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변화'
* 매주 일요일 공자(공부못하는 자녀를 둔 부모필독) 매거진을 발행하나 오늘은 시간가는줄, 요일이 바뀌는 줄 모르고 글을 쓴 순전한 제 탓으로 이번 주만 공자매거진은 내일(월) 발행하겠습니다. 죄송하고 이해해주시리라 여깁니다.
사람들은 자기희생을 통해 타인을 돕고 싶어 한다.자기희생, 즉 자선을 행하면 자신도 기쁘고 타인도 기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을 줄이야...
이러한 사고에 거대한 두 줄기가 있으니.
우선, 자기가 남보다 더 많이 가지면 이건 욕심이라 여겨 오히려 가난을 미덕으로 알고 자신의 부를 다소 민망해하며 먹고 살만하면 됐다고 더 이상의 돈은 필요없다고도 하는 주류가 있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도 이러한 마인드가 남아 있는 1인이다.
'별로 가진 것도 없으면서 이 정도면 괜찮겠지?'
'이렇게 살면서 한달에 몇 만원정도 정기적으로 기부하면서 그렇게 남들처럼 사는 게 잘 사는 거겠지?'
'괜한 욕심이 화를 불러온대잖아.' 라며
현실의 삶에 억지 만족을, 가끔 솟구치는 욕구는 욕심이라 단죄하며 그렇게 살아왔었다. 무려 45년 이상을.
그런데 과연 이 마인드가 긍정의, 성공의, 부자의 마인드일까? 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 인 것은 4년전, 둘째가 느닷없는 유학길을 떠나면서부터였는데,
솔직히 아찔했다.
꿈을 찾아 떠나는 아들에게 내색은 안했지만 '돈'걱정이 나의 정신을 강타하며 내가 아이공부 마칠 때까지 충분한 지원을 할 수 있을까? 나 여태 뭐한거지? 이런 변수가 찾아올 것을 왜 예상, 대비하지 않은거지? 아이꿈을 돈때문에 막을 수는 없지 않을까? 아이들 교육에 모아놓은 돈 다 써버리면 앞으로는?
지극히 현실앞에서 나는 돈이 아쉬웠다. 연년생을 키우는지라 당시 큰아이가 음악을 하고 있었던 것까지 경제적인 부담으로 다가오며 꿈과 돈. 이 두가지 모두를 이룰 수 있는 나만의 공.부.가 시작되었다. 익히 아는 독자들도 계시겠지만 지독한 새벽독서의 계기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삶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자, 지금부터 앞서 언급한 하나의 주류에 대한 반발, 반박, 부정과 함께
또 다른 주류로 나의 생각을 이끌어 보려 한다.
과연, 신이 날 세상에 태어나게 하면서 나에게 가난하게 살라. 했을까?
기본적으로 이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적당히 만족하고 살다가 나에게로 와라. 했을까?
잠깐의 생각만으로도 이것도 아닌 것 같다.
내가 널 대충 만들지 않았으니 내 모든 것을 지원할테니 주어진 능력 모두 쓰고 많이 나누고 와라.했을까?
아무리 거부해도 이러지 않았을까 싶다.
누구나 능력적으로, 열성적으로, 주체적으로, 독립적으로, 자발적으로 선한 마음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극히 옳다. 절대적으로 이에 대해 반발을 할 수가 없다. 큰 부자가 된다면 아이들 교육비, 나의 노후, 내 눈앞에서 간절히 삶의 소망을 이야기하는 모두에게 나는 혀만 놀릴 것이 아니라 손에 빵도 쥐어줄 수 있을 것인데 내가 그러하지 못하니 인자한 표정으로 손을 잡아줄 뿐 해줄 것이 없는 내가 한심했다.
신이 과연 나에게 이 정도 부유만 허락했을까? 절대 아니다.
신이 과연 나에게 이 정도 능력만 하사했을까? 절대 아니다.
신이 과연 나에게 이 정도 만족에 멈춰 세웠을까? 절대 아니다.
신이 과연 나에게 이 정도 욕구만 지니게 했을까? 절대 아니다.
신이 과연 나에게 이 정도 베품만 나누라 했을까? 절대 아니다.
이런이런이런, 다 아니다!
그러니 부자가 되는 것은 신의 뜻이자 나의 권리이자 책임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부자가 되고자 하는 나의 갈망은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누구가가 좀 더 완벽한 조화를 위해 나에게 신호하는 호흡의 일부가 아닐까?
나폴레온힐에 의하면 자연이 우리에게 역경과 재난을 안겨주는 이유는 그 역경을 딛고 일어나 새로운 투쟁을 시작하는 사람을 골라내기 위한 것이라 했으니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더 욕망하는 것은 내가 선택받았다는 증거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가난이 미덕이 아니라 부자가 더 큰 선을 위한 덕이 아닐까?
이러한 사고가 나에게 주입되면서 수많은 성공자, 사상가, 철학가들의 책을 씹어 먹고 싶었다.
