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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Apr 17. 2023

부자가 되야 할까요?
돈만 아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요?

'돈'에 대한 소고

며칠 전 새벽독서모임에서 26살 청년이 이런 질문을 한다.

"부자가 되어야 할까요? 돈만 아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요?"


나는 나의 견해를 밝혔다.

내 정서가 안정되어야 누군가의 마음을 안아줄 수 있다.

내 정신이 바르게 서 있어야 누군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내 다리가 멀쩡해야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줄 수 있다.

이를 통해 나에게서 나오는 

언(言)과 행(行)이 멀쩡해지면 관계에서 휘청대지 않을 수 있다.

관계에 제대로 서있을 능력(힘)이 있는 자여야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러한 자들에게 돈은 저절로 따른다.

즉, 정서적, 정신적, 육체적, 관계적, 사회적, 경제적 부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자기 스스로에게 지울 의무라 할 수 있다고.


자, 인생, 삶, 인간의 전체에서 경제적인 부자가 되는 것은 다른 부분과 연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에 언급한 6가지는 따로지만 서로 연합되어 하나의 총체인 '행복'을 이루는 요소가 되니까. 아무리 돈이 많아도 건강을 잃으면 안타까운 것처럼 아무리 건강하고 명석한 인물도 먹고 사는 문제가 경제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손길에 의지해야만 하니까. 그러니까, '돈만 아는 것이 행복'이 아닐 수 있지만 '돈도 아는 것은 행복'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단, 돈과 행복을 비교하는 이상한 버릇이 왜 생긴걸까?

돈과 인간을, 돈과 사랑을, 돈과 책을, 돈과 음식을, 돈과 또 무언가를..

암튼 돈과 비교할 것들이 수천수억개일텐데 왜 돈과 행복을 비교하는 것일까? 

이러한 전제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아마도 누군가는 돈때문에 힘들어졌을 것이다, 아파했을 것이다, 사람을 잃었을 것이며 불안에 몸서리쳤을 것이며, 부러움과 욕망이 치미는 자신과 싸우기도 했을 것이다. 돈때문에. 돈때문에 불행해진 사람들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돈때문일까?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을 갖고자 하는 마음의 자제가 약해서가 아니었을까?

이해와 양보가 더 필요한 상황에서 '돈' 뒤에 숨는 것이 더 쉬워서가 아니었을까?

내 손에 있는 무언가를 놓치기 싫은, 또는 놓치게 되는 두려움과 억울함때문은 아니었을까?

이성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을 감정의 허락만으로 선뜻 행한 자신의 무지때문은 아니었을까?


언제부턴가 '돈'은 자신을 정당화시키거나 숨기 좋은 커튼이 되어 버렸다.

'돈'을 쥔 내 손, 타인의 손. 이를 움직이는 내 이성, 타인의 이성. 근원은 그것이지 돈이라는 도구탓은 아니지 않을까? 무사가 싸움에 지고 칼때문이라 하는 것과 시험을 망친 이가 잠때문이라 하는 것과 자신의 현실이 부모탓이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아주아주 자신을 정당화시키기에 적합한 도구가 '돈'아닐까? 


제일 갖고 싶은 것, 많이 갖고 싶은 것, 지금 갖고 싶은 것, 앞으로도 갖고 싶은 것, '돈'아닌가?

가고 싶은, 하고 싶은, 되고 싶은, 보고 싶은, 갖고 싶은, 얻고 싶은 모든 것이 '돈'과 연결되어 있고 이는 곧 자신의 추구와 직결되어 있다면 '돈'은 감사한 도구여야 하는 것 아닐까?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남탓. 뭐 이런 식의 사고라면 곤란하지 않을까?


아니요. 난 '돈'아니구요. '행복'이예요. 라고 말한다면 미안하지만 더 이상 대화할 가치가 없다. 돈없이 행복해질 확률보다 돈이 있으면 행복해질 확률이 훨씬 높고. '행복'이란 가치는 인간의 궁.극.의 가치다. 궁.극. 즉, 끝까지 살아본 사람이 저~어기 끝에서 느끼는 감정의 총체가 행복인데 끝~까지 가려면 아파도, 넘어져도, 깨져도, 나락으로 쳐박혀도 나를 도와줄 최선의 도구는 '돈'이다. '돈'의 가치를 행복의 방해요소로 사고하는 관념이 도대체 왜 시작되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또한, 인간의 '행복'은 누군가와 나눌 때, 도울 때 극대화되는 것이 본성인데 왜 행복의 잣대가 되는 '돈'을 부정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그럼 나는 돈이 많으냐고? 아니. 많지 않다. 하지만, 얻어먹지 않고 사줄 정도는 되며 누구든 손내밀면 어느 정도 쥐어줄 수는 있다. 죽을 때까지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내 인생 책임질 정도는 되며 쓰러진 누군가를 일으켜세우기에 약간의 도움정도는 줄 수 있다. 그러면 된 것이 아닌가? '돈'은 그래서 참으로 감사한 존재다. 감사한 것을 품고 있으면서 '행복'과 견준다는 것은 지나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노동의 가치는 신성하다고들 한다. 노동은 무엇을 위해 하는가? 생존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노동의 가치가 '존재'로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노동은 생존과 존재. 이 둘을 추구하는 행위의 수단이다. 이 수단을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것이 '돈'인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은 신성시하고 돈은 부정한다는 것 역시 말이 안된다고 할 수 있다.


