하는
먼지에게 하루 성질의 총량을 다 쏟아부으며
책상을 박박 문지른다.
예전에 언니가 우리집에 놀러와서 이렇게 말했다.
'식탁 위에 왜 아무 것도 없니?'
대개 식탁위엔 잡동사니들이 한쪽에 쌓여 있어야 한다.
내가 너무 과한가?
너무 피곤하게 사나?
나는 설거지 거리도 쌓아두지 못하고
분리수거도 대충 하지 않고
사용한 물건도 바로바로 제자리로 옮긴다.
내가 있던 자리를 내가 있기 전으로 되돌릴 때 나는 자유롭다.
내 손이 닿은 물건을 아무렇게나 방치하면 그 뒤가 어떨지 훤히 안다.
마음가는대로 두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는 것도.
제자리로 옮길 것이 계속 있다는 건 움직이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것은 멈출 때가 있다.
그 멈출 때 있어야 할 자리가
제자리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지킬 때
일상은 구조가 되고
웬만해선 쉽게 어지럽혀지지 않는다.
사실 학교 선생인 언니가 물었을 때 내 속에서 은밀한 우월감을 발견했다.
내 삶이 정돈되어 간다는 우월감.
그것이 불안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내 정신의 단면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마 언니는 모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움직이는 생명체가 나밖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노트북도 펜도 쓰여지는 한 살아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소중하다. 그러니 얘네들도 먼지를 일으키는 주범이다. 우리가 이렇게 제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는 한, 먼지는 계속 생길 것이고 나는 여전히 물티슈를 쥐고 책상에서 벌떡 일어날 것이다. 다만, 어제처럼 먼지에게 성질을 다 쏟아붓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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