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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11. 2022

공부 못(안)하는 자녀를 둔 부모 필독!-5탄

100년 뒤!

 * 지담브런치는 매주 일요일 '공부못(안)하는 자녀를 둔 부모 필독' 매거진을 발행합니다.


지난 글들에서 우리는

첫째, 내가 낳았지만 내 자식이 아니다.

둘째, 내 자은 천재(天才)다!

셋째, 내 자식은 나에게 유산을 물려받을 권리가 있다! 였습니다.

그리고

1. 교육이란 내면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닌, 보여주는 것이다.

2. 자녀의 행복이 클수록 내 행복도 커진다.

라는 전제를 함께 공유했습니다.


오늘은 엄마의 시선이 어디에 가 있어야 할지에 대해 얘기나눠보려 합니다.




엄마의 시선을 내 아이가 100살일 때로 옮겨봅니다!

너무 먼가요?

10년, 아니, 1년 뒤도 모르는데 무슨 내 아이의 나이 100살까지?

혹시 지금 제게 욕부터 하고 계시는 건 아니지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저와 여러분은 내 아이 100살이 되는 그 곳에 우리의 시선을 묶어두고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죠.


간단명료하게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은 내리사랑,

즉, 내 자식이 행복할 때 내가 행복한 것입니다.

당연히, 내 자식도 자기 자식이 행복할 때 가장 행복한 것이구요!

결국, 나의 행복은 내 손주가 행복해야 한다. 로 정리가 되지요?

더 내려가면 내 손주가 행복하려면 내 손주도 자기 자식이 행복할때... 이렇게 증손주, 고손주까지 죽죽죽죽..

어찌 보면 100년도 모라자지만 우리는 그냥 손주까지만 거론해 보자구요.


지금 제 나이가 50이 갓 넘었고 저의 아이들이 19,20이니까

요 녀석들이 그냥 어림잡아 30 중반에 결혼하여 아이낳고 그 아이들이 또 30 중반에 결혼한다고 가정했을 때 5~60년 뒤, 제 나이는 100이 넘네요. 좀 전 말씀드린대로 내 아이도 자기 자식이 행복할 때 행복하다고 했으니, 내 아이가 100살 정도되면 손주의 손주까지 보게 되겠지요. 그 땐 내 아이의 아이의 아이가 너무나 행복해서 내 아이가 '자식이 행복할 때 가장 행복한' 그 시기를 맞이할 거구요.


이런 지극히 무식할 정도의 단순한 산술만으로

어림잡아 내 시선은 내 아이가 100살이 되는 그 지점으로 가 있으면 

지금 내가 어떻게 아이를 교육시켜야 할 지 그다지 선택이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쉽게 말해서 

결론을 '내 아이가 완전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 그 지점에 내 시선을 두고 과정들을 살펴가면 우리는 좀 느리거나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잘못된 길로 가는 오류는 줄일 수 있다는 거죠.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있습니다.

오답을 피해가다 보면 해답을 만나게 되구요.


자, 이제 여기에 일반적인 견해를 입혀볼까 합니다.

내 자식이 '자신의 자식이 행복한 부모'가 되려면

일단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합니다.(요즘 세상에 꼭 결혼하고 아이낳아야 해? 라고 묻는다면 할 말 없습니다만 보편적인 관례상 여하튼 결혼해서 아이낳기) 요즘 비혼이라는 단어가 유행이죠? 내 아이가 '결혼을 안하거나 동거하고 살다가 잘 맞으면 결혼하고 아니면 말고'. 식이라면. 음.. 내 자식이 그렇다면 저는 이 부분에선 너그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진다 할지라도 제대로 결혼이란 걸 하고 아이를 낳았으면 합니다.

게다가 아이낳는 것 역시 상당히 꺼리는 문화입니다. 경제적인 이유가 주된 원인이라 합니다만 안 낳는 것보다 못 낳는 경우가 더 많으니 이게 문제가 아닐까요? 가임여성의 1/4이 난임이나 불임이라니 말입니다. 이 부분은 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부모로서 내 자식이 인간의 가장 커다란 행복인 '자식이 행복한' 그 행복을 결코 맛볼 수 없을거라는, 우려라기보다는 대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왜 동물도 다 하는 짝짓고 새끼낳는 본능을 내 아이가 하기 싫을까? 아니면 못해낼까? 에 대해 잠깐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정신적인 가치관이야 둘째치더라도

영양불균형인 식습관이 아이에게 체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경제적인 불안정이 아이에게 배우자선정기준을 경제적인 것에 초점이 맞춰지도록 하는, 의도치 않은 강요가 있는 것은 아닌지요?

