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정체를 폭로합니다!

ch1. 나를 해체해보니 2

by 지담

본 글은 제목도 미정, 글도 미완입니다. 출간을 염두에 두고 그저 죽죽 써내려 가는 글이라 당분간 -새벽독서로 깨달은(배운) 어떻게 살 것인가-로 가제를 정하고 문체도, 어투도, 내용도 오락가락할 것 같습니다. 단편에세이가 아닌 글을 써내려는 과정에서 의례 겪어야 하는 수순이라 그대로 노출하는 용기를 내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라 외면마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글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분들이라면 연재되는 글이니만큼 지난 1~8편을 먼저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또한 매일 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브런치발행은 매일 하지만 본 글은 매일 쓰지 못하며 띄엄띄엄 발행이 될 수도 있는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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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제대로‘ 살기 위해 ’나‘를 알고 싶어졌고 ’나‘를 알려니 ’인간‘을 먼저 알아야 했고 ’인간‘을 알려니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는데 ’이성‘이 뭐지 알아야 했고 ’이성‘을 알기 위해 인간의 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이성은 뭔지, 정신은, 지성은, 지각은, 의식은.... 보이지 않지만 나를 지배하고 나를 움직이는 추동체로서의 이 정체들을 알아야만 했다. 하나씩 파고 들어보니 이 ’정신‘이란 녀석이 꽤 재미난 속성을 지니기에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해본다.


고집불통이다.

정신의 정체는 뭐라도 한 번 강하게 박혀버리면 빼낼 줄을 모른다. 게다가 박힌 놈이 자리를 틀기 시작하면 엄청난 속도로 스스로를 굳혀버려 고정관념으로까지 빠르게 진화해대니... 이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새로운 지식이 투입되지 않으면 큰일난다. 정신의 공간에 온통 자리를 튼 덩어리들이 수두룩할 듯. 더 신속하게 더 촘촘하게 더 자극적으로, 그러니까 자극적이라는 말은 새로운 것들이 서둘러 들어가 정신에 이미 들어선 것을 굳히는 짓을 방해해야 할 것이다. 결코 머물게 해서는 안 될 2마리의 반려견. 편견과 선입견. 이 녀석들은 도대체 뭘 먹여 키우길래 이토록 힘이 센지 한번 영역을 구축해버리면 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어디 훈련소에 보내 그 못된 성질을 고쳐야 하려나.

아니면, 스스로 소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려나,

이도저도 아니면, 강한 가격으로라도 깨부숴야 하려나.


고마운 줄을 모른다.

정신은 신체가 이리 먹여주고 키워주는데도 늘 뛰쳐 나간다. 그것도 허락 없이.

세상이 그리 모든 것들을 다 알려주는데도 못 알아듣고 엄한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기 일쑤다. 그래서 ‘정신 빠진’이라 하나보다.

게다가 정신의 눈은 지금보다 더 좋아 보여, 바라면서도 막상 그것이 손에 닿으면 또 다른 걸 바라는, 육체에도, 사물에도, 세상에도 고마운 줄 모르고 계속 바라기만 하는 정체를 지닌다. 그래도 가끔 혼줄 나면 자기를 챙기기도 한다. 정신 차리는 것이다. 정신 빠진 놈 소리 듣지 말고 정신 차리라는 소리도 듣지 않도록 혼줄나기 전에 알아서 갖춰주면 좋으련데 말이다.


인간 외의 모든 것들을 살펴보자.

발가벗고 태어나 누구의, 무엇의 도움 없이는 결코 생존할 수 없어 울어제치는 인간과는 달리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인간처럼 그 때만 유용한 유아어로 말을 배울 필요도, 먹을 것을 기다릴 필요도, 때에 따라 걸친 의복을 변화시킬 필요도, 재산을 축적하며 잃을까 노여워할 필요도, 그 어떤 필요도 없이 그저 자연에게서 모든 것을 충당한다.


그런데 인간의 정신은 스스로 필요한 것들을 이미 갖춰 충분한데도 더 많은 것들을 원하니 이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 것인가? 욕구? 그리 말한다면, 그것은 자연에게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 외엔 모든 것이 탐욕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우치지 못한 정신의 자체활동 부진탓일테다.


