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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Sep 23. 2023

골통의 설사제 덕을
톡톡히 본 것이구요

나는 나를 키웁니다. -  마인드리셋 9


골통의 설사제 덕을 톡톡히 본 것이구요


모든 일을 그대로 좀 되어가게 놓아두자. 

벼룩과 두더지를 보살펴 주는 자연의 질서는 벼룩이나 두더지 같이 자연이 자기들을 지배하는 대로 두는 참을성을 가진 인간들도 역시 보살펴 준다. 우리는 아무리 이러저러하며 고함을 질러봐도 목이나 쉴 뿐이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기는 못한다. 그것은 숭고하고 무자비한 질서다.      


우리가 공포를 품고 절망하면 대자연에게 짜증을 내기해서 우리를 도와주도록 청해오기는 커녕 우리의 구원을 지연시키게 한다. 그는 건강뿐 아니라 병에도 제가 할 길을 가게 할 의무를 진다. 그는 한편의 정이 쏠려 마음을 타락시키고 다른 편에 권익을 해야 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는 질서가 무질서에 빠진다.      


순종하자 맹세코 순종하자!

대자연은 순종하는 자들을 인도한다.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자연이 그들의 광증과 의학을 두루 뭉쳐서 잡아 끌어간다. 그들의 골통을 훑어낼 설사제를. 그들의 뱃속을 훑어 내는데 쓰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골통의 설사제.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다. 내 뱃속을 훑어내는 것보다 내 머리통에 들어있는 오물을 쓸어내는 설사제가 훨씬 더 필요하고 낫다는 몽테뉴의 말에 박장대소를 보내면서도 어찌 그리 수긍이 가든지...대자연의 법칙에, 그저 흘러가는대로 흘러가보는 것에 순종하라고 나에게 다짐을 받으려는 몽테뉴의 호흡이 느껴지는 듯해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아주 오래 멈췄었다. 


왜 나는 나를 이리 저리 뒤집고 어지르고 그러다 정신차리려 또 애쓰고 왜 그러는지... 그냥 가만히 냅두면 알아서 제자리로 갈 것인데 왜 나를 이리도 괴롭히는지.... 세상은 그저 자연의 흐름대로 갈 길 가는데, 세상 속의 모든 일들도 그저 그렇게 갈길 가는데 내가 뭐라고 자꾸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하고 여긴 이렇게 저긴 저렇게 나는 이러니 너는 이래야 한다고 자꾸만 재단, 재건, 재촉을 하는지... 내 촐싹맞기 그지없는 정신을 정신차리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골통의 설사제를 쓰는 것이라면 양껏 주입시켜 쫙 빼내고 싶었다.      


지금까지 마인드리셋 1~8까지 거론한 그 지진한 과정을 거치면서 몽테뉴의 골통의 설사제를 접하는 순간. 어찌나 허무하든지...그런데 골통을 훓어내 줄 설사제는 도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잠? 여행? 게임? 술? 

뭐 하나도 구미에 당기는 게 없다. 잠은 4~5시간만 자면 누워있는 게 고역이고 여행? 이건 정말 내키지 않고 게임은 테트리스와 보글보글말고는 해본 적도 없으며 술은 일단 마시고 어지러운 게 너무 싫은지 몇 잔 마시면 몸이 거부한다. 무엇에 중독되면 내 골통의 오물을 제거해버릴 수 있을까? 이를 찾는 자체가 고역이었다. 그래도 찾고 싶었는데 결국 내 골통의 설사제는 특별하지도 않은 가까이 있는 책.이었다. 누구한테 된통 뒤통수 한 대를 세게 맞는다고 오물이 줄줄 흘러내릴 것이 아니기에 일단 책에 매달려 봤다.

