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 Aug 29. 2022

새벽독서는 내게 혁명이었다.

1000일의 새벽을 맞이한 지금

도저히 이대로는 안되겠다!


몇년 전 

더 나은 나, 진짜 나, 미래의 나, 원하는 나. 를 위해

나는 극단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계기?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에게도 그래야 할 것 같은 찰나가 있었던 것 같다.

그저 '도저히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던 하루하루들.

답답함을 너머 죽든가 변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절대절명의 위기처럼 느껴지던 그런 날들.


관계정리하기 - 모임근절 / 답없는 상대에게 오지랖 근절
자산만드는 것에 일단 집중 - 자산이 뭔지 알아버렸다.
소비패턴 완벽히 바꾸기 - 써야할 곳에만 쓰기.
처절할 정도의 수입늘이기 - 아... 이 얘긴 다음에 다른 지면에서 다뤄보는 걸로.
그리고.
새벽독서.


글로는 간단해 보이는 위의 5가지는  내 생활 전반에 정신적으로, 환경적으로, 

거의 모든 생활에서 

적어도 나에게는 극.단.적.이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그런 시도들이었다.


할까 말까? 하면

일단 해! 움직이기부터 하는 내 성격은 나를 심하게 몰아부쳤다.

하나씩 천천히, 예를 들면 1주일에 3번만 하다가 서서히 늘여야지.. 뭐 이런 식이 아니었다.

시작! 과 동시에 매일 해야 하고 안하면 무지하게 나를 다그치는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당연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적갈등에 시달리고 

수시로 실패하면서 '나는 안되나봐' 했지만 

'하루만 쉬고!'는 결코 용납이 안되는 하루하루의 연속.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오늘 실패하더라도 그냥 내일 또 하는, 그 반복이 습관이 되었다. 


여하튼 처음 몇달은 나름 정렬되어 있던 정신의 질서도 무너지고

위염은 다시 도지고 낮엔 닭처럼 졸곤 하는,

아무튼 전체적으로 삶 자체가 뒤죽박죽이었지만


나는 그냥 믿어버렸다.


자연의 흐름대로라면 

혼란은 정리로 가는 과정이니 

이왕 혼란스럽게 어지러워진 거 제대로 흩어버리자! 라고.

어쩌면 더더더더 날 극단으로 몰아쳤던 것도 같다.




새벽 4시 기상, 그리고 새벽독서

부끄럽게도 가장 날 힘들게 했던 것은 새벽 4시 기상이었다. 

(당시 나의 평균 기상시간은 7~8시 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무진장 커다란 결단을 요구하는 행동이었지만

그보다 더 나에게 지독했던 어려움은

새벽 4시기상 후 강행한 독서였다.


하지만,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새벽 4시기상, 이어지는 지독했던 새벽독서.

내가 '지독한 독서'라고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한다고 판단한' 책들을 읽기로 작정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고 잘하는 국어가 아닌, 하기 싫은데 못하기까지 하는 수학부터 해야 하는 심정이란....  


소설이나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책 좀 읽네'(지적허영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그저 내 만족으로의 독서 수준)로

스스로 자족하던 평범한 중년아줌마의 지성에

엄청난 지식을 쓰나미처럼 집어넣었으니 

양심고백을 하자면 읽는 책마다 반절은 모르고 그냥 양만 채우기 일쑤였던 것 같다.


나는 누구? 지금 여긴 어디? 이건 뭔말?

그 동안의 일상은 당연히 무너졌고 

지적한계에서 번번히 좌절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고 속삭이는 내 속의 악마와 수시로 싸우고...

여하튼 시도 때도 없이 졸고 대화도 잘 못하고 에너지가 바닥나도록 지독했던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분명한 것은 

내 인생 시나리오에서 결코 각색되어서도 편집되어서도 안되는 중요한 하이라이트가 바로 이 기간이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시기 지나치게 살.아.있.었.고. 

승격된 에너지의 레벨과 여파는 지금까지 나에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니까.




시작은 엉망이었지만 '원하는 나'로 발길을 돌린지

3년여가 지난 지금!


나는!

정리되었다.


정신도, 육체도, 지력도, 경제력도, 관계력도, 

내 삶을 구성하는 거의 대부분이 정리되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나는 내가 기특하고 멋지고, 여하튼 조금 맘에 든다.


'원하는 나'를 위한

뚜렷한 목표가 정해지고

목표에 의해 우선순위가 정리되고

이에 따라 계획된 일상에는 군더더기가 없으며(말 그대로 단순 그 자체)

내 정신은 24시간 살아 있다.

육체? 아줌마 뱃살 팔뚝살 빼고는 나름 괜찮다. 


새벽독서가 인류를 구하는 엄청난 혁명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나에겐 '나의 삶'으로 방향을 틀어버린 

대지진이자 대혁명인 것만은 분명하다.


