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라보는 15개의 시선 15
1000일이 넘는, 4년째 새벽독서중입니다.
50의 나이에 '삶'이란 것에, '인생'이란 것에, 그리고 이를 위한 도구인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고 이를 나름 정리하는 중이구요. 어떨 때엔 1주에 1개, 어떨 때엔 1달에 한개를 써내려가다 보니 벌써 15가지의 관점이 나왔네요.
오늘 저의 관점은 '나는 땅이다'입니다.
나는 땅이다.
땅은 세상에 펼쳐진 바닥, 판이다.
땅은 모든 유기물을 품고
무엇이든 잉태시켜 탄생시키고 죽은 것들을 다시 품고
그리고 다시 소생도 시킨다.
나는 땅이다.
땅은 물을 머금는다.
땅은 제 맘대로 움직이며 주체하지 못하는 물을 머금는다. 물을 생성하고 물길을 만들어 고이게도, 흘려보내게도 한다. 땅 속의 흙과 물이 만나면 생명이 잉태되고 탄생하며 그러다 소멸되어 다시 땅의 거름이 되게 스스로가 순환한다. 땅속에서의 유기적인 순환은 참으로 단순하다. 생성과 소멸. 이 단순한 반복만을 거듭한다. 내 안의 열정이 그렇다. 내 안의 생각이 그렇고 내 안의 의지가 그렇다.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때론 들끓어 화산폭발을 일으키기도 하고 때론 조용히 안에서 맴돌다가 소멸되기도 하고 때론 죽은 것들을 보태 새로운 창조물을 제작, 조작해내기도 하고 때론 고여 썪기도 하고... 땅은 물과 함께 생성과 소멸만 반복하며 자기 스스로 호흡한다. 나의 땅속도 열기와 냉기로 순환하며 뿜었다 담았다 소멸되었다 생성하며 끊임없이 순환한다.
땅은 품는다.
깊은 땅 속... 그 어딘가에는 아직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광석과 자연생태계가 존재한다. 내 안에 엄청난 보석이 담겨 있다. 그 보석은 완성품일 수도, 아니면 새로운 보석을 창조해낼 원석인 것이다. 아직 땅의 비밀은 풀리지도 않았다. 지금껏 파내려간 땅은 극히 일부분이다. 파보지 않은 영역도 너무나 넓고 깊다. 계속 파고 또 파면 지구의 중심에 닿을까 아니면 지구의 밖으로 튀어나갈까. 나는 모른다. 내 땅의 깊이를 나도 모른다. 나의 잠재된 것을 나는 아직도 모른다. 무궁무진하다는 것만 알 뿐.
땅은 창조한다.
땅은 인간도 만들었으니 뭔들 못 만들겠는가. 조그마한 싹은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로 뻗어올라간다. 나의 꿈은 그럴 것이다. 아직 싹을 틔우지 못했을지언정 땅 속의 씨앗은 언젠가는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를 뽐낼 것이다. 자연이 허락한다면 말이다. 자연의 허락은 자연의 필요에 기준한다. 자연과의 조화에 어울릴 때 기세등등 하늘로 솟구칠 것이다. 어떤 싹은 바람과 태양과 비와 조화를 이뤄 튼실하게 기세를 떨칠 것이고 또 어떤 것은 바람도 태양도 비에게 거부당할 지도 모른다. 또 어떤 것은 너무 연약해 자연의 보호에도 자신을 지켜내지 못할 지 모른다. 싹이 하늘을 향하게 하는 진화는 땅의 기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땅과 함께 세상을 이루는 자연의 허락이 필요하다. 솟구치듯 세상이 다 내것인양 일이 잘 될 때도 있고 모든 것이 완벽한데도 일이 어긋날 때가 있다. 내가 관장할 수 있는 영역의 밖은 반드시 존재한다. 여기까지 알고자 하는 것은 주제넘는 짓이다. 나는 땅이니까. 그저 내려주는대로, 불어오는대로 선택되어지게끔 무엇이든 끊임없이 창조하여 세상으로 내보내고 또 내보내는 것만이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역할일뿐. 나머지는 자연의 몫이다. 세상이 자신의 설계에 합당한 것을 선택하여 땅위를 구성케한다.
