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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25. 2022

공부 좀 했다는 부모의 5가지 오류

공부 못(안)하는 자녀를 둔 부모 필독!-7탄

매주 일요일 새벽 5시, 공부못(안)하는 자녀를 둔 부모필독 매거진(일명, 공자매거진)을 발행합니다. 

지난 주 [발아(發芽)를 시작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많은 분들께서 질문을 주셨어요. 제가 개인적으로도 답장을 드리긴 했습니다만 몇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차차 본 매거진을 통해 글로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참! 오늘이 크리스마스군요!!

모두 메리크리스마스!!!!!!!!


엄마아빠 모두가 S대를 나온 경우 자녀들은 '똥밟았다'고 한다죠? 

세상에, 부모랑 같이 사는 게 똥밟고 사는 거라... 부모가 똥같다는 겁니다! 너무 심하다 싶지만 아이들이 어쩌면 '공부 잘 한' 내 부모는 대화가 안통하고 자신을 결코 이해해주지 않는, 더러운 기분을 이런 식으로 과감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나 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하면서도 분명한 1가지를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공부만' 잘한 부모와 '공부도' 잘한 부모.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부모상은 어느 누구나 '공부도 잘한'이겠지요.


본 매거진을 시작하면서 연거푸 지속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공부'는 참 쓸모있습니다. 잘할 필요가 있고 잘하면 좋지요. 그런데 여러가지 공부 중에서 어떤 공부부터 우선하는 것이 우리가 보편적으로 말하는 '공부', 즉, 성적이라고 이름하는, 대학 잘 가는 것으로 결과되어지는 그것을 불러오느냐인 것인데 큰 테두리에서의 공부는 '삶'이라는 것을 살아가기 위해 '꿈'이 모든 잠재력을 이끌어내기에 저로서는 꿈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지난 몇 편의 글을 통해 전해드린 바가 있습니다.


아울러 이렇게 꿈을 꾸는 어른이 직접 옆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의 큰 교육은 없기에 부모가 먼저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 가령, 도전, 극복, 성취, 고통, 난관, 습관, 열정, 긍정 등등등등.. 수없이 열거되는 항목들을 두루 보여주는, 이러한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은 말 그대로. 공부못(안)하고 사고치는 아이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짓을 하는 게 기적인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오늘은 '공부도 잘한 부모', 또는 '공부만 못한 부모'가 되기 위한 서막을 시작해 보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공부만 잘한' 이들이 어떤지부터 알아야겠기에 간단하게 5가지의 지양해야 할 바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특히, 나름 '가방끈' 좀 길다 싶은, 또는 잘나간다는 부모들께서는 아래의 5가지를 꼭 숙지하시고 자신의 모습, 특히, 자녀관계에서 자신이 이런 모습의 부모는 아닌지 조금은 유심히 살피셔야겠습니다.


현시대 지능연구의 최고라 불리는 로버트 스턴버그(R.Sternberg)는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 5가지를 그의 논문에서 언급했었습니다. 이는 저의 연구시 제 논문, 또는 저의 저서에 인용되어 있으니 참고바라구요. 그가 말한 5가지에 저의 교육관과 사상을 보태어 설명드리려 합니다.

지식이 많다는 것, 즉 머리는 큰데 이것이 삶으로 적용되는 과정은 오류투성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지식을 활용할 줄 모르는, 지혜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이죠. 그는 비현실적 낙관주의, 자기중심주의, 전지, 전능, 불사신이라 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구요.


첫째, 비현실적 낙관주의(Unrealistic optimism)입니다.

나는 지식이 많으니 뭐든 알고 있다고 믿는 오류죠. 

우스운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게 뭔지 알려고 하지 않는 무지한 자랍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자는 무지한 그것에 소신까지 있는 사람. 또 있어요. 더더더 무서운 사람은 무지한 소신을 지키기 위해 부지런하기까지 한 사람이라네요! 혹시 자신에게 그러한 우스운데 무서운 면이 있지는 않나요? 


한 마디로 '경직'된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경직'이라는 단어를 한번 뜯어볼까요? 경직은 무언가의 입자가 모여서 굳어버린 것입니다. 마치 흙처럼요. 흙은 아주 가는 알갱이인데 여기에 물이라는 새로운 입자가 들어가면 흙이 뭉쳐져서 진흙덩어리가 되죠. 이러한 경직. 나의 사고도 하나하나의 지식이 들어가 그것들이 개별로는 훌륭하나 외부로부터 잘못된 경험의 자극이 보태져 굳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깨버리면 되죠. 진흙은 어떻게 깨나요? 빨리 깨려면 망치같은 둔탁한 것으로 가격할 것이구요. 천천히 깨려면 진흙으로 뭉친 물기를 없애면 되죠. 그런데 분명한 것은 습기를 말리면 최초의 입자인 흙으로는 돌아가지 않고 부스러져 버립니다. 또한, 망치로 깨버려도 덩어리가 분해될 뿐, 애초의 것으로 돌아가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굳게 경직된 사고를 깨려면 망치로 얻어맞는 아픔을 견디든, 외부로부터 들어온 무언가를 소멸시키든 둘 중 하나는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바람에 날라갈 놈들은 어쩔 수 없고 남은 지식의 잔재만으로 다시 덩어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식이 많으니까 다 안다는 경직된 사고의 일관성은 분명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를 바탕에 깔고 대화를 하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지식이라도 그 보이지 않게 바탕에 내재되어 있는 '무시'가 상대에게 바람을 타고 전해져 결코 바람직한 소통을 이뤄낼 수 없습니다. 당연히 본인이 안다고 자부하는 그 것 역시 전해지지 않죠. 진흙이 더 강하게 뭉쳐지거나 깨지지도 않으면 참.. 골칫덩어리입니다.


