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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May 22. 2023

내가 '되기로 맘먹은'
그 사람이 되기로.

'행복'에 대한 소고

나는 항시, 지금껏, 앞으로도 죽.... 

'이기가 이타'임을 주장하고 강조하고 확신한다.


몇년 전 접한 

정연보교수의 '초유기체인간'에서 언급된 영국극작가 버나드쇼의 글이 

이 새벽 나를 다시 멈춰 세운다.


이런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다 :  
나 스스로에 의해서 인식되는 전능자의 어떤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는 것,
이 세상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온 힘을 다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불만과 슬픔으로 가득 차고,
이기심으로 눈이 빨간 동물이 되지 않고 자연의 한 힘이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인생이 내 것이라기보다는 전체 사회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사회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나의 특권이다.
 
더 많이 일을 한다는 것은 더 많이 사는 것이며, 
나는 죽을 때 완전히 소모되어 있기를 바란다.
나는 삶을 그 자체로서 향유한다.
 
인생은 내게 '잠시 타고 마는 촛불'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잠시 쥐고 있는 찬란한 횃불이다.
나는 이 횃불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기 전에 최대한 밝게 타게 할 것이다.


나는 브런치에서 '삶의 관점'에 대한 매거진을 써내려가며 내가 삶을 대하는 관점을 여럿 언급했었다.

나는 나의 장난감이며 내 인생은 나의 놀이터다. 

내가 나를 장난감삼아 내 놀이터를 근사하게 만들어놓으면 이 곳으로 많은 이들이 놀러올 것이고 

이러한 나는 나에게 집중하여 인간으로서의 나다운 삶을 그대로 노출,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래서 인생이, 삶이 전쟁이 아니라 정말 아름다운 여정이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며 


그러기 위해 나는 나무와 같이 그저 묵묵히 그 자리에서 가지가 바람에 잘려나가더라도 하늘로, 

가야할 방향으로 솟는 것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피력했고 

그렇게 신나게 바람타고 놀다가 

각각의 나뭇잎이 낙엽되어 떨어지면 

딱 그 크기와 두께만큼 땅의 거름이 되어 다음 세대에게 보탬이 되는 삶을 사는 것


자연으로부터 무한정 부여받은 것에 감사하는 수혜자로서 

매순간 선택되어짐에 의무를 다한 후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갈 때 

딱 나만큼 다음 세상에 보탬되도록 남겨두고 가는 것... 


이렇게 내 삶을 즐기고 이용하고 새로운 삶으로 솟구치도록 매순간 나의 길을 걷는 것

그렇게 내가 나로써 흘러넘쳐 스며들게 하는 것.

이런 삶을 지향하며 '엄마의 유산'이라는 매거진을 통해 남기고 싶은 나의 주장들을 펼치기도 했다. 


내 인생, 내 삶 자체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주의 조화를 위해 나는 태어났고 

세상이 내게 명한 것을 찾아내고 그 숙제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 

나에게 집중. 

나부터 집중. 

나여야만 하기에 나를 제대로 이용해내는 삶. 

이러한 이기가 결국, 옆사람에게, 사회에게, 세상에게, 우주에게 제대로 조화롭게 이용되는 삶. 

그러니 

이기여야 이타인 것이다.


지금의 노력이 세상을 향하는 제대로 된 노력이기에 나는 내 삶을 조금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내일을 위해, 다음 세상을 위해 아낀다는 것은 절약이 아닌, 낭비다.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여유가 아니라 안이한 자만이다.

내가 해내야 할 양을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배려나 나눔이 아니라 인생의 직무유기다.


내가 최대한 많이 소진될수록 나는 많은 일을 한 것이며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진하게 다음 세상에 보탬이 되라는 세상의 명을 잘 수행한 것이기에 

외부로부터 주어진 일이 아니라,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세상이 내게 명령한 것을 잘 감지하여 

나 스스로가 나에게 명령한 것, 

책임지운 것,

의무로 규정한 것, 

규율로 만든 것, 

스스로 벌하도록 정립한 것들에 나는 철저하려 한다. 


그리고 믿는다. 

가치있게 내 삶을 이끌어나간다면

세상은 나몰라라 하지 않을 것임을

세상이 보호해줄 것임을

보호를 너머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며

나아가 그 쓰임은 빛으로서 승화될 수 있도록 

나에게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들을 알아서 거둬줄 것임을

그렇게 나를 철저히 자신의 명령에 복종할 인간으로 사용할 것임을

철저히 나의 본성대로, 초월된 자유인으로서 스스로를 고립시켜온 삶에 대해

세상은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보상해줄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리고 느낀다.


'그래도 즐겁게, 뭐라도 즐기면서, 좀 놀면서 사는 게 행복한 삶이 아닌가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행복이란 향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경감시키며 안정됨이 지속되는 것이라고.