제 몫에 맞게끔 자기 자리를 지켜내지 못한 채 과하게 앞서 나가는 것으로 인해

가슴은 불안에 떨고

손은 잡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잡고

다리는 가지 않아야 할 곳으로 인생을 이끄니

고마운 줄 몰라 겸손하지 못한 정신은 아마도 자체적으로 서서히 파괴의 길로 들어설지 모른다. 자연이 정해준 궤도가 있다. 정신이야말로 이 궤도에서 어긋나지 않게, 엇나가지 않게, 모든 것에 대한 ‘감사’가 먼저 채워져야 하겠다.


자기 자리를 망각할 때가 많다.

서야 할 자리에 제대로 서 있어 줘야

제대로 명령을 내려 줘야

제대로 지휘해 줘야

명령받고 움직이는 혀도, 바삐 달리던 다리도 제 보폭을 조율할 텐데

잔잔하다 출렁이다 격하게 뛰는 가슴이 엉뚱한 데서 엉뚱한 박자로 뛰지 않을 텐데

스스로 알아서 자기 자리를 지켜줘야

세상이 주는 메세지에, 세상으로 내보내야 할 에너지에 맑은 길을 내어줄 텐데

조금만 타격이 와도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제발 자기 위치에 딱 서서 제대로 명을 내리도록 자주 세정(洗淨)시켜줄 수밖에.


세정되지 않는 정신은

분명히 영혼의 자극을 제대로 받았는데

분명히 신체도 준비 끝내고 대기 중인데

계속 삐딱선을 탄다.

도대체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걱정하는지...

도대체 무엇에 미련두고 무엇을 원망하고 무엇을 재단하고 무엇을 재고하는지...

도대체 공기가 이 녀석에게 어떤 불치의 바이러스를 전염시켰는지...

자기 자리를 지켜줘야만 신체가 제대로 움직일텐데 말이다.


신뢰에 인색하다.

분명

귀가 그간 듣지 못한 것을 들였고

가슴이 그간 느끼지 못한 것에 출렁이고

눈이 그간 보지 못한 것을 담았고

손이 그간 외면하던 것을 부여잡았음에도

정신이란 녀석은 그것을 신뢰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의심해댄다.

물론, 그 몹쓸 버릇이 위험으로부터 모든 신체를 보호할 때도 있지만

이 녀석이 수족으로 데리고 있는 오감들이 이리 이성보다 더 감각적으로 증명해낸 것이라면 정신안에 있는 관념, 이성이라는 정체를 외면하고 그저 감각으로부터의 신호를 신뢰해도 좋으련만.

어찌할까?

굳이 현상이라는 사태에 부딪혀 봐야만 정신의 부동자세가 파괴된단 말인가?

분명 말하자면, 현상은 정신이 담고, 믿고 있는 이성을 파열시켜 파멸로 몰고가야만 정신이 자신을 버리고 순한 양이 되어 감각에 순종할 것을 알기에

경고하건데, 정신이 신뢰하지 못하는 모든 것은 사태로서 신뢰에 이르리라.


가끔 사기도 친다.

정신이 자신을 과신하는 것은 아마도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명제때문 일테다. 이성적 사고는 정신의 수준과 깊이에 따라 좌우되는데도 불구하고 ‘생각’하면 모두가 ‘이성적 사고’인 줄 착각하는 것이다. ‘이성’이 제대로 기능한다는 것은 사고의 양과 사유의 깊이에 따라 바보와 천재를 가릴만큼 그 범주가 우주만큼일텐데, 그러니까 이성적 사고에는 비이성적 사고도 함유된다는 것을, 합리에는 비합리도 충족시켜야만 합리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텐데 나약한 정신은 비이성을 배제한 이성, 비합리를 외면한 합리만이 ‘이성적 사고’라고 간주하니 이러한 정신은 자신의 주인인 인간을 삶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고야 마는 아주 못한 정신인 것이다. 양이 부족하면 양을 채워야 할터인데 부족한 양을 채우기는커녕 부족한 양으로 지속적으로 바삐 움직이니 에너지가 없는 것을.... 정신으로 인해 인간은 수렁에 빠지고 빠진 수렁에서 더 정신은 없어지고 악순환으로 인생이 꼬이는 것을.....


