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 Apr 12. 2023

네게 스며들게 말고
네가 스며들게 하렴

엄마의 유산 18

집안에 꽃향기가 가득하단다. 어떤 연유로 여러 다발의 꽃들이 집으로 와줬고 꽃 좋아하는 엄마는 2개밖에 없는 화병에 맑은 정수기 물을 받아 꾹꾹 눌러가며 한송이한송이 정성껏 꽂아 거실 테이블에 놓았지. 엄마는 늘 집에 있기 때문에 특별히 집안 냄새에 민감하지 않았는데, 세상에~~  많은 꽃들이 등장한 우리 집은 온통 꽃향기로 가득 차버렸어. 


아... 이 느낌은... 글쎄... 거실 공기를 꽉 채우던 사람과 사물들의 내음이 어디로 사라진걸까? 아니면 우리 집 거실이 꽃향기가 스며들만큼 그리 많은 진공이 존재했던 걸까? 분명히 공기는 기존의 어떤 향으로 꽉 채워져 있었을텐데 꽃이 그 모든 향을 이기고 자신의 것으로 온통 다 채워버렸어. 너무 신기하지 않니? 향기가 스며드는 거 말야.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그 작은 꽃들이 얼마나 가득 자신의 향을 품고 있었으면 이 거실 전체를 자신의 향으로 가득 채우는 것일까?


이렇게 '채워지고 스며드는' 것에 대한 관찰과 소중함에 대해 사실 엄마는 아줌마라서 며칠 전 대파를 썰면서 깨달았단다. 우습지? 엄마는 그저 대파를 썰었을 뿐이야. 대파와 엄마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 공기밖에. 그런데 대파썰면서 눈물콧물... 너무 매워서 혼이 났지. 뭐지? 대파가 자기를 썰어댄다고 화가 나버려 매운 향을 엄마 눈으로 발사해버린 건가? 어떻게? 공기 사이사이 자신의 자리를 비집으며 엄마가 아무리 눈을 질끈 감아도 그 꼭감은 눈조차 뚫고 매운향은 엄마를 괴롭혔어. 도대체 어떻게? 대파가 얼마나 응축해서 매운향을 품고 있었으면 공기입자들의 그 유순한 습성들을 다 뚫고 자신의 존재를 아주 강력하게 드러낼 수 있는걸까?

꽃이나 대파뿐이겠니? 

계피는 또 그 향이 얼마나 강한지 아니? 

생강은? 

녹차케익을 구울 땐? 

김치를 썰땐? 

오랫동안 보관된 옷을 꺼낼 땐? 

아.. 거실 한켠에 놓인 장미허브는?

 

꽃은 꽃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생을 걸지. 꽃이 되는 것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여하지 않고 모든 시간을 단 하나, 꽃이 되는 것에만 자신을 온생을 사용하지. 그렇게 꽃이 되기 위해 한평생 바친 꽃은 뿌리가 잘려 여기 저기로 옮겨지면서도 자신만의 향을 그대로 품은 채 이렇게 자신만의 것으로 세상에 스며들어. 대파도 오로지 대파가 되는 것만이 자신이 태어난 이유야. 그렇게 세포 곳곳에의 향으로 자기몸집 이상의 강력한 기운을 세상에 내보내지.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오로지 그 자체로 자라기 위해 온생을 건단다. 그렇게 자신의 몸체에 자기만의 향을 가득 담아 온세상에 자기로써 스며들지. 


자신을 자신으로 채운 후 그렇게 흘러넘쳐 세상으로 스며드는거야.

엄마는 엄마도 그러려구. 

너도 그러길 바라구. 


설악초가 채송화의 향을 가질 수 없듯이 너도 타인의 관념과 사상과 정체가 아닌 네 것으로 널 채우길 바래. 지금 많은 젊은이들이

자기의 머리 속에 있는 수많은 기준들이

자기가 주입한 것인지 타인에 의해 주입된 것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바쁜 하루하루가 나의 향을 담기 위해서인지 타인의 향을 더 진하게 보태기 위해서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사는 것 같아. 

잘 보이려 애쓰고 '보여지는 것'에 더 집중하고 상대와 자신을 비교하고 과거의 경험을 회피하고.....


