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불안'에 대한 소고
새벽독서토론에서 많은 분들이 자신의 감정, 불안이나 두려움같은, 감정에 사로잡혀 있음을 토로했다. 나 역시 그렇다. 어떤 상황에 처하거나 새로운 무언가를 앞두면 늘 두렵고 불안하고 미리 걱정부터 한다. 아마 나처럼 감정의 지배를 받았던 사람도 드물 것이다. 상당히 그렇게 겉과 다르게 속은 요동치는 삶을 살아왔었기에 어쩌면 더 간절하게 나의 요동을 감동으로 바꾸려는 것에 집착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처절한 시기들을 지나며 내가 얻은 결론을 몇가지 정리해본다.
첫째, 당연한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고 피하려는 것은 오만하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 나에게 닥친 어떤 사태는 내 머리속에 없는 것이다. 없었기에 당황하고 어떤 길을 갈지 내 계산에 없기에 불안하고 이 계산을 얼른 머리로 더듬어보지만 답이 없어 걱정이 산더미인 것.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거나 어떤 사태를 겪거나 현재 처한 문제들은 그것들의 효율만큼 두려움과 걱정과 불안을 함께 동반한다. 당연한 이치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부록처럼 받지 않고 좋은 것을 취하고 부록을 떼어버리려는 것 자체가 오만이다. 내가 뭐라고 자연의 이치로 오는 것을 감히 떼어버릴 수 있을까. 쓰지 않은 약은 없고 해롭지 않은 달콤함은 없다. 당연한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성이 요구된다.
둘째, 오늘 해야할 일을 하지도 않고 망상, 불안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영적 퇴보다.
인간은 추구하는 동물이다. 본성이 그렇다. 하고 싶은 것을 했는데 또 하고 싶은 게 생기고 먹고 싶은 것을 먹었는데 또 먹고 싶은 것이 생긴다. 비단 이러한 단순자극뿐만 아니라 꿈을 꾸고 이룬 사람은 더 큰 꿈으로 자신을 이끈다. 인간은 추구의 동물이다. 욕구의 동물이다. 욕구하지 않으면 살아있는 시체라는 말도 있으니 우리가 숨쉬는 기본운동부터 생명자체는 계속 운동하며 어딘가로 나아가려 한다. 종착지가 어디인지는 모르나 결국, 영적인 진화를 이뤄나가는 과정이다.
매슬로우의 인간욕구단계의 최종 꼭대기에 '자아실현의 욕구'가 자리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추상적인, 형이상학적인 자아의 발견과 가치실현을 이루고자 한다. 이러한 영적성장과 진화는 시대에 적합하다. 지식을 너머 메타지식이라는 차원 역시 영적진화의 수준에 의해 좌우된다. 창의, 통찰, 직관, 예지, 지혜와 같은 영역은 단지 명시적이거나 경험적 지식으로 해석되지 않는 범주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야할, 치러내야 할, 겪어야만 할, 극복이라는 수순으로 오는 것들을 외면하고 회피하고 덮어두려는 행위는 진화는 커녕 정체도 아니고 퇴보일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충분히 잠재되어 있는, 그리고 그 잠재된 무언가가 결합을 원하는 경험을 배제시키는 것에 대해 자신 스스로가 받는 대가가 바로 퇴보다.
셋째, 패턴을 끊어야 한다.
코칭을 할 때 가장 먼저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패턴을 읽어내는 통찰과 혜안이 필요하다. 패턴. 일정한 반복을 파악하는 것이다. 나의 패턴이 '새로운 일-걱정-불안-움츠러듬-멈춤'이라는 패턴인지 '새로운 일-걱정-불안-움츠러듬-극복' 이라는 패턴인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새로운 무언가에 부록처럼 따라오는 부정정서의 다음 수순이 포기냐 극복이냐를 잠깐 되짚어볼 때 포기의 패턴을 가졌다면 한번만 더 나아가보면, 참아보면, 미뤄보면 되는 것이고 극복의 패턴을 가졌다면 그저 부정정서는 과정중에 있는 것이니 잘 데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의 패턴을 긴 시간으로, 큰 시야로 한 번 살펴본다면 두려움과 불안이 포기의 전단계인지 그저 잠깐 왔다가 지나가는 것인지 파악할 수 있으리라.
넷째, 어려운 길은 어렵게 가야한다.
