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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2시간, 1일 1편의 글에
목숨 걸어보라 했지요

나는 나를 키웁니다. - 행동리셋 7

by 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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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2시간, 1일 1편의 글에 목숨 걸어보라 했지요


제목이 너무 비장하다. 목숨을 걸기까지... 걸것까지 없지 않나?

그런데.

생명이란.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두 문장에 지금 나는 눈물이 터졌다. ‘살아있는 나’로, 아니, 나를 다시 살리기 위해 수년간 얼마나 치열했는지 하늘은 날 지켜봤겠지 싶어서. 그리고 ‘내가 아무리 무식해도 널 보면 글로 일 낼 사람이란 거 믿어진다.’ 라고 말해준 강렬한 누군가의 한마디가 다시금 떠올라서인지도)


‘살아 있다.’는 것은 단지 숨이 붙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내 안에 끊임없이 도는 피의 가열찬 돌진으로 심장은 터질 듯이 자신을 부풀리고 그 펌핑이 너무 거세어 나의 저기 끝 새끼발가락까지 피가 가속으로 달려 주는, 그렇게 나를 자극하는 보이지 않고 정체모를 무언가가 나의 피를 돌게 하는 것. 그것이 살아있음이다.

격렬한 피의 행진으로 나의 장기와 근육까지 머물던 자리를 내어주며 형체없는 무한의 에너지가 피부를 뚫고 몽글거리는 액체로 모습을 드러내는 그것이 살아있음이다.

축축하게 젖은 이마와 겨드랑이, 턱과 목 사이의 끈적임이 내 손끝의 동작을 멈추지 못하게 밀어붙이는 정체가 명치 사이를 중심으로 모든 세포 곳곳에 심겨 있음을 알고 사는 것이 살아있음이다.


몰랐다. 내가 글 쓰는 것을 이리도 탐하는지를.

몰랐다. 내가 인간을 파헤치는 탐구에 이리도 갈구하는지를.

몰랐다. 내가 성현들의 말씀에 이렇게까지 무릎을 꿇어버릴지를.

몰랐다. 내가 나를 가장 몰랐다.


내가 나를 알고자 하는 아주 작은 욕심으로 1년여 전부터 시작했던 보잘것없던 글쓰기는 지금 나를 여기에 세워두었다. 이유도 명분도 의무도 없었던, 그저 책을 읽고 배운 것을 하나씩 나열해보는 것으로 시작했었던 글쓰기는 나의 생각이 묻혀지며 어떤 때엔 억지로 짜내기도, 어떤 때엔 글에 밀려 내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기도 하는 신비한 체험을 통해 나의 정신세계를 ‘탐구’와 ‘사유’로 채워나갔다. 책을 읽고 내게로 진입한 정의, 개념, 사고들이 기존에 자리했던 인식과 부딪히는 파열은 나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손끝으로 쏟아졌고 나의 정신은 파열을 맞이하는 순간 이내 소멸과 생성으로 정리되니. 이는 혼란스러웠지만 새로운 생성을 위한 진통이란 것을 감지한 어떤 지점에서부터 나는 즐기고 있었다.


나에게는 놀이터가 만들어졌고 내 인생에 이 놀이터 하나 갖는 것만으로도 감사가 이어지며 이왕이면 더 재미나고 안전하고 누군가가 놀러 오더라도 유용한 놀이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나에게 책과 글은 내 인생의 놀이터다. 놀이터에서 노니 살아있음을 느낄 수밖에. 단지 시소가, 미끄럼틀이 재미나서일까. 아니다. 시소가 나를 하늘 높이 튕길 때 내 심장이 튀어나올 듯 환호하고 미끄럼틀에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며 내 무의식이 깨지는 감탄에 놀이터가 재미난 것이다. 나에게 책과 글은 단순한 언어의 나열이나 검증, 서사를 너머 나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가 땅속으로까지 쳐박아 버리는, ‘인생 한번 신나게 놀아봐라, 이 놀이터야말로 네게 제격이다.’ 라고 던져준 신의 선물인 것이다.


늘 그렇듯 시작은 미약했다. 매일 1~2시간만이라도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렇게 엉성한 글들이 하나씩 발행이 되면서 좀 더 잘 쓰고 싶은 나의 의지와 네가 매일 글을 써서 뭐하냐고 날 유혹하는 악마의 의지가 강하게 부딪히던 어느 날, 나는 나를 구속하기로 했다.

진정한 자유란 구속이, 진정한 권리란 책임의 의무가 선제(先提)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난 나를 당분간 구속시키기로 결단했었다.

결심이야 쉽고 결정이야 하면 되지만 결단(決斷)은 무언가를 끊어내지(斷) 않고는 어려운 것이라 구속을 결단한 것이다.