땅엔 생명이 공존한다.
땅위에는 날아다니는 두발달린 새들, 걸어다니는 네발달린 짐승들, 셀 수없이 많은 발을 가진 기어다니는 벌레들, 그리고, 발없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함께 한다. 지난 50여년간 나에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때론 기어서, 때론 걸어서, 때론 달려서, 때론 뒤돌아서, 때론 앞장서서, 때론 내 손을 잡고, 때론 내 손을 놓고, 때론 떼를 지어서, 때론 고요히 홀로, 때론 기운 넘치는 기세로, 때론 기운빠진 형세로, 때론 잠시, 때론 오래 그렇게 내 인생에 잠시 들렀었다. 그러다 사라지기도 남기도 하며 나의 속으로, 내 감각과 정신의 토대의 일부인 기억과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땅은 공존을 위해 어떤 것은 소멸시키고 어떤 것은 탄생시킨다. 나와 관계된 모든 것들도 그런 이유에서 진입하고 사라지고 남고 떠나고 하는 것이다.
땅은 무조건 하늘만 보인다.
땅은 아무리 싫어도 하늘을 볼 수밖에 없다. 보여서 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자세를 고치려해도 보인다. 하늘이, 그 드넓은 하늘이... 보인다... 하지만, 그저 바라만볼 뿐 만날 수 없다. 나는 땅이라 하늘은 늘 닿지 않는 저 위에 존재한다. 땅이 아쉬운 마음에 고인물 속에 하늘을 품듯 현실에 사는 나도 이상을 품는다. 하지만, 땅과 하늘이 만나는 곳은 존재한다. 저어기 뉴질랜드에 있다고도 하고 땅끝마을에도 그런 곳이 있다 하니 내가 그리로 가야지 여기서 제 아무리 하늘과 손잡자고 까치발을 들어도 소용없다. 기차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기어가든 거기까지 가야만 하늘과 맞닿는다. 아무 것도 없는 그저 자연만이 존재하는 곳, 몇 안되는 지점에만 하늘과 땅이 맞닿아있다. 내 현실이 이상에 닿으려면 자연을 닮고 자연을 품고 자연과 같아야 한다. 그렇게 소수만이 이루는 '이상이 현실이 되는 지점'에 서려면 인위적으로 축적시킨 나의 관념과 치장들을 모두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
땅은 결과다.
땅속에서 솟구쳐 세상밖으로 튀어나온 녀석들에게는 모두 결과까지 가야할 숙명이 있다. 중간에 죽어버린 무언가도 그것이 거기까지가 결과이며 끝까지 살아남아 튼실한 열매를 자랑하는 과실수도 그 자체의 결과다. 땅은 항상 결실을 요구한다. 결실까지 가다가 포기하는 녀석들은 다시 땅으로 회귀하여 새롭게 재생성되어서라도 결실을 보게 한다. 땅이 원천적으로 원하는 것은 결실을 맺고 이 결실의 잉여를 서로 나누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흔하디 흔한 민들레마저도 돌틈에서라도 씨를 생성해 바람의 힘을 빌어 나누려하듯 나는 못난 녀석이든 잘난 녀석이든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충분한 땅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잘난 녀석만 키우는 땅은 없다. 버려진 녀석을 거부하는 땅도 없다. 그저 자기안에서 나온 모든 것들을 숙명처럼 결과짓고 결과짓도록 이끌고 보듬고 품는 것이 땅이다.
이 모든 것의 토대는 흙이다.