둘째, 자기중심주의(Egocentrism)입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믿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서의 잘못은 타인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다 아는데 뭔 잘못을 했겠냐.는 거죠. 그러니까 모든 것은 환경탓, 부모 잘못 만난 탓, 네 탓이라는겁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너무나 쉽게 저지르는 오류이고 또 너무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유형의 '잘난 사람'들 특징입니다. 정치인들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죠. 또 그들의 자녀들이 저지르는 행태들을 뉴스에서 접하면 아! 이런 거?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은 늘 변명하기 바쁘죠? 그렇게 많이 배우고 그렇게 좋은 자리에서 그렇게 좋은 옷을 입고 그렇게 근사하게 말하지만 '변명'이 많죠. 변명이라 느껴지면 그 사람이 가진 외적, 사회적, 기타 모든 것들이 더 우스꽝스러워집니다. 그들의 주장은 '저저저저, 변명뿐이네!' 오히려 욕만 먹습니다. 상대도 하기 싫죠. 말이 안 통하니까. 자격이 부실하니까. 그래 너 잘났다. 외면하는 게 편하죠.


자녀와의 대화 역시 여러분은 그렇게 정치인처럼 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한두번은 '엄마는 내 맘 몰라!'라며 그냥 툭 하니 아이가 토라질 지는 모르겠지만 자기맘 몰라주는 이와는 대화하기 싫은 것이 인간의 본성인지라 부모자녀관계는 분명 소원해질 수밖에 없지요. 그러다 보면 아이의 시간은 부모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흐르게 된답니다. 부모는 내 아이를 모르는 바보가 되죠.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는데'하면서 자신을 믿지 실제를 믿지 않는 허상가가 되어요. 자기 자녀가 저지른 악이 사회의 악이 되는, 죄인도 되구요.


셋째와 넷째는 전지(Omniscience)와 전능(Omnipotence)입니다. 

'전지전능'은 말 그대로 신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냥 이 단어만으로도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오시지요? 자기는 공부를 너무 잘했고 항상 1등했고 S대까지 나왔으니 자기는 더 이상 배울 것도 없고 자기를 그 어느 누구도 이길 수 없다는, 그러니까 너는 내가 시키는대로 말하는대로 하라는대로 하면 된다.는 사람입니다.


'내가 다 알아서 해줄께.' 라는, 말도 안되게 건방지고도 영웅심리 가득한 태도를 대변합니다. '됐어', '내가 다 알아서 할께'와 같은 표현이 많다면 이런 자질이 농후하다고 볼 수 있지요. 자, 이런 분들께 여쭤보겠습니다. '자녀가 S대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물론, 엄청난 지식과 정보가 쏟아져 나오겠지요. 그렇다면 'S대를 졸업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아십니까?' .... 거기서부터는 답이 어려워질 것입니다.

'4차혁명시대 지혜로운 MOTHER' 발췌

삶은 방법에 있지 않고 방향에 있거든요. S대 가면 좋습니다. 최고지요. 그러길 바라고 갈 수만 있다면 밀어줘야죠. 하지만, S대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방향이 없다면 거기가 끝입니다.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가 뭐야? 난 잘 모르겠는데 네가 스스로 찾아봐야지. 그게 없으면 대학갈 필요가 있을까?'라고 나몰라라 해보세요. 오히려 자녀가 스스로 자기이유를 찾을 것입니다. '영어(수학 등등의 성적)을 잘 해야 하는 이유가 뭐야? 엄마는 잘 모르겠는데!', '엄마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성적을 잘 받고 싶었거든. 너는 어때? 엄마가 네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잖아.' 라고 얘기해보세요. 그러면 자녀는 '아! 모르니까 알려줘야지' 라며 신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기의 것을 찾고 자기를 보여주려 할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째, 불사신(Invulnerability)입니다.

무적의 불사신. 단어만으로도 우습지요? 하지만 무슨 의미인지 딱! 아시겠지요? 천하무적이라는 거예요, 내가 S대 나왔는데!! 내가 난데!!!! 다 덤벼!!! 뭐 이런 거죠. 세상에 아무 것도 무서운 게 없는 사람. 자신감이 넘치는 게 아니라 자존심만 강한 바보인거죠. 그래서 자기가 바보니까 남들도 바보로밖에 보지 못하는, 참으로 불쌍한, 열등감에 꽉 차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입니다. 자신은 무서울 게 없으니까 맘대로 해라. 배째라. 식인거죠. 