쇼펜하우어의 견해를 보태어 말한다면, 

행복이란 자신이 즐긴 기쁨에 의해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벗어난 재앙에 대해 계산해야 하는 것이라고,

향락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잣대를 잘못 들이댄 것이라고,

낙천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이를 간과하는 것이 불행의 근원이라고,

어리석은 사람은 인생의 향락을 추구하다가 기만당한다고,

현자는 재앙을 피하며 행복의 정도를 보태는 것이며

재앙이라는 현실을 산 것이기에 적어도 삶에 기만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느껴지는 고통이 없다는 것이 행복을 재는 잣대여야 한다고,

그렇게 고통이 없고 무료함마저 없다면 그것이 지상의 행복을 달성한 것이라고,

매우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특별한 행복을 바라지 않는 것이 가장 확실한 행복이라는,

그러니 자신의 정신의 부를 증가시키는 것이 최고의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나는 내가 원하는 길로, 

나의 사상을 정립시켜나가며

이기적인 선택적 구속으로 정신의 자유를 누리며 사는 지금의 강제와 고립이 

너무나 큰 행복임을 느낀다.

불편하고 답답하고 때론 어긋나버리는 통에 간혹 괴롭다 할지라도

전체적으로 이러한 일상은 나에게 전혀 고통스럽지 않고 오히려 안정감을 주고 있다.


그래서 더욱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나의 삶에 강제해야 할 것들을 더 단단히 여밀 것이며

이러한 사슬이 결국, 초월된 자유를 누리게 하는 인생의 극한 즐거움, 

수시로 찾아오는 에피파니(epiphany)의 전율을 경험케 하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을 

지금 나는 경험하고 있다고도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다.

자신의 삶이며 

자신의 일상에서 구현해낼 주인은 결국 자신뿐이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진부한 말을 현실로 구현하는 자 과연 몇이나 될까?

나의 말에 귀기울이며 남의 의견이 내 의견이 되고 남의 부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희생당하고 남의 사상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저당잡히는, 이러한 사람들의 미화된 말들에서 나는 아주 많이 비껴서서 걷고 있구나..를 새삼 깨닫는다.


이기가 이타. 라는 견해가 주장이 되고 주장이 설득이 되고 설득은 사고의 질서를 단단하게 하며

이 질서는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알려줘도 좋을만한, 오히려 전체의 '선'을 향할 수 있는 나의 정신의 부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삶을 꾸려나가는 지금, 나는 즐길거리도 없는 내가 되어 버렸다. 미식가들처럼 먹거리를 찾아 다니거나 여름을 즐기기 위해 휴양지를 검색한다거나 치장하기 위해 쇼윈도우 앞에서 내 시선이 머문다거나 함께 즐기기 위해 모임을 찾는 일도 내게는 아무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잘 모르겠다. 어떤 연유가 인과로 인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테지만 이 이유는 나에게서 찾기는 이제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내 인생이었지만 나에게 이유가 없다. 

분명 나는 그렇게 고귀한 사상을 추구하는 격높은 인간이 아니었기에 

이러한 나로서 고통과 무료함없이 안정된 행복감을 누리고 사는 방향에 대해서는 

'세상이 날 제대로 쓰려나보다',

'세상이 나를 통해 뭔가 일을 하나보다.'

라는 생각에 그치는 것이 나름 현명한 판단이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 나를 통해 맞춰야 할 조각이 있나보지.

세상이 나여야만 이뤄질 뭔가를 계획하나보지.

세상이 나일수밖에 없는 계획 하나를 내게 심었나보지.

세상이 이 일에 있어서만큼은 나에게 공을 들이나보지.

세상이 이제 나로 결정하고 이리 살도록 나를 만들어 가나보지.


내가 알 수 없는 범주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최근 느끼면서 나는 나를 완전히 버린 듯하다.

이성으로서 내리는 판단이라곤 위에 언급한 것외에는 없다. 

계획도 하지 않고 스케쥴도 없다. 

매일 명령받은 그 일을 행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24시간은 꽉 차고

나의 이성은 꽉 막혔고

나의 시선은 저어기 멀리 흐릿한 것에 고정되어 있고

나의 손발은 다른 곳을 향하지 못하고

나의 감각은 내 영혼이 연신 보내는 신호를 받느라 분주하다.


이렇게 나는 무료함이란 찾아볼 수 없으며

쌓아도 쌓아도 부족한 정신의 부를 쌓느라 배움의 기쁨에 넘쳐 흐르며

이렇게 쌓다가 흘러나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직관적으로 이때다! 싶어

과감하게, 가감없이, 진심으로 세상에 구현하기에 바쁘다.


나의 본성에, 

나의 명받은 것에, 

나의 영육혼의 건강을 지켜가며,

나의 하루를 사용하는,

나에게 집중하는 이기는

분명 이타인 것이다.


'세상이 나에게 되라고 명령한',

'내가 되기로 결정한 그 사람이 되기로 맘먹은'

이 충만한 행복감으로 오늘도 나는 한걸음만 더.....


*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인생론, 박현석역, 2010, 나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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