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에 대하여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요일도 날짜도 다 모르고 지낸다.
숫자와는 늘 거리가 먼 사람인데 계속 멀어지는 듯하다.
괜찮다.
나이도 몸무게도 계산도 안하는 삶.
꽤 괜찮다.
나도 모르게 잊혀지는 숫자에는 개념치 않는 게 좋겠다.
이런 내가 반드시 숫자화시키는 것이 있다.
대략적으로 2~3년에 한번씩 목표를 세우는데 이 목표를 세울 때 가장 중요한 것 2가지 중 하나가 바로 정량화(measurable)시키기 위해 숫자로 표기한다는 것이다. 물론, 목표세우기에 여러가지 방법들이 많지만 나는 딱 2가지를 중심축으로 잡아 목표를 세우고 그로부터 추출된 루틴을 우선순위로 하루를 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책들에서 거론한 바들 - 목적중심의 삶, 목표정립, 계획, 행동의 매커니즘, 영적진화, 우주의 원리 등- 종합하여 실제 나의 삶에 대입해보고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바이니 나에게만큼은 유용하고, 지구상에 누군가가 이렇게 해서 결과를 냈다면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단순논리에 의해 이 공간에 소개해도 좋다는 판단이 들었다.
우선, 목표란 무엇일까.
얻고자 하는 바?
바라는 바?
이루고자 하는 고지?
목적으로 가는 길에 있어서의 단기적인 성취?
모두 다 정답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목표를 개념화하고 있다.
나를 통해 세상이 드러내고자 하는 창조.
세상이 나를 콕 집어서 이걸 창조해라. 라고 명한 것이 나에겐 목표다.
물론, 내 인생의 가치있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단계 속의 깃대이다.
삶의 방향을 잡았다면 이를 이루기 위해 장기, 중기, 단기 목표를 세우게 된다.
이 과정에 있어 2가지를 꼭 명심하고 실천하는데
그 중 첫번째는 인생의 다양한 범주를 정하는 것이다.
대개 목표를 잡을 때엔 한분야만 치중하곤 한다. 살을 빼는 것에, 프로젝트를 성공하는 것에...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부분일 뿐, 전체에서 부분이 조화를 이뤄야 삶의 균형이, 의미가, 가치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엔, '부'를 경제적, 정서적, 지성적, 관계적, 사회적, 건강적 부분의 균형상태로 개념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영역을 범주로 구분지었다. 이에 따라, 3년뒤, '원하는 나'를 가족, 자산, 수입, 건강, 사회적관계, 자선, 취미 등으로 구분해 범주마다 '원하는 바'를 적는다.
가족이라는 범주에 부모, 형제, 자녀 모두가 포함되어 있고
자산에 투자와 미래계획, 노후대비가 포함되어 있으며
수입에 일, 능력이,
건강에 운동이나 영양이,
사회적 관계에 인간관계가 총체적으로
자선에 사회적 나눔과 나의 삶의 가치관이
취미에 자아실현과 소소한 여유등을 위한 나의 일상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코칭을 하며 이와 같은 가이드를 해주다 보면 대다수가 이와 비슷한 범주를 지니지만 개성있게 자신만의 범주를 만드는 이도 있다. 종교, 학벌, 개성등이 추가가 되는 것이다.
두번째는 어떤 기준으로 적느냐이다.
3년뒤 원하는 바가 있다면 3년이 장기목표, 이에 따라 중기(2년), 단기(1년 or 6개월)로 잡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간이 아니라 감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기는 느낌으로! 말 그대로 생각없이 느낌으로 적는다.
그리고 된다고 결정, 확정하고 확신한다.
여기서 역으로 중기(2년), 단기(1년)은 '이성'으로 역산한다.
이는 아주아주아주 중요하다.
왜냐면 3년뒤 '내가 원하는 나'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속의 나다. 뿌연 안개같고 현실로서는 도저히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나다. 그래야 목표다. 이룰 수 있는 것은 목표가 아니다. 보다 나은 나, 보다 나은 삶을 원하는데 현실의 인식 속에서 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선 안된다.
3년 뒤 나를 중심으로 2년, 1년의 중단목표를 정할 때는 머리를 쓴다. 이성적으로 역산하는 것이다. 가령, 3년뒤 10km 마라톤완주가 목표라면 2년 뒤 7km, 1년 뒤 5km정도로 역산하는 것이다. 3년 뒤 100만원의 수입을 만드는 나를 원한다면 2년뒤는 50만원, 1년 뒤는 30만원. 이런 식으로 모두 숫자화하여 역산한다.