(혹시 획기적인 무언가를 아는 분이 계시면 꼭 연락주십시오)     


벤자민 프랭클린을 만나 내게 부족한 기본자세들을 체크하고

소로우를 만나 소신있는 자연주의적 삶을 꿈꾸고

에머슨을 만나 나만의 철학을 배워, 채워, 세워 나가기로 작정해보고

세네카를 만나 인생이란 무엇인지 호된 가르침에 찔끔 눈물도 흘려보고

릴케를 만나 사유가 얼마나 깊고 아름답고 고통스러운지 느끼고

나폴레온 힐을 만나 진짜 ‘부’란 것이 어떤 것인지 가늠하며

귀곡자를 만나 그의 처세술에 혀를 내둘렀고

올더스 헉슬리를 만나 이런 방대한 지식을 하나의 궤로 꿰뚫을 수도 있구나 부러워하고

루크레티우스를 만나 더 이상 파헤칠 수 없는 가장 바닥의 원리도 배우고

에피쿠로스를 만나 진정한 쾌락이 뭔지 가슴으로 받아들였고

알랭드 보통을 만나 그의 사상보다 그의 필력에 매료되어 따라해 보기도 하고

나심탈레브를 만나 나의 학문은 아직 갈길이 멀었다며 자조도 하고

파올로코엘뇨를 만나 이외수와 함께 소설가인지 사상가인지 철학자인지 그 경지에 놀랐고

네빌고다드와 월레스와틀스, 린그라본을 만나 시크릿의 맹점을 채워넣고

제임스앨런을 만나 어느 시대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우주의 한 점으로 강력한 에너지를 보낼 수 있음을 알았고

데카르트를 만나 신의 존재에 대한 논리에 바로 두 손들며 당신에게 내 정신을 저당잡혀도 좋다 선언했고

스웨덴 보그를 만나 사후세계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고

스캇펙을 만나 진짜 사랑이 뭔지, 나의 사랑의 허술함을 들여다봤고

리차드파인만을 만나 진정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오그만디노를 만나 순수했던 여고시절 떠올렸던 별이름을 다시 불러냈고

톨스토이와 괴테를 만나 문학에 빠진 철학을 건져보며 서사의 경이로움을 체감했고

칼릴지브란, 예이츠, 세익스피어, 블레이크,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나의 소멸되어가는 감성을 찾으려 애썼고.

몽테뉴를 만나 꼭 이런 삶을 살아야지 꿈이 생겼고

발타자르그라시안을 만나 니체가 받은 감동이 이런 것인가? 잠깐 니체생각도 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만나 채찍과 당근을 이리 호되게 주는 스승이 생긴 것에 감사했다.    

 

훓어내고 그 자리를 다른 지식과 영감으로 채워나가는 반복된 시간들을 거치며 이 모든 과정이 내 골통에 꽈리틀고 앉아있는 낡은 인식들, 굳어져가는 관념들, 굳게 닫힌 채 변할 생각조차 없는 사고덩어리들을 쏵 쓸어가주길 바랬다. 그 녀석들로 인해 덩달아 이유없이 뛰는 심장과 불안에 휩싸인 감정과 무뎌진 감각까지 되살아나주길 바랬다. 


어느정도 그리 된 것도 같다. 어떻게 아냐면, 내가 안하던 짓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가령, 안하던 말도 하고, 화가 나야 마땅했던 사안에 대해 화도 안나고 못볼 꼴을 보고도 그냥 넘기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 이해도 가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뱃속의 오물과 함께 골통의 오물도 함께 제거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숫자만 채우는 삶이 아닌 속이 영글도록 시간속에 나를 푹... 익혀가는 그런 과정...하던 말을 삼킬 줄 알아야 하고 안하던 말도 내뱉을 줄 알아야 하고 나서서 욕도 먹어줘야 하고 먹던 욕은 그만 먹어야 하는, 어쩌면 진짜 이랬던 내가 저리로 가는, 그렇게 변화하면서 이쪽도 저쪽도 담을 수 있도록 시간 속에 나를 녹여가는 그런 작업..... 그것을 인격, 품격이라 부른다면 그런 것이겠지만 나에게 인간으로서의 격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하니 아직 인격이라 품격이라 불릴만한 요소들이 갖춰졌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나를 키워나가는 수밖에...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게 냅두고

머무르는 것은 머무르게 냅두고

걷히길 바라지 말고 내가 거둬내고

덮히길 바라지 말고 내가 잊어버리면 그만인거다.  

   

50에 나는 나를 키운다.      


https://brunch.co.kr/@fd2810bf17474ff/260    

 

https://brunch.co.kr/@fd2810bf17474ff/628     

https://www.youtube.com/watch?v=3qvlsKRrj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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