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성찬을 즐겨라
오늘 새벽독서모임에서 나눈 얘기인데 너무들 다들 맞다맞다 호응이 커 이 지면에 옮겨본다. 혹여 부자가 되는 방법으로 주식이나 부동산, 채권 등 방법적인 어떤 비결이 있지 않을까 하여 클릭하신 분이라면 다소 실망스러울 것이다. 나는 그런 방법은 여러가지 부자가 되는 방법 가운데 극히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일부라 여기는 사람이며 진짜 부자, 선한 부자, 영원한 부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지금 말하고자 한다.
나의 고칠 수 없는, 고치고 싶지 않은 버릇 중 하나가 밥을 차려주면 젓가락을 들기가 무섭게 '맛있지?'를 묻는 것이다.
입에 넣고 씹기 전에도 '맛있지?'
삼키기 전에도 '맛있지?'
밥만 입에 넣으면 젓가락으로 이것저것 수저에 올려주며 '맛있지?'
밥도 맛있고 김치도 맛있고 찌개도 맛있고 밑반찬도 맛있고
암튼 다 맛있어야 하고
맛없어도 맛있다고 해야 한다.
그냥, 그래야 한다.
맛이 없는데 어떻게 맛있다고 하냐고?
그래도 맛있다고 해야 한다.
참고로 실제 나와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은 5번 놀란다.
많이 먹어서 놀라고
너무 잘 먹어서 놀라고
뭐든 안가려서 놀라고
너무 깨끗이 먹어서 놀라고
게다가 빨리 먹어서 놀란다.
맛있어서다.
나는 먹는 건 뭐든 맛있어서 좋고, 맛있으니 귀하고, 맛있으니 많이 빨리 먹고, 맛있으니 체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맛있으니 안 먹을 수가 없다. 계속 먹는다. 너무 맛있어서. 특히 남이 차려준 음식은 더 맛있다. 아니, 모든 아줌마들이 그렇겠지만 '남이 차려준' 음식은 뭐든 맛있다. 음식점에 가도 '너무 잘 먹는다'는 소리를 듣고 지인들과 밥먹을 때도 '담에 또 사줄께. 이렇게 잘 먹으니 안 사줄 수가 없네'한다.
잘 먹는 것은 다음을 기약시키고 다음에도 또 먹여주고 사주고 싶은 사람이 되게 하나 보다.
나는 차려준,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맛있다 표현하며
맛있어서 행복하고
맛난 음식과 차려준 정성에 감사하고
또 먹고 싶어 할 뿐인데.
부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도 이와 마찬가지다.
밥은 '나'이며
가장 기본이 되는 김치는 '태양과 땅과 하늘'이며
메인메뉴는 나의 '일'이며
기타 늘 내 주변에서 머뭇거리다 사라지기도 나타나기도 하는 존재들, 가령 사람, 새, 고양이등등은 밑반찬들이다.
신은 모든 인간을 똑같이 창조하셨다.
머리통과 몸통은 하나씩, 팔다리 두개씩,
그리고 똑같은 24시간.
그리고 태양과 바람과 별과 달, 하늘과 땅을 모두에게 똑같이 기본으로 주셨다.
뭐, 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고 비슷비슷하다.
일이 바뀌기도 하지만 항상 일을 해오는 것으로 나는 살아가니 메인메뉴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하나를 깊게 하면 오래 할 수 있으며 탁월한 경지에 이른다.
나의 된장찌개와 고등어조림처럼 말이다.
그리고 오늘은 참새가, 내일은 직박꾸리가, 또 까치가 나의 시선에 포착되듯 다양한 양념이나 밑반찬들이 수시로 번갈아가며 신의 성찬에 오른다.
자, 밥을 차려줬을 때 맛있다. 연거푸 즐겁게 먹으면 더 차려주고 싶듯이
이렇게 '나'라는 사람을 잘 만들고 온 자연을 모두 내주며 거대한 성찬을 차려줬는데 '나'라는 밥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예쁘다 보듬고 시간을 아끼고 소중하게 사용하는 사람과 반찬투정이나 하며 깨작거리는 것처럼 이미 존재하는 자신의 존재감이 약하다 하고 불평불만으로 가득차고 이탓저탓하는 사람.
과연 누구에게 다음 성찬을 준비해 주겠는가?
과연 누구에게 정이 갈까?
과연 누구에게 더 맛있는 음식을 내놓을까?
과연 누구의 성찬에 더 정성을 기울일까?
우리집에 와서 맛있다며 밥을 잘 먹는 사람에게 나는 '담에 와, 또 밥해줄께.'한다.
그런데 잘 먹지 않고 어쩌구 하면 '오늘 반찬이 좀 그랬지? 담엔 네가 뭘 좀 사와'한다.
내 시간과 돈을 쓰지 않고 너의 시간과 돈을 쓰라는 의미다.
