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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이타다 2

해체, 그리고 脈! 1

by 지담

본 글은 매거진 '어떻게 살 것인가'의 1편부터 연이어 읽어나가시길 권해드리며 본 글은 '2장, 해체, 그리고 맥'의 1. 이기는 이타다 2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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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2번째 삶의 맥(脈)으로서 나는 이기(利己)는 이타(利他)를 거론하려 한다.


이기, 자신을 먼저 이로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을 비롯한 타인, 전체를 위한 선(善)의 시작이자 기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노력과 성숙이 긍정적 공명을 만들기(주석1) 때문이다.


우선 인간이 인식하고 의식할 수 있는 존재는 유일하게 나 자신, 즉 개인뿐(주석2)이다. 직접적으로는 자기 자신만을 인식할 수 있으며 타인을 비롯한 다른 모든 사물, 환경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만 인지할 수 있다, 간접적으로라는 의미는 자신의 인식이 포함되었기에 '있는 그대로가 아닌 상태'로의 인식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가장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개체는 바로 자기 자신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누구와 친한지 등 소유와 지위에 관심이 많다. 특히 젊은 나이에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 일단 먹고 사는 일부터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며 다양한 경험이 그들의 평생의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즉 물질적으로나 비물질적으로 ’생존‘을 위한 기본을 마련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 ’먹고 사는 일‘을 할 때 좀 더 나은 사람과 좀 더 편안한 일터에서 좀 더 나은 조건으로 일하고자 하는 것은 기본적인 ’소유‘의 욕구다. 그렇게 많이 벌어서 자신의 삶을 하나씩 일궈나가는 것이 젊은 시절에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리고 나서 나이가 들거나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해지고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는 내면을 갈증을 느끼는 시점이 오면 ’소유‘보다는 ’존재‘에 관심을 두게 된다.


이렇게 전이가 일어나는 원인도 ’소유‘, 즉 ’생존‘에 대한 갈급함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생존이 해결되면 순차적으로 존재에 대한 의문과 질문이 내 안에서 꿈틀댄다. 이제는 무엇을 하는지보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사회에서 나를 드러내야 하는지, 세상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쓰일지, 나의 삶은 행복으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등 ’가치‘와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자기 삶을 점검하는 기간을 지나게 되는 것이다.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신의 내면은 자신의 ’가치‘에 집중, 심지어 집착까지하는 시기가 온다.


사람은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것은 모두 자신 속에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덕성과 지혜로 튼튼하게 보호받고 있으면 있을수록, 우정을 구하고 그것을 가꾸는 데에도 탁월한 법(주석3)이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그 때부터는 내가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자신의 행동거지도 살피게 되고 자신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숙고와 자기 점검, 나아가 자기 검열을 통한 ’성찰‘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을 더 바람직한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 자기 자신의 변화에 집중하는 시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자기 존재의 가치에 대해 묻고 답하고 괴롭지만 유익한 기간을 길게 가지기도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소유하며 만족코자 했던 자신을 넘어서서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세상에 유익한지를 자기 내면에, 하늘에, 거대한 누군가에게 묻게 되는 더 큰 시선을 쫒게 되는 것이다. 자기존재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자기를 갈고 닦는 배움의 시간으로 자발적인 고립을 선택하는 이도 있고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해 애쓰며 세상과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는, 깊이 있는 삶의 태도를 자신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잠깐 나를 세워두는 자기의심.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들여다보는 자기부정.

나의 못난 모습을 직시하는 자기인식.

지금의 내가 버려야 할 것들을 찾는 자기검열.

이를 통해 깨부수어야 할 자기파괴.

파괴된 것을 없애버리는 자기살해.

치열했던 그 시간을 이겨낸 자기극복.

비워진 공간을 새롭게 채우자 다짐하는 자기배양.

배양된 씨앗에 싹을 틔우려는 지난한 정의 자기정복.

모든 과정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나를 이끌 자기암시.

그리고,

드디어 허물을 벗고 깨끗해진 자기정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일정 기간 세워두고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고귀한 자아, 초월된 자아, 크나큰 자아, 내면의 자아와 만나는 시간은 결코 정체가 아니다. 나로써 다시 세상으로 떠오를 깊은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자신이 아는 자신보다 더 크게 자신을 키워내어 ’세상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세상의 질문에 지속적으로 답을 구게 한다. 이러한 성찰적 질문에 모든 감각을 곧추세우고 이제는 자기 자신만을 향했던 시선이 타인과 세상으로 확장되고 증폭되면서 진정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매기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고 따르게 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사명‘, ’소명‘이 가슴 속에서 꿈틀대기 시작하면 비로소 우리는 ’깨닫게‘ 된다. '나'라는 작은, 미약한 존재가 ’세상의 쓰임‘에 반드시 필요한, 우주의 조화를 위해 없어서는 안될, 하나의 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주1>운명의 법칙, 뤼디거달케, 송소민 역, 2012, 블루엘리펀트

주2>쇼펜하우어 철학에세이, 쇼펜하우어, 김욱 역, 2005, 지훈

주3>키케로인생론, 키케로, 김성숙 역, 2009,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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