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밥상, 두 세계

엄마의 유산

by 지담

네가 지난 방학 때 한국에 왔을 때였어.

부산할아버지 할머니랑 밥을 먹는데

할아버지가 젓가락으로 네 밥에 반찬을 얹어 주셨지.


너는 괜찮다고,

스스로 먹겠다고 말씀드리면서 살짝 눈살을 찌뿌렸어.


이를 알아챈 할아버지가

이 녀석. 왜 표정이 그러냐고,

오랜만에 본 손주 나무랄 수 없었지만 살짝 언짢아 하셨고

옆에 있는 할머니와 엄마는 눈치만 살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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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평범한 행위에

부족한 이해는

갈등이 된단다.


너는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미국으로 갔지.

정체성이 형성될 나이에 미국에서 살았어.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홈스테이 주인어른이 만들어둔 음식을 혼자 챙겨 먹었고

학교에서는 개인 식판에 주섬주섬 자유롭게 먹고 싶은대로 먹었구.

그러니까 청소년기, 넌 미국의 문화 속에서 정체성을 만든 거야.


그러니,

할아버지께서 입을 댄 젓가락으로 반찬을 얹어 주신 것이

자못 불편했을거야.

할아버지는 사랑이었지만

네겐 위생이었지.


당연해.

둘 다 틀리지 않았고 잘못도 아니다.

그냥 다른거야.


엄마는,

90이 다 되신 아버지에게 네 정체성을 설명하는 것은 외람되었기 때문에 설명을 거뒀지만 몹시 마음에 걸렸어. 네게도 여기는 한국이니까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또 말을 삼켰어. 그러면서 엄마는 조금 난감하더라구. 엄마 잘못 같기도 했고.


할아버지의 심정도 알겠고

네 표정도 왜인지 알겠거든.


사랑인지, 위생인지.

세대인지, 문화인지.

예의인지, 정체성인지.


가족이지만 각자 세계가 다를 때

밥상에서 무엇을, 누구를 더 우선해야 할 지

생각이 많아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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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방식을 강요하면 갈등이 돼.

위생을 사랑앞에 놓으면 이 역시 관계가 건조해지구.

다름을 인정하고 그대로를 존중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


그런데 아이야,

갈등 앞에서

비로소,

지식은 삶이 돼.


뻔하게 머리로 아는 지식이

삶으로 들어온 순간,

어렵단다.

지식이 삶으로 딱 들어오는 순간 감정부터 상하거든.

감정은 늘 지식보다 앞서지.


할아버지에게는 먹을 것을 얹어주는 것이 사랑이고

너에게는 스스로 먹게 두는 것이 존중인데

할아버지와 너,

한국과 미국,

90세와 20세.

이 차이를 좁힐 수 있는

시작은

'존재에 대한 인정'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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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각자 살아온 시간 속에서

자기 삶의 방식을 만든단다.

이를 먼저 존중하면,

참고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돼.

갈등이 생기지 않으니까.


반찬을 얹어주는 할아버지가 비위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거나

자기 손길을 마다하는 손주가 버릇 없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거든.

네가 여기까지 이해한다면

아마 앞으로 네 기준을 유지하되

네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 같아.


그리고 하나만 더 말할께.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판단이 편견인지 모를 때가 많아.

왜냐면,

익숙한 문화, 환경, 관습으로 굳어진 습관이

기준이 되어 버리거든.

객관이 기준이 아니라

익숙함이 기준이 된거야.

그러니까, 편견인 줄 모르고 옳다고 여기는 것이지.


아무리 가족이지만 문화가 다른 경우,

분명 불편한 순간은 충분히 예상돼.

문화가 다르면

예절도 달라지니까.


사랑이 때론 갈등이 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진짜 사랑은,

갈등이 되기 전,

서로의 존재를 그대로 바라보는 잠깐의 시간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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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연재]

월 5:00a.m. [사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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