흙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원료도 바꿀 수 없을 뿐더러 완전히 갈아엎을 수도 없다. 부모는 내가 선택할 수가 없다. 그저 주어진대로 나는 땅으로서 더 비옥하게 나를 가꾸는 것만이 유일한 나의 몫이지 모든 것을 갈아엎어 새로운 흙으로 만들 수가 없다. 설사 새로운 흙인들 완벽할까. 그 자체에 또 다른 유기물질들이 보태지지 않으면 그저 조금 다른 흙일뿐. 흙을 갈아엎으며 흙을 원망하고 흙에만 모든 것을 의지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 것이 땅에 이롭다. 하늘이 내려주는 비도 맞고 바람이 가져다주는 이롭든 해롭든 모든 것들을 스스로 걸러내며 나는 땅의 본분대로 비옥하게 스스로를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다.
나는 땅으로서 살아야 한다.
세상의 허락하에 비옥한 땅에서 어떤 장애없이 태어나 지금껏 살고 있는 혜택으로
이제는
땅의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땅의 소리로서 세상에 귀를열고
땅의 전령으로 다리를 옮겨가며
땅의 감각으로 기운을 느껴가며
땅이니 땅답게 진동을 울리리라.
그렇게 땅에서 탄생한
설악초는 설악초를 피우는 것으로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는 것으로
잠자리는 하늘을 나는 것으로
매미는 여름 내 울어대는 것으로
다람쥐는 도토리를 모으고
사자는 영역을 지키는 것으로
그렇게 본분을 다해야겠지.
그렇게 땅에서 탄생한 것들이 성실의 옷을 입고 그만큼의 잉여를 생산하면
설악초는 보는 이의 눈을 아름답게
사과나무는 우리에게 탐스럽게
잠자리는 한여름 장난꾸러기들의 놀이로 신나게
매미는 고진감래의 진리를 깨닫게
다람쥐의 우메함은 다시 땅 속의 영양분으로 알차게
사자는 우두머리다운 기세를 전하며 기운차게
그렇게 가치를 나누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겠지.
모든 땅위의 것들은 그렇게 흙으로부터 비옥해진 땅위에서
오로지 태어난 하나의 의무에만 목적을 두고
하늘을 날며 땅위를 기며 산길을 헤매이며 강물속을 헤엄치며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무엇을 하든
그저 단 하나의 목적을 향해 자연에 의지하고 자신을 키워내면 되겠지.
나는 땅이다.
내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무엇을 하든
그저 단 하나의 목적을 향해 자연에 의지하여 나를 비옥하게 키워내면 되겠지.
모든 것이 땅으로부터 소생하듯 내게 잉태되는 수많은 씨앗들을 세상으로 내보내면 되겠지
그렇게 세상에 뿌려진 씨앗들이 자연과 교류하고 교감하며 쓰여질 목적에 쓰이도록
신성한 자세로 무관심하면 되겠지
오로지 나는 여태껏 어떤 장애없이 살게 한 덕에 감사하며
나 태어난 하나의 목적에 의무를 심고
땅의 한계짓지 않는 포용과
온기와 냉기 모두 품은 푸근함과
흡수하고 발산하는 이동과
무한한 잉태와 생성을 끊임없이 하다보면
저어기 하늘끝, 나의 이상과 맞닿는 지점에 닿겠지.
나는 땅이다.
내가 뿌린 수많은 씨앗들이 자연의 허락을 받을 것인가.
세상에 뿌려진 그것들이 열매를 맺을 것인가.
이는 내 몫이 아니다. 내 영역이 아니란 말이다.
나는 나를 일구는 것만.
나는 나를 키우는 것만.
나는 나를 수용하는 것부터.
나는 내가 결과여야 한다.
나는 땅이다.
끊임없이 순환하며 스스로를 일궈내는 땅이다.
오로지 나를 키우는 그것이
온 세상을 이롭게 하는 아주 희미하고 작은 조화로움일테니...
그저 성실히 일구면 그만이다...
이렇게 인간이 땅을 정복하듯
나는 땅자체이니, 즉, 나를 정복한다는 것이다.
땅 속에 들끓는 나의 열정과 의지들
땅 위에 오가는 나의 수많은 상념들
땅과 마주하는 나의 수많은 관계들
내가 '나 자신'이라는 땅을 일구고 더 비옥하게 일궈
비로소 땅을 정복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정복하여 내가 원하는 삶으로 나를 이끄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