새벽독서의 반복은 

나의 정신을 훈련시켜 지력을 강화시켰고

나의 육체에 더 관심을 쏟게 해 더 단단해졌으며

나의 마음에는 왠만한 것으로부터의 타협은 어림없는 강단을 심어줬다. 


새벽에 만난 책속의 저자들은

나에게 꿈꾸는 방법을 알려주고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살아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었고.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어떤 교육자이며 어떤 부모여야 하는지 제대로 정리시켜 주었다.

그리고 자신없는 나와 마주할 때마다

해보라고, 할 수 있다고, 알려준대로만 하면 된다고 나를 채근해주었고 

의지할 수 있도록 문장을 열어주었으며

내가 정신차리지 못하고 오만해지거나 좌절할 때에는 

엉덩이를 팡팡 때리면서까지 무지하게 혼내기도 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렇게 원한다면 한 번 해보라는 새벽에 만난 죽은 자들의 다그치는 강렬한 메세지에 

새벽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태양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던 1000일.


1000일이 지나고 지금 돌아보니

그 길로 걷든말든 모든 건 내 선택이고 내 책임이겠지만

'네 능력말고 세상의 손을 잡고 가라는' 

우주가 내민 손을 나는 잡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멈출 수 없는 이유

새벽독서 2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읽게 된 '미치호로위츠'가 '윤리적 가치', '삶의 성공'을 외치며 제발 좀 이렇게 해봐! 라고 적은 그의 책 일부다. 

이 글을 읽고 쾌재를 부르며 카페에 글을 썼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미치호로위츠 '미라클클럽'

https://cafe.naver.com/joowonw/4170


호로위츠는 도덕경부터 소로우, 에머슨, 아우렐리우스, 빅터프랭클, 나폴레온힐을 읽고

9개월간 미친듯이 꼬박 열정을 쏟으란다.

'오마이갓! 나는 다 읽었는데!!!'

얼마나 기쁘던지!!!

얼마나 뿌듯하던지!!!


호로위츠가 거론한 책들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학자들, 제레드다이아몬드, 유발하라리, 니콜라스나심탈레브, 말콤글래드웰, 마우리기옌, 마이클샌들, 스캇펙, 린다그랜튼, 다니엘핑크 등 /  

철학가들, 애덤스미스, 세네카, 몽테뉴, 소크라테스, 발타자르그라시안, 쇼펜하우어, 니체, 랄프왈도에머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공자, 노자, 귀곡자 등/ 

찰스해낼, 린그라본, 그렉브레이든, 제인로버츠, 톨스토이, 앤서니로빈슨, 짐로저스, 제임스알랜, 월러스워틀스, O.S.마딘 등의 성공가이자 사상가 / 

올더스헉슬리, 알랭드보통, 파올료코엘뇨, 오그만디노를 비롯한 소설가이자 사상가 /

뤼디거달케, 데이빗갓맨, 그렉브레이든, 네빌고다드, 스웨덴보그 등의 영성학자 등 

모두 거론할 수 없지만 '지독한 새벽독서' 선언 이전엔 손이 가지도 않던 책들과 보낸 새벽독서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이 모든 목록은 리스트로 업데이트되어 현재 독서모임에서 체계적 책읽기 컨텐츠로 제공되고 있다)


호로위츠가 말한 9개월은 물론, 3년이 넘었으니 호로위츠 말대로라면 

나는 '나의 삶을 바꿀 수 있을만큼의 아주 중요한 시간'을 3번 이상 보낸 셈이다


'책'을 읽는다고 떡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그렇게까지 안해도 되는데 왜 그러냐?'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싼다'

'뭘 더 얻으려고 그러느냐 욕심 좀 그만 내라'

'그냥 네가 하는 일이나 잘해라'

별의 별 조언으로 나의 지독한 책읽기를 안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들을 멀리 하는 것을 택하며

3년전 그 때보다 나아진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지금부터 또 다시 3년을 보낸다면 (물론 똑같이는 아니고 좀 더 다른 목표와 좀 더 다른 습관으로)

나는 더 나아지겠지.

오롯이 나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나를 꿈꾸며

오늘도 나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목표를 쓰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100일의 기적'에 도전한다. 


내가 보낸, 그리고 지금 보내는 새벽 시간은 

애덤스미스의 자리(自利), 사무엘스튜어트의 자조(自助), 랄프왈도에머슨의 자시(自時) 였던 것이다.

나부터 '제대로 된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조화'를 위한 이타이며

내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이라는 것을

성인들의 가르침을 통해, 

그리고 직접 경험을 통해 나는 알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멈출 수가 없다.



* 별 건 없지만 저의 '100일의 기적'을 보시려면 여기로!  

https://cafe.naver.com/joowonw/5143


매거진의 이전글 '오롯한 나로 성장하기'에 대한 통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