구속의 가장 타당한 이유를 들자면, 1일 1~2시간 글쓰기로 대충 1편의 글을 쓰는 것은 읽은 책을 정리하거나 일기나 기록 수준의 글쓰기를 나의 주장, 의견, 견해, 나아가 이념, 이론, 담론, 사상이 조금씩 만들어지길 바라는 수준까지 나를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거창한 이유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당시엔 그저 막막했지만 남이 쓴 책을 기록하거나, 거기에 일기형식의 짧은 견해 정도의 기록글에 그치는 나를 나는 성장시키고 싶다는 막연한 욕구가 내 안에서 소리치고 있었던 것을 나는 민감하게 감지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에너지로 소통한다더니 욕구의 에너지는 세상의 에너지와 소통이라도 한 듯 우연히 브런치라는 난생 처음 접하는 플랫폼을 가까운 지인에게 소개받고 (정말 아무런 생각없이) 가입했던 계기가 4달 뒤(4달 동안 가입했던 사실을 잊어버렸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다시 소개받고는 ‘어? 내가 작가가 되어 있네!’로 이어진, 신기한 우연에, 이런 우연은 반드시 어떤 신호라는 나의 믿음으로 인해 즉시 나는 또 결단해 버렸다.

‘매일 새벽 5시 발행을 해야겠다!’라고.


그렇게 13개월이 지났고 지금까지 2~3번 정도 시간을 지키지 못했지만 지금 새벽 5시 발행은 나의 습관이 되어 있다. 독자가 많고 적고, 누군가가 진심으로 읽어주고 말고를 떠나 나를 강제구속시키는 것에는 적합했고 그렇게 쌓인 글들이 이제 제법 양이 채워졌다.


양의 축적은 질적승화를 가져온다는데 나의 글쓰기 실력이 어느 정도 향상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쓰기만 할 뿐. 독자들의 반응에 감사만 드릴 뿐.

글실력을 떠나 나의 사상은 어느 정도 정립되어 가는지, 맥을 잡아 가는지 이 또한 가늠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쏟아낼 뿐, 글이 세상에 나오면 세상이 판단하겠지 맡겨둘 뿐.

사상의 정립을 떠나 나의 삶은 궤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이 역시 나는 모른다.

미래는 미지인지라 미지의 세계로 매일 진입하는 시도가 존재할 뿐 나의 궤는 나의 인생의 끝에서 돌아보면 알겠지.

시도(試圖)란 전체 그림(圖)을 위한 진입에 불과하니까.

나의 하루는 미래로의 진입과 개입인 것이니까.


1일 1~2시간 엉덩이붙이고 써보자는 구속은 그저 취미정도였으나 매일 새벽 5시 발행을 위한 에세이1편을 쓰는 것은 취미를 넘어 강제였으며 일이 아닌데 일이 되어버린, 나의 에너지와 일상을 한쪽으로 집중시키지 않고는 해낼 수 없는 시도였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주제를 잡지못해 쩔쩔매고, 어떤 날은 6-7시간을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헤매기도 한, 솜씨없는 내가 솜씨가 발휘될 리 만무하니 그저 아랑곳없이 쓰는 행위의 반복, 그것만이라도 해내는 것에서 나는 만족을 키워나갔다. 우선적으로 값을 치르고 그것을 취하라는, 그렇다면 우리의 행위는 자연법칙에 의해 우리의 의지 이상으로 제어되고 특색이 가해진다에머슨(주석참조)의 말을 믿으며 그냥 썼다. 그냥. 그냥.


하지만, 지금은 일이 아니라 재미가 되었다. 사실 요즘엔 재밌다 재밌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재미가 되는 과정은 어떤 작업에서나 누구에게서나 같은 단계를 거친다. 시작하고 시도하고 실수, 실패하고 수많은 자기감정과의 전투와 휴전을 반복하면서 숙련을 너머 찰나의 감미로움을 맞본 자가 ‘재미’라는 단어를 허용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고 나에게 글이 숙련되었다는 표현은 조금 과하지만 ‘글쓰는 행위’는 숙련된 듯하다.

창조된 글은 내가 판단하지 못한다.

세상이 판단할 몫이니 나는 나의 숙련을 더 연마하여

지금 느끼는 감미(甘味)가 음미(吟味)가 되고 음미가 누군가에게 찬미(讚美)가 되길 염원할 뿐.

나에게서 죽을 때까지 내 글을 찬미할 리는 없을 것이다.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 글을 세상에 내놓고 나면 곧바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을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이자 진리 하나 믿고 가련다.

작은 행위의 축적은 가공할 위력을 지닌다는 사실.

양의 누적과 축적은 질적 승화인 화학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의 증상이라는 진리.

이유없이 벌어지는 일은 없으며 이유는 반드시 결과로 증명된다는 진리.

나는 그저 행할 뿐, 창조의 결과는 세상이 허락한 그 순간 드러난다는 진리.


50의 나는 오늘도 나를 키운다.


주> 랄프왈도에머슨, 에머슨수상록, 이창배역, 1984, 서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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