당신께서 차려준 성찬을 귀하게 즐기지 않는 이에게는
'담엔 네가 좀 차려봐'하며 시간과 돈을 오히려 내놓게 하지 않을까?
당신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주는 것이 아닌,
내 호주머니의 것을 내놓은 사태들을 자꾸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너무 잘 먹고 가면 나는 혼자 음식을 만들다가도 계속 그 때 그 잘먹던 모습이 생각나서 반찬을 더 넉넉하게 만들어 요리조리 싸놓곤 한다. 가지러 오라고도 하고 갖다주기도 하고, 심지어 이건 누구 줘야 하니 건드리지 말라고도 한다.
당신의 성찬에 차려진 나라는 사람, 나의 환경 모두에 진심을 다하고 즐기며 일하고 긍정의 에너지를 내뿜는 나를 위해 수시로 날 생각하며 뭐든 좋은 건 나에게 주려고 챙겨두지 않으실까?
게다가 딴 사람 주려고 하다가도 '에이, 걔는 줘서 뭐해?'하시며 나에게로 주사지 않을까?
신은 이미 다 차려주셨다.
나라는 사람을 멀쩡하게, 나에게 필요한 자연은 모두, 나와 더불어 살게 할 일도, 나와 인연이 될 모든 이들까지 다 차려주셨다. 나는 감사히 맛있게 또 더 해주게끔 성찬을 즐기면 된다.
나를 더 귀하게 아끼고
시간을 허투로 소모하지 말고
나의 머리에 제대로 된 지식을,
나의 가슴에 뜨거운 열정을,
나의 몸에 건강한 음식을,
나의 영혼에 맑은 기운을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것이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며
'오호. 제대로 즐기는 너에게는 더 큰 성찬을 준비해줄께'라는 화답을 받아내는 것이다.
우리집에 와서 김치찌개를 잘 먹으면 다음에 햄까지 넣어 부대찌개를 끓여주듯이 말이다.
이것이 바로 '운'이며 '기적'이라 불리는 것이다.
능력보다 우월한 것이 '운'이다.
능력으로 승부를 보자면 세상에 능력있는 사람은 모두 부자가 되어야 하며 세계1등이 아니면 안될텐데 능력보다 더 우위에서 날 키우는 존재가 신의 선물, 운이다.
합리보다 우월한 것이 공리이며 신비이다.
세상이 합리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겠지만 비합리에 의해 합리는 이끌린다. 지금 현대사회에 직관, 창의, 통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비합리의 우세를 증명하는 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나는 매일 성찬을 즐긴다.
새벽. 신께서 차려준 성찬의 등장을 알리기 위해 출두하는 태양마중도 나가고 새소리에 응답하고 일에서 즐거움을 찾고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책에서 정신의 힘을 기르고 그 과정중에 나를 최대한 의미있게 끌어내며 시간을 소중하게 쓰이게 하고 이 모든 정성에 감사해한다.
이는 신의 성찬에 반응하는 것이다. 신이 태양을 보내줄 때 먼저 나가서 인사부터 하고 새소리에 '아이고 너도 나왔구나!' 반가워하고. 그렇게 성찬을 즐기는 것이다. 내가 어떤 밑반찬을 해놔도 다 맛있다고 하는 것처럼 신의 성찬에 가끔이든 자주든 날 위해 차려진 모든 것에 나는 반갑고 기쁘고 감사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이것이 부자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아직도 모르겠는가?
감사한 맘으로 맛있게 먹으면 또 해주고 더 해주고 자꾸 해주고 남의 것도 갖다주고 싶은 것이다.
신이 만들어놓은 성찬의 주메뉴인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감사하고 즐기고 나를 제대로 귀하게 여기면
신이 마련해놓은 더 확실한 모든 것들을 나를 위해 주고 주고 또 주고, 계속 주신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건데, 이러한 격을 갖춘 인간에게 신은 절대로 해를 가할 운을 주지 않는다.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이겨낼 운을 바로 뒤에 에피타이저로 등장시키신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잠깐.
나의 부자의 정의는 '돈을 쫒는 사람'이 아니라 '돈이 쫒는 사람'이다. 정서적, 정신적, 지성적, 관계적, 환경적, 건강적, 경제적 균형을 이룬 부를 지닌 자를 성공자, 부자라고 한다.
부자가 되는 것은 너무나 확실하게 기본이 갖춰진 자의 몫이다.
늘 수백번도 더 말하고 쓴 '정신의 물질화'. 바로 이것이 부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나라는 사람의 격을 높이면 그 격에 맞는 인물들과 교류하게 되고 그 뒤를 부는 쫒아온다.
이 시작은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고 소중히 사용하는 것.
그러한 나를 믿는 것,
나에게 오는 모든 것들에게 감사하는 것,
그리고 그 감사에 대한 보답으로
나의 하루를 허투로 보내지 않는 것.
바로 이것이 부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