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갑게 느끼며 살아갈 시선이 있다는 것은.

by 지담


시골로 이사온 후

나는 일요일마다 강원도에 간다.


우리집은 경기도 양평이지만

집앞에서 버스를 타면 2정거장,

행정구역상 강원도에 있는 작은 읍내의 성당이

우리집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새로 신부님이 부임하셨다.

강론 때 부임인사를 하실 줄 알았는데 인사없이 강론만 하셨다.

우리 국민들이 노벨평화상의 후보가 되었다며

삼일절인 오늘은 조금 더 옆사람을 챙기고

내 손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소중한 것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자 하신다.



순간 나는, 내 기도를 들으셨나 싶어 놀랐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닮아도 되는' 사람,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읽으면 득이 되는' 글이다.

그래서 난 지켜야 할 것이 까다롭고 많다.


글다운 글을 쓰고 싶은 마음,

내 속에 얽혀 있는 지식들을 삶으로 풀어낸 글을 쓰고 싶은 간절함.

낸생 처음 만난 신부님이 지금 내 마음 속 문장을 말하신다.

지켜야 할 것을 붙잡고 하루를 사는 나의 기도를 하느님이 들으신 게 분명하다.


'따뜻한 시선으로 맞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사를 끝내면서야 신부님은 짧게 부임인사를 하셨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삶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웃지 않아도 입가의 주름은 한평생 미소가 떠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굳이 듣지 않아도 눈빛 하나로 살아온 삶의 온기가 전해지는 사람.

신부님이 그러하셨다.


그의 온화한 눈빛과

'따뜻한 시선'이라 전하신 5글자 속에

나는 하루종일 머물러 보기로 했다.


내가 다니는 시골의 작은 성당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진부한 말은 진실이다.

'눈으로 말해요'라는 노랫말처럼 눈은 말보다 마음을 더 깊이 전한다.


커다란 몸뚱이에 박힌 지름 1센티미터 조금 넘는 검은색 동그라미.

화려한 색도, 특이한 도형도 아니다.

흰색과 검은색, 단순한 평면이지만 이 작은 동그란 공간에 천만가지 마음이 담긴다.

가장 단순한 것에 가장 복잡한 마음이 투영된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갑자기 소름끼치게 무서울 때가 있는데

오늘 하루종일 내가 그랬다.

그러면서 내 눈을 오랜만에 한참을 바라봤다.

남보다 더 진한 검은색의 큰 눈동자다.


복잡했을테고 어지러웠을테고 검은 악마도 잠시 머물렀을 내 마음이,

그대로,

이 동그란 물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졌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두 눈을 감아버렸다.

눈두덩이야 분칠로 하얗게 만든다지만

눈동자는 내가 어찌 만져볼 도리가 없다.

내 마음과 영혼의 색을 그대로 드러냈을 것이다.


러다,

따뜻한 시선이 있다면

차가운 시선도 있을 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뭘까?가 궁금해졌다.


차가운 시선을 느꼈을 때,

나는 말을 닫았고 마음을 포기했고 뒤로 돌아섰다.


따뜻한 시선과

차가운 시선...

엉뚱하겠지만 이 둘의 차이는

따가운 시선을 지니고 사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아닐까?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자유로울 때 무지 행복하다. 하지만, 내 맘대로 사는 게 자유가 아니란 것은 누구나 그렇듯 나도 일찍 알았다. 따가운 시선때문이다. 성당문을 열 때 뜨끔하지 않으려고, 부모님 욕먹이지 않으려고, 이제는 딸아들 보기 부끄럽지 않으려고 날 붙잡아준 시선. 이 시선이 없었다면 내 눈은 차가웠을 것이다.


나처럼 스스로를 들끓게 할 줄 알고

그것에 집요하게 집착하는 인간이

그 무엇도 따가워하지 않았다면

나는 필경 무책임하게 막 살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여기처럼 고요한 시골이 아니라,

어둡고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내가 지닌 힘을 사용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힘은 어디로 사용하든 힘만큼 작용한다.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고 판단할 때 내 말과 행동, 글에는 책임이 주어진다. 자유로운 영혼이 구속을 스스로 강제할 수 있는 힘은 늘 나를 멈추게 하는, 따가운 시선 덕이다. 나는 따가운 시선 덕에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평생 따갑게 느끼며 살아갈 시선이 있다는 것,

평생 영혼을 주시해주는 시선을 지니고 산다는 것은 행운이다.

평생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방식을 지닌 것이니까.


나름 글이라는 걸 쓰는 내게

따가운 시선이 없다면,

내 글은 욕망의 수단이 될 것이다.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손끝을 멈추고 입을 다물 줄 안다면

내 글은 진정한 책임과 덕을 위해 읽힐 것이다.


따가운 시선을 마주하며 글을 쓸 때,

나는, 내 삶은,

내 삶을 담은 내 글은...

더 따뜻한 온기를 지니고

그렇게 내 마음을 담은 내 눈빛도

따뜻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시골.

지금 나의,

가장 무섭도록 따가운 시선은,

자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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