또한 내가 벌어서 같이 나눠쓰는 게 싫다는 어떤 연예인의 말처럼 '가족'을 위한 '책임'에 대한 가치가 너무 소홀해지는 문화에 내 아이가 노출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둘째, 내 아이가 100세인 시점에 내가 서 있으려면 일단 내 아이가 100년간 쓸 몸과 정신이 건강한지 지금 내가 부모로서 어떻게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지 현실적인 점검이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내 아이가 100년간 쓸 몸과 정신이 나랑 함께 사는 18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셔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치매환자의 급증은 이미 여러차례 보도된 바 있지요. 65세 이상 연령가운데 10%가 넘는(2025년에는 16%이상). 즉 10명중 1명은 치매환자라는데 내 아이가 평생 쓸 정신의 기초가 되는 지금 시기, 제대로 잘 형성되도록 살피고 있나요? 게다가 경제적으로 100세까지 든든할 정도의 경제공부는 제대로 되고 있나요? 경제력없는 부모는 자녀에게도 참으로 부담이 되는 현실에서 지금 내 아이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건강, 경제적 건강이 제대로 교육되어지고 있는지요? 그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떳떳한 부모가 될 수 있는 기초적인 교육이 되고 있는지요? 혹여 국영수에 밀려서 대충 인스턴트로 끼니를 떼우고 수면부족으로 뇌세포가 감소하면서 점점 비혼에 난임에 치매에 빈곤의 확률을 높이고 있지는 않은지요? 


셋째, 내 아이가 60이상이 되는 시점, 지금부터 40년 이후에 세상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우리 부모들은 지금 시류의 변화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자 공부하고 계신가요? 물론,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나도 너도 우리 모두 모릅니다. 미래는 알 수 없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 100년의 변화가 지금 10년으로 단축되어 변할 정도이니 앞으로 40년 이후의 세상은 감히 글자 그대로 상.상.조.차.할.수.없.는. 변화된 사회일 것입니다. '물도 사먹는 시대', '컴퓨터를 손에 들고 다니는 시대'를 감히 상상조차 못했던 때가 불과 2~30년 전이니 이러한 변화의 속도로 40년 뒤를 예상하면 지금 상상하는 것들이 현실이 되는 시대가 된다는 것쯤은 누구나 분명히 아는 사실일 겁니다.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무조건 지금 상상을 뛰어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 아이가 중년 이후에 먹고 살 거리들이 지금의 공부로 준비될까요? 대안이 될까요? 지금 중년을 맞은 우리 부모세대들이 과거의 교육으로 결코 노후가 안정되지 않는구나의 직격탄을 맞은 경험에 빚대어 내 자식만큼은 앨빈토플러의 경고 '한국학생들은 미래에 없어질 직업을 위해 15년을 공부한다'를 결코 허투로 들어서는 안될 것 같은데 왜 아직도 많은 부모들은 자신들이 아는 선에서만, 자신들의 경험에서만, 과거 20세기의 교육으로만 내 자식이 성공할 것이라는 이상한 용기에 가담하시는지요? 왜 내 아이의 사고를 여기저기 차단하고 오로지 공부로 승부를 보려는 무모한 도전에 이토록 용감하신가요? 도대체 아이에 대한 책임을 어디까지로 기준을 삼고 계시는지요?


자, 제가 저의 시선을 내 아이 100세에 두는 것에 대해 이래도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십니까? 결코 과하지 않습니다. 저는 죽어서도 꼭 보고 싶습니다. 내 아이가 행복하게 나이들어가는 모습을, 내 아이가 자기가 일군 자식들과 함께 여유있는 노년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저는 저 하늘나라 어딘가에서 꼭 그리되어 가는 자녀의 삶을 보고 싶습니다.


