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리 잘난 글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아이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다른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고
엄청난 성공자나 기록을 소유한 이도 아니어서
세상에게 나 좀 봐주십사 내미는 카드라곤
신뢰. 밖에 없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신뢰란.
아니, 내 얼굴인 내 글이 세상의 신뢰를 얻으려면,
글을 잘 쓰겠습니다! 도 아니고
글을 열심히 쓰겠습니다! 도 아니다.
이는 당연한거다. '열심히 잘' 써야 하는 것은.
나와 내 글이 원하는 신뢰는
매일 예측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들쭉날쭉, 삐쭉빼쭉 아니고
누가 뭐라든, 어떤 상황에서든 그냥
'지담은 새벽 5시전에 이러이러한 투의 글을 발행'한다는 것을 누구라도 의심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기다리느라 시간소진시키지 않고, 무슨 일있나? 관심으로 감정낭비하지 않게.
그냥 누군가 내 글을 기다리고 읽는 이의 일상에 매일 꾸준히 그렇게 스며드는 것이다.
단 1명의 독자에게라도 말이다.
아니, 독자가 없어도 온 우주속 무언가에게라도 말이다.
가끔 사람들은 내게 조언과 충고를 하기도 한다.
'꼭 그렇게까지 안해도 돼. 누가 본다고? 누가 안다고? 알아주기나 해? 지금도 잘하고 있어. 조금 쉬어가도 돼'라고. 나는 진심으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알잖아요.'
어쩌면 나는 내가 듣고 싶은 말에 어울리는 나를 만들고 있는 중일 지 모른다. 나는 '참 한결같다.. 참 성실하다..'라는 말을 그 어떤 능력이나 지위, 칭찬보다 소중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사회적 지위나 능력을 떠나 참으로 고개가 숙여진다. 아마 나도 그 말을 듣고 싶어서 그 말에 어울리는 나로 가고 있는 중일 지 모른다. '정말 대단하다. 뛰어나다. 자랑스럽다.'라는 찬사는 듣지 못해도 '참 너는 뭐가 되도 되겠다. 한결같다'는 말을 들으면 가슴에 무한한 희망이 느껴진다. 마치 내가 가고자 하는 그 길에 진짜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남다른 뭔가 특별함이 없고 누구랑 대단한 거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서 나에게 막중한 임무를 맡긴 것도 아니니 나는 그저 나와 약속한, 내가 지키기로 한 그것을 매일 해내는 것, 나는 이렇게 나를 성장시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내가, 내 글이 주는 신뢰는
뛰어난, 탁월한, 기가막힌 글은 아닐지라도
예측되는, 꾸준한, 묵묵한, 한결같은 그런 거라면 능력과는 무관하니 해볼만 하고
오랜 시간 지속되었을 때 결코 눈으로 보여줄 수 없는 '글에 대한 정성'과 진정성, 신뢰로 드러나 나의 글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게 될 소중한 자산이 되는 것이다.
2023년 2월 18일. 브런치 6개월째.
지켰다.
잘쓰고 못쓰고는 독자의 평가이지만 일단 나는 지켜냈다.
하나의 글을 위해 치열했고 난감했고 곤란했고 괴로웠고
그럼에도 황홀했고 웃었고 기뻤고 세상 다 얻은 것같이 뿌듯한 날도 있었다.
지금까지 6개월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1일 1글 새벽 5시 발행을 지켰다.
신뢰밖에 없는 내가 이거 하나는 지켜야 했다.
브런치는 모든 작가에게 다양한 이유로 존재하겠지만 여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글쓰는 자세는 작가들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난생처음 '매일 글쓰기'를 시도했고
출간경력은 있지만 '작가'라는 호칭을 나 스스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욕망도 처음 가지게 됐다.
작가.. 라...
아직도 내겐 낯설다.
무겁고 버겁고 아프고....
내 이름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작가로 불린다.
내 이름에 어떤 수식어가 붙느냐에 따라 나는 그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런 이름으로 불릴 자격을 갖춰야 하는데...
그래서 나의 브런치 6개월은 말 그대로 '훈련'기간이었다.
처음 시작할 땐 3개월만 해야지 했는데 해보니 더 할 수 있겠다 싶어
한달한달 그리고 또 한달. 이렇게 6개월이 되었다.
사실 매일이 글과의 전쟁이었고 감동으로 보던 책에서 질투가 생기기도 하고
모방을 통해 새로운 창조가 탄생하기도 했다.
6개월.
근육을 만드는 사람들이 매일 헬스장에서 자신을 훈련하듯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매일 마이크앞에 자신을 세우듯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매일 이젤앞에서 붓을 들듯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매일 작은 연습실에서 악보와 마주하듯
무술을 하는 사람들이 매일 무도장에서 바닥에 자신을 내동댕이치듯
나는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점점 '작가'라는 타이틀이 내게 어울리게 하기 위해 나를 연마해왔다.
6개월.
나의 머리 속을 풀어헤쳐 하나씩 글로 옮겨가는 이 시간 속에
나만의 사상이 정리되어 가고
나만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들의 체계가 잡혀가고
내가 던져야 할 주장과 문제제기가 조금씩 날카로워지면서
내가 남은 생에 추구하여 자리잡고 지켜나가야 할 나의 삶이 무엇인지 조금씩 내 안에 차올랐다.