이제 단기목표가 나왔으면 여기서부터 3개월간 매일 실행할 루틴추출!
1년 뒤 목표가 마라톤 5km이니 3개월간의 루틴으로는 매일 1km뛰기가 될 수 있겠다. 1년 뒤 30만원의 수입을 원한다면 지금부터 3개월간은 내 능력을 키우기 위한 (어떠한) 공부를 하는 것이 되겠다. 작은 양이라도 하루하루 모이면 어마무시할 정도의 가공할 위력을 지닌 힘이 된다. 목표로부터 추.출.된.루틴의 힘은 가공할 위력으로 목표로 돌진한다.
자, '목표'라는 단어를 인생에 데리고 사는 삶이 있고 그렇지 않는 삶도 있다. 선택하면 된다.
목표없이 사는대로 생각할 것인지 목표를 지니고 생각하며 살 것인지.
목표없이 표류하다 정박할 것인지 목표를 지니고 항해를 끝내고 정박할 것인지.
목표없이 운전하다 기름이 떨어지는 봉변을 당할지 목표를 지니고 안정되게 원하는 지점에 닿을 것인지.
목표는 거의 모든 철학자와 성공학자들이 자신의 인생을 위해 꼭 지니고 살라고 강조하는, 어쩌면 단 하나의 단어가 아닐까 한다. 목표가 있어야 이에 따라 의지도 열정도 생기고 이를 이루는 과정인 계획도, 행동도 수립하고 이 과정에서 실패도 고통도 맛보며 성장할 수 있기에 목표의 중요성은 두 말하면 잔소리이다. 하지만, 목표설정을 그저 생각나는대로, 남들하는대로, 균형없이 한 부분만, 일정기간만 하지 말라는 말이다. 내 인생 전체를 이끌고 나가도록 3년 주기로 인생 전반의 범주 안에서 균형있게 잡아나가며 매일의 루틴을 추출하여 자신이 원하는 자신으로 이끄는 삶. 이러한 삶이야말로 진정 가치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목표수립의 기준 2가지를 정리하면,
목표는 한분야만이 아니라 인생전반을 범주로 구분지어 삶의 균형을 잡아나가도록 잡는다!
장기목표는 느낌으로, 중단기목표는 이성으로 역산한다!
마지막으로, 잔소리같겠지만 꼭 하고 싶은 당부는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Never never never give up.
평범한 여성에서 대단한 성공자가 된 한분이 젊은이들에게
'목표를 이루는 방법은 단 하나다. 포기하지 않는 것.' 이라고 한 말에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난다.
목표를 세우고 루틴을 시작하면 어디 숨었다 나타나는지도 모를 잡념들이 자신을 덮친다.
늘 나보다 부지런한 악마들이 쏜살같이 떼로 몰려서 나에게 속삭인다.
'오늘 하루쯤 괜찮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남들 봐봐. 다 비슷해. 저렇게 평범하게 사는 게 인생이야'
'목표가 너무 높은 거 아냐? 목표를 다시 세워봐. 루틴이 잘못 추출됐나봐. 이상해. 다시 짜'
'되겠어? 하겠어? 에이. 그냥 살던대로 살아. 과거를 돌아봐봐, 그 때 실패했잖아. 이번에도 마찬가지일거야.'
정말이지,
이 놈의 악마들은 어디를 건드리면 내가 자극받는지를 용케도 알아내고
내 감각 요기조기를 마구마구 자극한다.
이 자극에 나의 관성은, 관념은, 인식은 잘도 넘어가버리고
언제 목표를 세우고 루틴을 추출했는지가 무색하게 포기해버린다.
그리고 정당한 이유를 찾는 것에 열을 올린다.
'난 충분히 해봤으니까.' '내 상황이 좀 안좋으니까.','나는 아프니까','누구누구도 이렇게 했는데 안됐으니까' 등등.
목표를 세우면 잊어야 한다.
된다고 결정하고 이성에선 잊는 것이다.
잊는 것은 믿는 것이다.
감각에 새겨넣고, 느낌만에 의지하여 머리는 비우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매일 루틴만 반복.
작은 축적은 누적되어 양을 늘이고 이 양의 축적은 질적인 승화로 이어진다.
처음엔 목표에 내가 다가가지만
어느 날 목표가 나에게 돌진하는 순간을 반드시 경험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