이런 이유로,

지금 내 아이 입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내 아이 정신에 어떤 것들이 왔다갔다하는지,

내 아이가 가랑비에 옷젖듯 어떤 문화에 젖어가는지

지금 내 곁에 있을 때, 지금 몸도 정신도 문화도 서서히 체화되어갈 이 시기에 100년 쓸 몸과 정신의 기초를 잘 닦아놔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결코, 국영수보다 덜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코, 국영수에 밀려 소홀해서는 안됩니다!

결코, 국영수로 대체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입니다!


국어를 잘하는데 언어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소통이 안된다면

수학은 잘하는데 삶의 함수를 풀어내지 못한다면

영어는 잘하는데 글로벌시민의식이 없다면

과학은 잘하는데 내 옆에 우글대는 세균하나 구분하지 못한다면

게다가 첨단과학에 대해서는 공부하면서 내 미래에 대한 준비가 안되어 있다면


설사 이 모든 것들을 다 잘하는데 50이 되서 관절에 고혈압에 온갖 질병을 달고 산다면

설사 이 모든 것들이 다다 완벽한데 70이 넘어 치매에 걸린다면

설사 이 모든 것들이 다다다 완벽한데 자식이 없다면, 

설사 이 모든 것들이 다다다다 완벽한데 경제적인 개념이 전혀 없어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한다면

설사 이 모든 것들이 다다다다다 완벽한데 사람보는 눈이 없어 이상한 사람과 결혼하거나 여기저기서 사기를 당한다면

설사 이 모든 것들이 다다다다다다 완벽한데 삶의 목적이 없거나 자신에 대한 존엄성이 약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생긴다면 (실제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1위이며 40대 이후 사망률 1위가 혈관질환, 2위가 암, 3위가 자살입니다.)


물론, 지나친 부정이며 염려가 넘치는 글인줄 압니다. 부정을 조장해 불안을 가중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단, 저는 경험주의, 현실주의자를 표방하는 학자로서 인생을 통으로 보고 지금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이 주장에 어떤 미화된 언어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저 내 자식의 행복은 결코 국영수에 있지 않습니다. 국영수는 못하면 과외라도 시켜서 보강할 수 있지만 한 번 어긋난 정신은, 한번 소홀했던 육체는 보수하는 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거나 나아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짐이, 사회에는 악이 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합니다. 국영수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국영수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면 안된다는 것을 대놓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정신이 멀쩡하고 뇌세포가 팔팔한 아이가 어찌 공부를 못하겠습니까?

그러니 제대로 먹이십시오. 인스턴트와 배달, 편한 것에 길들여지면 큰일납니다. 이는 무조건 엄마탓입니다.

육체가 건강하고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아이가 어찌 학교 생활에 지지부진하겠습니까?

그러니 책을 통해 인간을,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경험케 해주세요. 어떤 대상이든 자신의 세계로 진입시키고 내보내는 것이 자유로운 아이로 키우셔야 합니다. 이런 아이는 공부라는 대상도 훨씬 수월하게 인식합니다.

엄마가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을,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지를 아는 아이가 어찌 엄마와 대화를 기피하겠습니까?

아이와 대화가 안되는 것은 무조건 엄마탓입니다. 아이는 엄마를 통해 세상을 연습합니다. 아이에게 세상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엄마와 대화가 안된다면 세상과의 소통도 어려운 아이가 됩니다. 이런 아이가 공부만. 잘한다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겠지요.


혹여 우리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친 채 또는 미룬 채 또는 외면한 채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잔소리같은 잔소리가 늘어지는 것은 이러한 부모들을 너무나 많이 만나본 경험이 제게 안겨준 두려움때문일 것입니다. 남의 자식에 오지랖부리는 것도 아니고 괜한 정의로움으로 남의 자식에 관심갖는 사람이고싶지도 않습니다. 제겐 그런 책임도 정의도 없습니다. 단, 내 자식 내가 잘 키우지 않으면 남의 자식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이 얽키고 설킨 우리네 삶에서 내 자식 잘 키우는 것만이라도 우리 각자 잘 해내자는, 어쩌면 이기적인 발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저를 취급하셔도 좋습니다. 내 자식이 잘못 키운 남의 자식으로 해를 입기 싫듯이 내 자식이 남의 자식에게 해를 입히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어른들은 다 아시겠지만 얼마나 세상에 배신도 사기도 범죄도 이기도 많습니까? 정신이상도 사이코패스도 기타등등 입에 담기도 싫은 어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현명하게 잘 키운 아이들은 이런 류의 부정적인 사건사고를 범하지도 또한 휘말리지도 않습니다. 실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천여중생살인사건. '중학생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대해 범죄심리학자인 이수정박사는 '영양'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완벽한 동의를 합니다.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요즘 아이들 배달음식으로 길들여져 있거나 대충 인스턴트로 떼우며 이 학원 저 학원 옮겨다니지요? 뇌세포가 건강할 리가 없습니다.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어긋난다고 인지하지 못하는 뇌로 평생 산다면 이 얼마나 한탄할 노릇입니까? 무엇을 위해 그리 열심히 뒷바라지 하신 건가요? 학원원장 기름값이나 대주느라 내 아이의 시들어가는 뇌세포는 왜 보지 못하시는지요?


