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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04. 2023

작당(作黨)
- 브런치작가들의 첫모임!




지금도 신기하다. 저 사진속의 가장 나이많고 주책인 내가 있다. 어쩌다 끼게 되었고 어쩌다 저기 앉았고 어쩌다 얘기했고 어쩌다 듣게 되었고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인생이 뭐 다 어쩌다 거기 그렇게 서 있는 것이지... '어쩌다'... 살면서 특별한 계기나 계획, 의도없이 이뤄지는 작당(作黨, 무리를 이룸)에 우연적 필연성의 의미를 부여하는 나이기에 이들과 수작(酬酌, 술잔을 주고받음)한 시간이 허공으로 날아가 허상이 되지 않고 진정한 수작(秀作, 우수한 작품)이 되도록 진심으로 이들을 대하며 즐겼다.


아주 달랐다. 나에게 플랫폼이란 그저 4차혁명시대의 대표적인 키워드일 뿐, 나에게 브런치란 그저 어느날 또 '어쩌다' 내게 온 글쓰는 연마장이었는데 다른 이들에게 브런치플랫폼이란 아주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글쓰는' 이들의 토대가 될만한 장비였다. 기술과 관계의 구체와 추상을 적절하게 믹스한 도구였다. (충격까지는 아니었지만) 새로운 대화에 끼어있는 내가 따라가기 버거웠지만 수학문제인들 잘 따라갔었냐? 그런 적 없으니 이것도 뭐, 그냥 그렇게 묻어가는 거지.


일정부분 복잡했다. 단순한 나의 일상에 어느 날 우연히 받은 '브런치 작가모임' 메일에 감각이 그저 시키는대로 응해 모임에 참석한 나로서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거의 모임을 단절하고 있는 나에게 모임을, 그것도 낯선 이들의 모임) 내키든 내키지 않든 그런 기분과는 무관하게 그저 갔고 그저 즐거웠고 그저 단순한 일상의 일탈정도로 여기려 했지만 일탈은 항상 소화는 버거워도 체하지는 않는, 낯설지만 친근한 모순의 경험이다.


상당한 커리어들이었다. 스펙이라면 나도 중간이상은 하지만 스펙으로 경쟁하는 무모함을 접은 지 오래인 나에게 이들의 커리어들은 '그런데 왜 글을 쓰지?'라는 의문을 충분히 불러일으켰지만 '아! 그래서 글을 쓰는구나!'에 대해선 충분한 이해가 부족한 채로 헤어졌다. 여하튼, 글을 좋아하고 글로 뭔 일이라도 내려는 이들이 모인 것이라면 좋겠다. 

바란다면, 

진정 자신의 글을 쓰는 이들이었으면 좋겠다...

물질의 도구로서가 아닌 창조의 도구로서 글을 쓰는 이들이면.. 좋겠다...

내 소원 가운데 하나인 평생 사유의 길을 함께 할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였으면 좋겠다...

'내가 글을 쓰는' 이 아닌 '글이 나를 통해 나오는' 이들이면 좋겠다...


미쳤다는 소리를 또 들었다. 내가 젤 좋아하는 소리다. 미치셨군요! 라는 말. 또라이라는 말. 

하나를 하더라도 그 '하나'를 빼고는 모조리 제거 또는 단절부터 먼저 해버리고 하나로서 결과까지 가는 나의 성향(이를 성향이라고 말하니 다소 가볍게 들리지만) 탓인지 아직 '글을 쓴다는 것'에서도 집착과 강박이 여전한 나는 미숙한 글실력으로 인해 오늘도 매순간 고통스러웠지만 이 고통은 이미 내 안에 터를 잡은 상태라 아프거나 괴롭거나 밉지는 않다. 그저 할일을 못해낸, 세상이 원하는데 주지 못한, 그런 빚진 느낌으로 하루를 보내면서 집필중인 (나에게 다소 버거운) 무게감있는 글은 더 양이 채워져야 나오려나.. 싶어 나는 글을 기다려주기로 하고 오늘은 새로운 글을 궁금해하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다소 너그러워진 나를 만났다. 


집에 돌아와 자정이 넘은 이 시간에 쓰는 지금 이 글이 오늘 세상이 나에게 내놓으라 명하는 글인가보다. 세상이 내게 바라는 것을 감히 내 어찌 알겠냐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연에서 이리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니 이리 작동되어지는 대로 따르는 것이 내가 지금 해야 할 역할인가보다.

'미친'에 어울리게 본능대로 움직이는 내가 나는 참 좋다.