많은 이들이 공허함에 시달리고 자신의 길을 잃고 '사는대로 생각하는', 

마치 하루하루를 숫자채우기에 급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 엄마는 그리 했던 것도 같아서...


자신의 것으로 자신을 꽉 채운 너 자신이 되길 바란단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자신이 가진 향은 공기중으로 흡수되게 되어 있어. 

공기 중의 모든 것들은 서로 섞이며 세상의 곳곳으로 자기 자리를 이동시키며 분주하지.

우주가 그 향을 뽑아서 여기저기로 뿌리고 이주시키고 있거든. 

'향'은 단지 '냄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간파했지? 

'기(氣, energy)'! 

기운, 정체성..... 그런 거...


너를 너로써 채워가는 시간들을 통해 

너만의 색채로 

너만의 향으로 

너만의 기운으로 

너만의 선명한 길을 찾아

너는 네가 되어야 해.


너만이 느끼는 미세한 찰나들이 가슴에 채워질 때,

너의 경험이 네 머리속을 지배하던 관념들을 네 것으로 변화시켜 자리잡을 때, 

너의 하루 중 오롯이 너 자신과 만나는 경이로움을 경험할 때, 

너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요동에 네 세포가 전율할 때, 

너의 돌처럼 딱딱했던 마음에 어떤 순간이 틈을 만들 때, 

너의 내면에서 너 자신과의 조우가 너를 깊이 미소짓게 할 때,

너는 너 자체로서 채워지고 

채워지면 흐르게 되고

흐르면 세상에 너라는 존재가 스며드는거지.


네게 스며들게 말고

네가 스며들게 하렴.


오로지 너자체로서 너를 채우는거야. 

타인의 관념, 

타인에게 보여지려는 포장, 

관습에 얽매인 낡은 사고, 

자신의 꿈이 아닌 누군가의 꿈을 대신하고 있는 무지,  

나아가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관성들... 

그렇게 스며든 것들이 너를 채우게 하지 말고

네 것으로 흘러넘쳐 스며들게 하렴.


자, 그렇다면 지금 너는 무엇으로 널 채우고 있니? 

입력된 것이 출력되는 것이지. 

네 입으로 들어가는대로 너는 너를 채우고 있겠지

네 귀로 듣는대로 너는 너를 채우고 있겠지

네 눈이 보는대로 너는 너를 채우고 있겠지

네 다리가 도달하는대로 너는 너를 채우고 있겠지

네 손길이 닿는대로 너는 너를 채우고 있겠지.

이 모든 감각들이 너의 이성으로, 관념으로, 사상으로, 정체로 만들어지겠지.

그렇게

입력된 것들이 네게 '습관'이란 패턴으로 너의 정신에, 다리에, 심정에, 그리고 영혼에 채워지겠지


그리고는

네 혀로 흘러넘쳐 세상에 스며들겠지

네 다리로 흘러넘쳐 세상에 이동하겠지

네 표정으로, 몸짓으로, 글로, 또 다른 어떤 것으로 흘러넘쳐 세상에 너를 남기겠지.


네게 스며들게 말고

네가 스며들게 하렴.


네가 채운 것들이 넘치면 세상에 스며든단다.

자, 이제 너의 무엇이 세상에 스며들길 바라니?


꽃이 꽃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응축한 그 강인함으로 주위의 모든 공기에 자신을 스며들게 하듯

'너는 무엇으로 너의 세포 곳곳을 채워 세상으로 흘려보내려 하니?'

지금 이 순간, 

이 질문 하나만 네가 가슴에 담는다면

너 자신을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로 여길까?

자존감이 낮다거나 자신이 없다거나 정체성에 혼탁을 일으키는 그 못나보이는 시간들조차 

젊은 너에겐 귀중한 시간으로 너를 채워나갈 순간순간들인거야.


세상에 스며들어도 괜찮은 사람.

이왕이면 더 이로운 조화를 위해 

너의 흘러넘친 그것이 보탬이 되는 삶.

이런 정신을 가진 너라면

너의 삶은 정말 가치있을거야.

그리고 세상이 널 지켜줄거야.

우주가 널 보호할거야.


꼭 기억해주길 바래.

네게 스며들게 말고

네가 스며들게 하렴.

작가의 이전글 [재해석] 어쩔 수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