삶은 국영수보다 훨씬 난해하고 훨씬 복잡하고 훨씬 위험하고 반면, 훨씬 행복한 요소도 많습니다.

이것들을 내 품에 있을 때 알게 해준다면 내 아이의 그릇은 참으로 커질텐데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회에 득이 되는 어른으로 내 품에 있을 때 그 기초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부모가 '공부'보다 더 중요하게 알려줘야 할 역할이 아닐까요?


궁극적으로 내 자식의 100세 인생을 통으로 보는 시각으로 결과를 정해놓고 과정에서 하나씩 선택해 나간다면 지금 당장 어리석어보일 지는 몰라도 그러한 시각을 가진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들이 분명 지금 한치앞도 못보고 달려가는 부모의 자녀들을 먹여살려 줄 큰 인물이 될 것입니다. 분명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도움을 주는 어른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엄마가 어딜 보느냐는 무조건 중요합니다. 엄마가 지닌 시야의 크기만큼, 의식의 깊이만큼 아이가 자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그런 큰 어른이 옆에 있는 아이는 조금 더뎌도, 조금 부족해도 결코 어긋난 인생으로 방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느 시기가 오면 내 아이는 내 곁을 떠날 것입니다. 사회의 일원으로, 독립해서 스스로의 삶을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괴테가 부모를 떠나면서 '혼자 독립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리라는 이러한 시도는, 그것이 성공하건 실패하건, 항상 자연의 의지에 합당'하다고 한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내가 그랬듯 어떤 시기가 되면 스스로 벌어서 먹고 살며 가정을 이루는 그 길로 외롭게 떠나야 합니다. 제발 이 아이들이 그 때 잘 살게, 그 때 가정을 이루게, 그 때 아이를 낳을 수 있게, 그 때 부유하게, 그 때 어른스럽게, 그 때 나누는 삶을 살게, 그 때 행복하게. 우리는 그 때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만 합니다.


엄마의 불안으로 아이를 강요하지 말고 아이의 미래에 내 시선을 고정시킨 후 그 시대에 필요한 교육은 뭘까? 내가 모르는 것은 무엇일까? 내 아이에게 나는 득일까? 해일까? 아이를 사랑하고 잘 키우고 싶은만큼 공부를 해야 하지 않나? 한번쯤은 곰곰히 고민해보시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영화한편 추천하려 합니다.

아주 오래된 영화인데요

송혜교가 주연을 맡은 '오늘'이라는 영화입니다.

제가 부모교육을 할 때 부분적으로 인용하는 장면들이 꽤 많은 영화입니다.

보시면서 정말 아이의 삶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꼭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잔소리가 길었습니다.

본 매거진의 성격이라 이해바랍니다.


그럼 6편에서 다시 이어나가도록 하지요.


본 매거진은 매주 일요일 새벽 5시 발행됩니다.

또한, 본 매거진은

저의 글을 독자가 읽는 일방향을 지양하고

독자들의 사례와 질문에 대해 글을 쓰고 다시 상호소통으로 이어지는 양방향을 지향합니다.

즉, 오더형구독집필을 해보려 합니다.

따라서,

자녀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 덧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혹시 개인적인 사례라 비공개를 원하신다면

   카페(클릭 => 지담북살롱 : 네이버 카페 (naver.com))를 링크하시고

   제게 쪽지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괴테, 시와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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