돈과 행복은 비교대상이 안된다고 나는 결론짓고 싶다.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도구는 다양하다.

'행복'이라는 가치를 얻기 위해 '돈'은 감사한 도구다.

가치와 도구는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자못 비교란 공평한 조건이 주어져야 하니까.

도구가 훌륭하면 가치추구는 효율적이 된다.


단, 기준은 있어야겠지.

위에서 언급한 '부자', '부'에 대한 확장된 사고, '돈'에 대한 가치중심적 사고, 나아가 '물질'에 대한 수단적 사고가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질과 소유를 쫒아 가치를 잃는 삶이 아니라 가치를 쫒아 물질이 따르게 하는 삶이라면 얼마든지 가져도 좋다. 많이 가질수록 가치는 상승, 확장되니까. 가치의 상승은 추구하는 것의 현실을 가져올테니까. 추구가 현실이 되는 삶이 보여진다면 더 많은 이들이 더 큰 꿈을 꾸게 되고 꿈의 현실은 세상을 조금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테니까.


그러면서도 반성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기성세대가 얼마나 '돈만 아는 삶'을 많이 보여줬으면 우리 젊은 청년들이 '돈을 부정적 도구'로 인식하는 사고를 자신도 모르게 갖게 되었을까 하는 점에서 말이다. '돈', '부', '부자'의 선한 면이 부족한 탓이었을테니 말이다. 나누는 삶보다 쌓아두는 삶을 더 보여주었을테니 말이다. '돈'을 부정적으로 이용하는 현상이 더 많았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젊은이여. 

외부의, 과거의, 타인의 사태들로 인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값어치있는 도구를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

진입된 관념으로 자신의 생의 낭비를 초래할 필요가 있을까?

본질적인 의미를 외면하고 현상적 의미의 해석에 제압당해 자신의 사고를 배제할 필요가 있을까?

취업과 창업으로 '일'의 가치를 쫒고 있으면서 '보상'에 대해 부정하는 모순에서 헤맬 필요가 있을까?

비단 어른들의 잘못으로 돈이 미운 모습을 보인다 해서 내가 멋지게 벌고 근사하게 쓸 수 있는 기회를 자신에게서 빼앗을 필요가 있을까?


선택하면 된다.

돈을 부정하는 삶이든 돈을 긍정하는 삶이든 자기 마인드는 자신의 이성이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원리는 감사와 귀중을 알지 못하는 대상은 자신에게 머물지 않는다. 잠시 크게 머물수는 있을지 몰라도 오래 길게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귀한 것을 귀하게 볼 수 있고 귀한 것이 오래 머물도록 자신의 격을 연마시키는 자에게 무엇이든 한참 머무는 것이란다. 머물면서 번식하고 증대시키기도 한단다. 그렇게 잉여가 자신에게서 생산되면 손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서슴없이 나눌 수 있으면 된단다. 이것이 '돈'과 '행복'을 비교하며 둘 중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만 얻는 것이 아니라 '돈'과 '행복' 모두를 추구하여 더 큰 행복에 이르는 길이란다.


자, 돈을 많이 벌기가 어려울지 모르지만 돈을 많이 버는 시작은 아주 간단하다.

마인드를 바꾸면 된다. 

돈을 긍정하고 돈이 나를 좋아하여 계속 나를 쫒아다니는 삶으로 나는 나를 키워야겠다. 말이다. 

그래서, 젊은이의 질문, 

'부자가 되어야 할까요? 돈만 아는 것이 행복할까요?'에 대해 나는 이리 짧은 대답을 남기려 한다.

 '돈까지도 아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네 인생의 책임을 완성하는 길이며 아울러 타인의 인생에도 영향을 미치는 삶인 것이니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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