그러니 정신은 잡고 있는 '줄'을 제대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정신줄'. 놔야 할 곳에서는 놓고

잡아야 할 곳에서는 잡아야만 한다. 그래야 정신이, 지식, 이성, 지성이라 불리는 자신의 동료들이 범하는 오류에서 주인인 인간을 헤매지 않도록 해줄 것이다. 이는 정신에 켜켜히 저장되어 있는 과거경험에만 또는 누구누구 학자들의 이론에만 근거해 주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지나간 기억의 투자가 미래의 이윤으로 환원될 거라는 과도한 사기행각은 이제 그만.

직접이든 간접이든 정신에 쌓인 이론이 작금의 현실을 나아지게 할 것이라는 사기도 그만.


정신은 앞으로 모든 순간에서 잠깐 제자리에 서서 새로운 이성인지 낡은 이성인지, 이성이 함유하고 있는 인식과 관념에 도전해야 하는지 항복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결코 지나간 과거로, 남의 것으로 인간에게 지혜를 주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길이 있으니 정신은 잡고 있던 줄 대신 영혼의 줄로 옮겨타는 시도를 해야만 할 것이다.


당부하건데

가끔, 때에 따라서는 자주 정신의 속을 의심하고 결코 놀라지 않아야겠다.

눈과 귀가 정신을 이길 때가 종종 있다.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 할 것이고

들리는 것을 가려내지 못한 채 있는 그대로의 실체만을 쫒는 바보같은 짓을 할 때가 있다.

이 때 정신이 이들에게 패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알려준대로 ‘육체가 멀쩡한데 정신이 항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정신이 멀쩡하면 육체는 바로 백기를 든다.

의심하는 정신이 감사가 되도록 제발 항상 '똑바로 자리잡고' 서 있어야 한다.

또한, 세상이 가끔 정신이 번쩍 들도록 놀래키기도 하겠지만 결코 그런 일에 흔들려서도 안될 것이다. 육체가 받는 수많은 위협적인 사태들로 가끔은 정신을 혼미하게 하겠지만 이는 결코 정신을 경멸하려거나 저 아래에 떨구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에 채워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경고로 여겨야 한다. 움찔 놀라서 주춤거리는 쫄보가 돼서는 안될 것이다. 놀라지 않는 정신, 꿋꿋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내는 정신, 적군은 물리치고 아군은 흡수하는 정신이라면 충분히 그 위협적인 사태를 신체보다 먼저 감지하여 오히려 모든 신체를 보호해줄 대단한 위력을 지닌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고맙다.

휘청대는 것이야 바람이 강하니 어쩔 수 없다치고

삐딱하게 구는 것이야 공기가 실수했다 치고

자리를 이탈하는 것이야 지체보다 더 큰 타격때문이라 치고

신뢰에 인색한 것도 사태를 겪어보지 않아서라 치고

과한 것에도 보폭조절이 난감한 때가 있다 치자.

사기치는 것은 금지당했으니

휘청대다 삐딱하다 자리를 벗어나고 의심병과 욕망에 괴롭더라도

책임감있게 딱 서야 할 그 자리로 돌아와 신체와 영혼의 연합에 지장주지 않으니

참 고맙다.


끝까지 버텨야 할 명확한 이유를 알려주마

정신의 주인인 나는 오늘 나의 정신에게 명령하겠다.

나의 영혼이 내 숨결을 모두 세상에 뿌리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버텨야만 한다.

신체가 잠으로 쉴 때조차 수많은 상(像)들이 정신을 쉬지 못하게 하더라도 버텨야만 한다.

정신이 결코 망가지면 안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신이 쓰러지면 모든 신체가 자기 할 도리에서 어긋나게 되고

정신이 차단되면 모든 영혼의 자극이 들어갈 틈이 없으니.

혀는 몹쓸 말들을 뱉어낼 것이고

눈과 귀는 분별없는 흡입을 해댈 것이며

피와 살도 덩달아 자신들의 통로를 막아버리고

이로써 그 시간까지 애써 버텨온 모든 이력들을 한 순간에 어딘가에서 탕진될 터이니

신체가 쓰러져도 정신은 살아있어야만 한다.

신체가 살아있는 내내 정신을 키워준 그 몫까지 해낼 정도로 정신은 강인하게 끝까지 버텨줘야만 한다. 그렇게 신체는 시간과 정비례하여 노쇠해가더라도 정신만큼은 미동없이 자기 자리를 지켜줘야만 한다.

그러니


끝까지 주인인 나의 인간다움을 흐트러뜨리지 않아야만 한다.

너는 너의 주인인 나의 허락이 떨어져야 나에게서 해방되는, 그런 존재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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