사람은 편하고 유리한 것을 원한다. 모두가 그렇다. 보다 편한 것을 위해 쉬운 쪽을 택하고 쉬운 쪽을 위해 어려운 길 앞에선 노하우를, 방법을, 비결을 찾게 된다. 하지만, 노하우와 비결은 그 사람의 것이다. 그 노하우와 비결을 가진 이가 불편한 과정들을 모두 겪어내며 결과적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터득한 것이 노하우이자 비결이다. 세상에 노하우와 비결이 천지다. 부자되는 비결을 검색해보면 엄청난 정보가 쏟아진다. 다 무료다. 그런데 왜 부자가 되지 못할까. 그 사람이 걸었던 그 가시밭길을 걷지 않고 단맛만 쏙 빼서 아직 갖춰지지 않은 내가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노하우와 비결이란 단어에서 눈을 감는 것이 진짜 큰 비결중의 비결인 것. 새로운 일, 지금 눈앞에 닥친 사태는 안 겪어본 것이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지금은 구구단을 쉽게 외우지만 처음 구구단을 외울 땐 어려웠다. 마찬가지다. 지금 새로운 일, 닥친 난제 역시 구구단이다. 그러니 어렵다. 어려운 것은 어려운 길로 가야만 쉬워진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 수 있는 노하우나 비결은 없다. 그저 기본에 충실하게 그것들을 겪어나가는 것만이 비결을 갖는 지름길이다.
다섯째, 두려움, 그것을 잘 데리고 사는 방법을 익혀가는 것
결국, 두려움이나 불안은 없앨 수 없고 피하거나 즐길 수도 없다. 잘 데리고 가는 수밖에 없다. 단, 관심두지 않아야 한다. 관심받으려고 내 인생에 착 달라붙은 녀석에게 먹이를 계속 주면 그 녀석이 날 너무 좋아하게 된다. 그러니 관심두지 않기 위해 다른 관심둘 꺼리를 찾아야 한다.
두려움과 불안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두려움과 불안이 내에로 와서 하는 일은 뭘까? 새로운 일을 해내게 하는 정신을 길러주기 위함일까. 새로운 일을 성취한만큼 나를 키워내기 위함일까? 난제를 극복해내면서 내가 난제보다 더 커지게 하기 위함일까? 결국 두려움과 불안에 관심두지 말고 그 일이 해결됐을 경우를 감정(느낌)에 얹혀서 그 강도를 세게 하는 것이다. 계속계속 곧 다가올,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간 그 시간의 쾌감에 먹이를 주며 두려움과 불안보다 더 감정의 강도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쾌감에 관심을 두면서 이 녀석이 나를 떠나지 못하게 내가 길들여서 내게 딱 달라붙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그 쾌감이 나에게 고맙다며 상상속의 그 것을 현실로 선물할 것이다.
여섯째, 불안, 두려움 이 감정조차 소비가 아닌 미래의 나를 위한 투자로 사용하는 것.
나는 나의 모든 일상, 일거수일투족이 투자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모든 상황은, 개념은 두 개의 길을 가진다. 소모할 것인가, 투자할 것인가.
소모되어 낭비로 흐르게 할 것인가
투자되어 신자본을 얻게 할 것인가.
불안이나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이 감정에 내가 소진되고 소모되어 낭비로 흐르게 할 것인가
이 감정을 잘 데리고 놀면서, 즉, 이 감정으로 인해 얻을 것이 무엇인지를 명석하게 해석하여 투자로 만들어낼 것인가.
당연히 후자쪽이다. 어떻게 두려움과 불안을 데리고 놀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 놀다 보면 상처도 나는 법, 상처났다고 안노나? 피가 나도 그냥 쓰~윽 닦고 논다. 그냥 놀기 위해 약간 상처가 난거다. 상처가 나의 놀기에 방해되지 않는다. 두려움과 불안 역시 그런 거다. 그냥 쓰~윽 피가 좀 나는 거다. 그러니 지금 인생에서 해야 할 일 그냥 하면 된다. 이것이 투자다. 그러면 불안과 두려움은 자기들이 이 상황에서 해야할 일 하고 알아서 나간다. 놀다보면 피가 멎어 있고 시간이 지나면 상처에는 굳은 살이 돋아 있다. 그렇게 새살을 얻었으니 투자한 것이다. 그렇게 잠깐 노는 데에 끼어주면 투자인 것이다.
첫째~여섯째의 한문장은 토론 후 함께 참여했던 새벽독서멤버 가운데 한 분이 저의 강의를 듣고 짧고 간단하게 6줄로 요약정리하신 것에 제가 다시 설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저는 그 도움으로 그냥 오늘 제 생각을 어필한 것이구요. 정리를 잘 못하는 저인지라 이렇게 독서멤버들의 노트들이 제겐 아주 귀한 자료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