나는 브런치라는 이 공간에서 이렇게 서서히 나로써 사는 삶을 글로 풀어내려갔던 것이다.
다시 6개월 뒤 나는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어떤 글들로 이 공간을 채우고 있을까?
이번달은 지난 달과는 아주 많이 달랐다.
매거진의 타이틀에 맞게 글을 써왔었는데
최근 1주일~10일 정도 극심한 나만의 고뇌로 인해 심연을 들여다보는 글들을 많이 썼다.
계속 이어지는 어떤 끌림에 의한 나의 방황과 고심,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믿음이라는 다리를 공사하면서 느끼는 나의 내면을 글로 표현해보는... 첫경험이었다.
발행하고 나서는 다시 들추지 못하고 끙끙대는 시간도 여러번이었지만 일단 그렇게 그냥 썼다.
기존의 '엄마의 유산'이나 '1000일의 새벽독서가 준 발견과 해체', '1000일의 새벽독서로 배운 관점'매거진을 계속 집필하기에 내가 자격이 있나? 라는 나 스스로에 대한 의문에 상당히 구속이 심했고 단어 하나를 쓰면서도 고심이 깊었다. 그래서인지 '나의 글'에 대한 자세나 자격을 논하는 글과 나의 이상과 길에 대해 내적갈등을 토로하는 글을 주로 썼던 것이다.
또한, 기존에 쓰던 매거진에 살짝 자신감을 잃고 그냥 카페(나는 매일 내 카페에 5개 정도의 글을 쓴다)처럼 단순하고 가볍게 쓸까? 하는 유혹도 상당히 심했다. 그냥 매일 발행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브런치의 글은,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어서인지 나에게 가볍게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글재주없는 내가 내 기준에서 다소 묵직한 글을 매일 써낸다는 것은 지독한 트레이닝이었지만 6개월을 해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조금씩 치르고 있는 것 같아 살짝 뿌듯하기도 하다.
나의 글쓰기원칙 가운데 하나는
'안 나오면 안쓴다.' 이다.
아니, '나오는대로 받아적는다'가 더 옳겠다.
쥐어짜내는 건 들통나게 되어 있으니 글이 안써지면 멈춘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무조건 입력양이 많으면 어떻게든 비집고서라도 나오니까.
안써지면 안쓰고 읽는다.
읽으면 어떻게든 나온다.
그걸 손끝으로 받아적는 것뿐이다.
구독자는 6개월을 채운 2/18일 밤 12시,
1,103명.
참으로 감사한 숫자다.
1달전인 5달째에 948명,
지난 1/28일, 1000명을 넘었다.
하지만,
나는 이들과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세상과도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원래 나는 약속을 잘 안한다.
이번에도 안 할것이다.
그저 내가 하는 유일한 약속상대인 '나'랑만 할 것이다.
나와의 약속을 지켜나가는 나의 글에 독자들은 신뢰를 줄 것이라 믿는다.
'매일 새벽 5시경 1글 발행'이라고 나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켜온 것에 대해 나를 잠시 칭찬하지만
이 미숙한 글들이, 치열했던 고뇌가, 어려웠던 글쓰는 시간이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어 이리도 나를 몰아가는 것이리라.
지금,
자신이 없지? 글발이 없지? 재주도 없지? 한계가 느껴지지?
그렇다. 아주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더.
1달만 더 해보자.
1달만 더 지켜보자.
어제까지도 갈팡질팡거리며 이쯤하면 됐다. 쉬자, 쓸까말까 산만했던 내가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제자리에 두 발 붙이고 서버렸다.
나의 영혼이 나를 여기에 다시 세워 포박하고 있으니
이건 또 이리 하라는 무언가의 계시인 것이다.
신은 결코 한계앞에 멈추는 이에게는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했다.
신은 결코 자기판단으로 신의 의도를 가늠하는 이에게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한다 했다.
신은 결코 나 혼자 내버려두지 않고 모든 것으로 나를 돕겠다 약조했으니
나는 나와의 약속만 지켜가면 된다.
그러다가
언제 느닷없는 자극으로 자신의 뜻을 알려줄 신의 의도를 내가 알게 되겠지. 나는 나보다 신을 더 믿어보련다.
나는 나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 의지도, 열정도,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
나약한 나를 믿었다면 애초에 6개월간 이렇게 매일 글을 연재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나를 믿으려 애쓰는 에너지를 그저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에만 집중했으니
앞으로 1달도 그쪽으로 애써야겠다.
신이 원하는 것은 내가 '매일 행동'하는 것뿐, 나머지는 당신의 뜻대로 알아서 해줄 것을 믿는다.
* 브런치 6개월간 한결같이 덧글로 사랑 많이 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의 글들에 늘 관심으로 조언과 격려,
그리고 공감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셔서 저의 글쓰기는 아주 행복하답니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 매주 일요일 발행되는 공부못(안)하는 자녀를 둔 부모필독 매거진(일명, 공자매거진)은
오늘 브런치 6개월 글로 인해 내일 발행됩니다.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