여태
무.지.한 나에 대한 질책과
무.심.했던 시간들에 대한 후회,
무.모.하게 집착했던 절제정신에 대한 반항,
무.용.한지도 모른 채 맹목적이었던 교육에 반기를 들고서
내 허락없이 나에게 주입되어 버린 내 인식, 관념을 죄다 갖다 버리고 싶었고
실제 인식이 날 가로막을 때 과감히 반대편으로 자리를 얼른 옮겨버린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그릇된 것이 아니라 부자인데도 졸부처럼, 구두쇠처럼 사는 것이 그릇된 것이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각오가 욕심이 아니라 지금의 적당히에 만족하고 사는 것이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신은 개개인에게 자신의 목적을 심어 세상에 내보냈고 개개인마다의 역할에 맞는 퍼즐조각을 거두어 조화를 이뤄야 할 자신의 설계가 있을텐데 이런 것을 무시하고 살아도 된다는 것 자체가 어찌 되겠지 싶은 자기기만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니,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옳은 것이며 선한 방향이라는 것으로 인식을 바꿔버리는 것은 '원하는 나'로서 살기 위해 너무나 기본적인 변화였다. 정말 집요하게 책을 읽어 나갔다. 왜 학교에선 이런 것들을 안 가르쳐주지? 원망도 하면서. (이 원망때문에 쓴 글이 '학교에서 안 가르쳐주는 성공학'이다.)
자산, 돈에 대해 로버트기요사키, 보도세퍼, 롭무어, 라밋세티, 데이빗렘지 등
자본, 자본주의에 대해 토마피게티, 유발하라리, 짐로저스, 앙드레코스톨로니 등등
시대, 시류에 대해 니콜라스나심탈레브, 필립코틀러, 제레미 리프킨, 마우로기옌 등등
그리고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나의 의식의 깊이를 위해 수많은 성공자들, 철학가들, 사상가, 심리학 저서들을 미친듯이 읽었다.
특히, 몽테뉴, 세네카, 쇼펜하우어, 에머슨, 발타자르그라시안, 니체 등 철학가들이 말하는 '부'에 대해서는 그대로 발췌하여 전자책으로 묶어 놓기도 했으니 지독했던 책에 대한 집착은 '나'에 대한, '인생'에 대한, '삶'을 위한 '부'의 공부였던 것이다. '원하는 나'를 위해 변하고 싶었고 내가 나로써 살고자 하는 데에 '부'에 대한 공부는 필수였던 것이다.
그리고 알았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옳은 방향으로 살겠다는 의지구나
부자가 된다는 것은 나의 욕구를 실현하는 본성적인 의지구나
부자가 된다는 것은 돈의 잉여를 너머 삶의 승격을 위한 의지구나
부자가 된다는 것은 선택앞에 머뭇거리지 않는 자유를 위한 의지구나
부자가 된다는 것은 이 자유로운 삶을 보여주는 문화계승에 대한 의지구나
부자가 된다는 것은 고통앞에 우는 이에게 실질적인 나눔을 위한 의지구나
부자가 된다는 것은 '지식'이 아닌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진짜 교육'의 의지구나
부자가 된다는 것은 나를 보고 누군가도 그리 삶을 살게 하는 이타를 향한 의지구나
부자.
이 단어가 낯설었고 민망했고 이 단어를 내뱉는 나는 속물같았다.
이것이 가난한 마인드의 깊은 뿌리에 있는 한 나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으로 '부'에 대한 개념을 머리속에 가득 채우기로 했고 나의 경험까지 보태어 '원하는 나'가 되기 위해서 과연 '돈'이 상관없는 존재인가에 대해 우리는 숙고해야만 한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고 이를 터부시하며 '부자가 낙타바늘에 들어가는 것은..'어쩌구 하는 말을 표피적으로 이해한 자신의 인식에 맹목적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도 모두가 더 맛있는 것, 더 좋은 옷, 더 넓은 집, 더 자유로운 곳을 원한다. 더 많이 베풀고 싶고 더 건강하게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이 사용하길 원한다. 더 나은 선택과 더 커다란 자유를 위해 우리는 부를 원하는 것이지,
끌어안고 자랑삼기 위해 부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원하는 나'가 분명 있는데,
내 가슴에서 나를 뜨겁게 하는 그 무언가가 꿈틀거리는데
이를 위해 부를 원하는 것이 왜 정당하지 못하단 말인가?
정말 중요한 것은 '원하는 나'로 되어가고 있는가? 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부터 숙고하고 시정하고 변화해야 그리로 갈 수 있단 말인가?
1번 숙제에서는 본질을 보는 것을 거론했었다. 진정한 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현상이면의 보이지 않는 그 곳으로 가기 위한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2번 숙제로 마인드, 즉 인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부'에 대한 긍정의 인식, 올바른 인식, 책임과 권리에 대한 인식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자유를 줄 것이며 진정한 이타를 실현할 힘을 줄 것이다.
내가 부자로 가는 길은 누군가를 부자로 이끄는 길이며
수많은 거짓정보와 부당한 처사, 인생에 닥칠 블랙스완으로부터 나와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길이며
명시적 이론을 떠나 실천적 경험으로 숙성된 나의 시간들이 나처럼 평범한 이에게 희망을 직접 전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원하는 나'로 되어 가고 있는가?
고개가 갸우뚱거린다면 자신의 인식 속을 들여다 보자.
엉켜있거나 가늘게 끊어질 듯한 또는 잘못 매듭지어진 부분을 과감히 정리하고
제대로 올바른 '부'에 대한 마인드가 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다.
생각을 왜 하는가?
그렇게 되길 바라기 때문에 한다.
결국, 생각의 근원은 바라는 것의 시작이니
마인드부터 바라는 것을 향하도록 조정, 수정, 삭제, 보완, 변경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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