따르는, 흘러가는, 그렇게 흐르다 넘쳐 어딘가 스며들 때 감사하는 존재가 되어가는 내가 참 좋다.


아마도 내가 경력이 젤 짧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1년을 조금 넘긴 브런치작가의 기간. 오늘 새삼스레 들여다봤는데 14개월간 매일 새벽 5시 발행을 하면서 1일 2개의 글을 쓴 적도 있었더라. 지금까지 써온 글수가 633개였다. 숫자에 둔한 나는 별감각이 없지만 생각해보니 놀라지 않는 내가 놀라운 거지, 이는 조금 놀라도 될만한 숫자였다. 지독하고 치열했구나. 그런데 어떤 일이 지독하고 치열하며 집요한 구간없이 원하는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박사논문을 쓸 때도, 연구주제를 파헤칠 때도, 책을 쓸때도, 더 과거로 돌아가 사업을 할 때도, 방송일을 할 때도, 아이를 키울 때도, 어떤 길을 가더라도 집요하고 치열한 구간으로 인해 양(量)이 쌓이고 그 양이 충족될 즈음에 질(質)로 승화된다. 화학변화는 물리적 변화를 기반으로 한다. 아직 나는 '글'에 있어서만큼은 양이 부족한 물리적변화 중이라 나에게 매일 글쓰기는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루틴이다. 


왜? 진정 '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사명대로 가는 인생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증명해내는 것이니까. 

왜? 진정 '되고 싶은' 바은 닮아도 좋을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 

왜? 진정 '닿고 싶은' 곳은 강의해도 괜찮고 글로 자신을 드러내도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 

그래서! 아직, 나에게 글은 '해야 할' 의무이자 숙제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나에게 주어지는 어떤 현상에라도 나를 투자한다. 

나는 나에게 주어지는 어떤 사태에라도 나를 이해시킨다.

나는 나에게 주어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원리를 따른다.

나는 나에게 주어지는 어떤 예측이라도 감히 판단하지 않는다.

나는 나에게 주어지는 어떤 감각이라도 그 자극을 따른다.


모든 순간은 이유가 있어 내게로 진입된, 어떤 존재에 의해 나에게 충족이유를 안고 온 것이니 

나는 나를 그대로 드러내어 그대로 보여주고 보여지는 현상조차 그대로 수용하되 인정은 차후의 몫으로 돌리도록 한다. 나아가 모든 순간의 이유가 어떤 결과로 증명될 지의 여부는 내 몫이 아니다. 그리 가면 그리 가는 걸로, 저리 가면 저리 가는 걸로, 나는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는 '지금의 나'가 나를 소홀히 여기지 않도록 매순간 진심을 다하고 아울러 타인에게도 마찬가지. 내가 귀한 사람이 되면 귀한 사람이 내게로 온다.  


마주하면 드러나고

드러나면 보여지고

보여지면 맺어진다.

맺어지면 흔들리고 

흔들리면 끊어지고

끊어지면 다시 재연결되니

이 과정에 속하든 속하지 않든

이조차도 내 몫이 아닐 것이다.

나는 흘러가는대로 나의 중심을 따라 

오는 이 반갑게, 가는 이 미련두지 말고

그리 흐르도록 나를 충분히 열어두면 되는 것이다.


하루의 즙까지 모두 내어 나를 채우고 비우는 하루=0으로 만드는 일상.

내가 원하는 하루를 오늘도 만들어간 것으로서 나는 나의 오늘을 살아냈다.

4~5년만의 일탈이었다. 

어제 발행한 글에서처럼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를 진입시켰다.


오늘 모임의 대화는 수다이기도, 건설이기도, 창조이기도 했다.

어떤 난입과 진통을 겪을지, 

어떤 분출과 폭발을 쏟아낼 지 

인간의 머리로는 결코 알 수 없는 미래를 앞에 두고 있지만

확실하고 분명한 진리는

화산이 폭발하기 위해선 끓어오르는 오랜 진통이 필요하다는 사실.


이 과정에서 

있어야 할 자, 세워야 할 자, 떠나야 할 자, 흡수되어야 할 자, 

이 모두가 흘러가는대로 자유로워야 하리라. 

모든 흐름이 선(善)으로 향하여 덕(德)을 쌓는 가치(virtue)있는 생성이라면

어떤 생산에도 나는 모든 것을 내어주리라

이를 위해 오늘의 작당에서 내가 쏟은 진심은 앞으로 결과되어질 시작의 충족이유로서 괜찮았다 .



지담북살롱 : 네이버 카페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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