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나는,
나의 간사함을 봤다.
글에 몰입하겠다고,
밀도있게 시간을 쓰겠다고 방금 말해놓고
가슴에서 글이 올라 왔는데도
미루고 책만 읽고 있었다.
방금 뱉은 말을 그새 잊고 귀찮아하는
나와 마주한 순간,
솔직히 부끄럽다기보다
인간다워지는 내가 더 좋아졌다.
방금전까지 나는 시 하나를 붙잡고 끙끙대고 있었다.
'나는 나를 갈망합니다.'라고 시작할까,
'나는 나를 갈망한다.'로 시작할까.
문장의 끝에 따라 화자인 내가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진다.
그래서, 같은 내용이지만 시작을 어떤 어조로 하느냐는
뒤에 따르는 단어와 문장의 결을 좌우한다.
합니다. 라고 쓰면 겸손한 목소리로,
한다. 라고 쓰면 비장한 선언처럼 들릴 것이다.
이 차이를 붙잡고 두어시간, A4 10장을 없앴지만
아직도 끝이 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순간,
나를 간사하게 여긴 느낌을 들여다 봤다.
합니다와 한다에서 방향을 잃은 나를 잠시 멈추도록 허락한 시간,
간사함은 더 내밀한 나를 알고 싶어 하는 느낌이었다.
내 심정의 끝까지 가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내가 나를 서둘러 재단하는 버릇은 빨리 버려야겠다.
남에게도 그래야겠다.
느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열기 전에
판단하는 것은
꽃봉오리를 억지로 벌려 꽃을 꺼내는 행동과 같다.
빠르게 판단하고 신속하게 움직이려는 나를
더 자주 강제로 멈춰 세워야겠다.
시골에 사는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장화를 신고 다닌다.
가만히 서 있거나 쭈그리고 앉아 잡초라도 뽑으려면
개미가 발등을 오르고
벌레도 신발 안으로 기어들고
장화 옆으로 뱀도 지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쉽게 밟아 버리거나
빠르게 도망가지 않는다.
나는 벌레를 구분하는 지식도 눈도 없다.
그냥 초록의 다리많고 길죽한 녀석들은 여름 내내 날 황홀하게 해줄
나비가 될 녀석이라 믿고 공평하게 대한다.
혹시 모른다.
비단실을 뽑아낼지도.
내가 날 간사하게 보고
합니다.와 한다.로 끙끙대던 시간도
어쩌면 그런 내일을 당기는 시간일 것이다.
대부분 아름다운 것은
징그럽고 하찮게 보이는 데서 태어난다.
다이아몬드가, 나비가 그렇듯
인간이 그토록 바라는
사랑도
성숙도
모두 처음엔 벌레처럼 징그럽고 하찮은
얼굴로 대면한다.
2026. 3월 어느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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