글로 읽으니까 저와 함께 치치거리면서 흉도 보시겠지만 주변에 이런 부모 의외로 상당히 많습니다. 나는 '갑'이야. 라는 태도를 가진 사람 대다수가 이런 성향이 있는 것이죠. 자신의 배움의 양, 학벌, 명함이 곧 '권력'이라 착각하는, 그래서 상대를 '제압'하거나 '복종'시킬 수 있다고 여기는. 온통 자신의 욕망으로만 가득찬 사람입니다. 

'내가 너한테 이렇게 돈을 쓰는데 왜 00보다 못하니?', '엄마가 직장까지 관두고 너한테 이렇게까지 희생하는데 어쩌구저쩌구' 등과 같이 쉽게 뱉는 자녀와의 대화 역시 이런 갑질인 것입니다. 자녀는 그런 희생을 원한 적이 없습니다. 다 부모 자신이 선택한 것이죠. 또한 '희생'이란 없습니다. '선택에 따른 책임'만 따르죠. 


스턴버그가 말한 5가지를 부모에게 대입시켜 간단하게, 조금 극단적인 부정의 측면에서 열거해 봤습니다. 그냥 죽 한 번 되뇌어 보세요. 나에게 혹여나 이런 모습은 없는지.... 

그저 잠시만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반성이나 자책까지는 하지 않으셔도 되세요. 그럼 아이얼굴보기 미안해지고 어찌해야 할 지 모르는 막막함 속으로 오히려 숨게 되니까요. 그런 건 하지 마시고 '성찰'을 하면 됩니다. '성찰'은 미래를 위해 다른 행동을 하게 하는 정신활동이니 오히려 현실에 발을 더 붙일 수 있게 하죠. 


자, 이런 관점으로 한 번 옮겨보세요.

'지시', '강요', '무시'가 아니라 '부탁', '제안', '권유'의 위치로 자신을 옮겨보세요.

'엄마는 잘 모르니까 네가 알려줄래?', '엄마가 바쁘니까 네가 도와줄래?', '엄마생각은 이러이러하니까 네가 결정해볼래?',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으니 엄마말을 따라주면 좋겠어' 등과 같이요.

사실, 부모자녀대화에 대한 강의가 너무 흔하기도 하지만, 저는 잘 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있어요. 한번의 강의로 부모가 쉽게 변하지 않기도 하며 일상에서 매일 수시로 일어나는 대화를 배워서 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당찮은 일이라 저는 '관점'을 바꿔드리는 강의를 주로 합니다. 


관점이 바뀌면 언어는 이성이 위치한 관점에서 일을 하거든요. 

서 있는 자리를 바꿔야 다른 전경이 눈에 들어오고 다른 전경이 들어온 뒤 그 배경까지 가늠이 되고 전경과 배경이 합쳐진 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거죠. 서있는 자리를 바꾸려면 어디로 가서 다시 서야할지 결정해야 하고 그 결정이 더 나은 결정이려면 우선, 내가 서야할 자리가 어디어디야? 라고 탐색부터 하셔야 하고 탐색을 하려면 가장 우선적으로,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한다. 고 결정하셔야 하는거죠.


공부 잘했던 부모에게 공부 못(안)하는 자녀는 한참 기준에 못 미치는 한심하고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는 자녀일 것입니다. 내 자녀를 향하는 부모의 시선이 그리할진데, 세상이 내 자녀를 좋게, 높이, 당당하게 봐줄리 만무하겠지요. 이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면 서둘러 해야 할 2가지는 내 시선을 바꾸든지, 내 자녀의 꿈을 찾아주든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어쩌면 이리 말하면 너무나 절망적이기에 할까말까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그대로 노출시켜보면,

일부는 위에서 열거한 것에 해당되는데도 불구하고 분명 위의 글마저 우습게 치부해버릴,

또는 자신이 저런 모습을 가졌음에도 전혀 자신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주변의 누구누구만 떠올리는,

나아가, 아.. 내 모습이구나.. 싶지만 결코 변화를 시도하지 않은 채 나는 알고 있다는 것만 더 강화시키는

그런 부모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늘 느끼지만, 교육은... 정작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닌, 받지 않아도 충분한 이들이 찾는 것 같습니다.

책은... 읽어야 할 사람이 아닌, 읽지 않아도 될 충분한 이들이 더욱 읽는 것 같습니다.

변화는... 변해야 할 사람이 아닌, 굳이 변하지 않아도 충분한 이들이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공은 소수의 몫이겠지만..

씁쓸하군요...



* 8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부모를 위한 독서모임]

몇몇 분들께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책을 추천해 달라고 권하시지만

제가 상대를 모르고 책을 선정하여 추천해드리는 건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하는 것 같아

3개월 함께 독서모임을 해볼까 기획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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