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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08. 2023

새벽독서는 내 인생의 혁명이다!

새벽독서 1800일을 향하며

'보여지는 나'와 '내가 아는 나'의 Gap


2014년경, 당시 나의 삶은 '보여지는 나'와 '내가 아는 나'의 거대한 갭(gap) 으로 나는 심하게 괴로웠었다. 그렇게 2017년경까지 3년여... 내 삶이 내 삶이 아닌 듯하고 내 삶이 무엇인지 어디 있는지 찾고 싶었고 찾아야겠다는 방향으로 나는 이동되었다. 그렇게 많은 일, 모임, 관계들에 있어 나는 자발적 단절을 선언하고 지금까지 나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준 고독에 의지하기로 했다. 


이후, 나와 나의 삶의 변화가 시급하다 느껴진 2019년 2월 16일, 느닷없이 시작한 새벽 4시 기상, 이어진 2시간 이상의 독서는 지금까지 1500여일을 이어가며 나의 고립을 새로운 창조로 이끌어준 내 인생의 혁명이 되었다.


몽테뉴 '에세, 나는 무엇을 아는가'


도저히 이대로는 안되겠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에게도 그래야 할 것 같은 찰나가 있었던 것이다.

그저 '도저히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던 하루하루들.

답답함을 너머 죽든가 변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절대절명의 위기처럼 느껴지던 그런 날들.


남들처럼 아이들키우며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열심히 - 나의 부지런함은 열심히를 너머 치열한 정도다 -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일상의 틈으로 정신적으로, 환경적으로, 거의 모든 생활에서 '이건 내 삶이 아닌데...' 라는 나와 나의 삶에 대한 의심과 부정이 내 정신을 점령해버린 그 시기, 남들에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극.단.적.이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그런 시도가 바로 새벽독서였다.


할까 말까? 하면

일단 해! 움직이기부터 하는 내 성격은 나를 심하게 몰아부쳤다.

1주일에 3번만 하다가 서서히 늘여야지.. 뭐 이런 식이 아니었다.

시작! 과 동시에 매일 해야 하고 안하면 무지하게 나를 다그치는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당연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적갈등에 시달리고 

수시로 실패하면서 '나는 안되나봐' 했지만 

'하루만 쉬고!'는 결코 용납이 안되는 하루하루의 연속.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오늘 실패하더라도 그냥 내일 또 하는, 그 반복이 습관으로 이어졌다.

습관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반복'밖에 없다. 


여하튼 처음 몇달은 엉망진창이었다.
살던 방식대로 잡혀 있던 정신의 질서도 무너지고

늘 달고 살던 위염은 다시 도지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던 생활패턴을 새벽기상으로 바꿈으로 인해 낮엔 닭처럼 졸곤 하는,

아무튼 전체적으로 삶 자체가 뒤죽박죽이었지만


나는 그냥 믿어버렸다.

새벽과 독서가 만나면 창조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삶을, 나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새로움, 즉 창조없인 불가능하니!

믿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자연의 흐름대로라면 

혼란은 정리로 가는 과정이니 

이왕 혼란스럽게 어지러워진 거 제대로 흩어버리자! 라고.

어쩌면 더더더더 날 극단으로 몰아쳤던 것도 같다.




새벽 4시 기상, 그리고 새벽독서


부끄럽게도 새벽 4시 기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시 나의 평균 기상시간은 7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무진장 커다란 결단을 요구하는 행동이었지만

그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새벽 4시기상 후 강행한 '독서'였다. 지독했다.


하지만,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새벽기상과 독서.

내가 '지독한 독서'라고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한다고 판단한' 책들을 읽기로 작정기 때문이다.

잘해서 계속 하고 싶은 국어가 아닌, 하기 싫은데 못하기까지 하는 수학부터 해야 하는, 그렇게 나를 몰아갔던 것이다.   


소설이나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책 좀 읽네' -지적허영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그저 내 만족으로의 독서수준- 로 스스로 자족하던 평범한 중년아줌마의 지성에 엄청난 지식을 쓰나미처럼 집어 넣었으니 양심고백을 하자면 읽는 책마다 반절은 모르고 그냥 양만 채우기 일쑤였던 것 같다. 


다행이었던 건 당시에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양이 쌓여 축적되어야만 질적인 승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물리적 한계를 너머서야 화학적 변화가 수반된다는 사실을.

빈 곳을 채워야만 기존의 것과 섞여 흘러넘치고, 그 넘치는 것들을 통해 나의 변화가 용인된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 지금 여긴 어디? 이건 뭔말?

그 동안의 일상은 당연히 무너졌고 

지적한계에서 번번히 좌절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고 속삭이는 내 속의 악마와 수시로 싸우고...

여하튼 시도 때도 없이 졸고 대화도 잘 못하고 에너지가 바닥나던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분명한 것은 

내 인생 시나리오에서 결코 각색되어서도 편집되어서도 안되는 중요한 하이라이트가 바로 이 기간이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시기 지나치게 살.아.있.었.고. 

승격된 에너지의 레벨과 여파는 지금까지 나에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니까.



나는 정리되었다!


시작은 엉망이었지만 '원하는 나'로 발길을 돌린지

4년, 1500여일이 지나가는 지금!


나는!

정리되었다.


정신도, 신체도, 지력도, 경제력도, 관계력도, 

내 삶을 구성하는 거의 대부분이 정리되었다. 

지금 나는 스스로가 기특하다고 여겨지는 중이다.

나라는 사람이 귀하고 소중하다고 느껴져 소홀히 다루지 않는 중이다.


'원하는 나'를 위한

뚜렷한 목표가 정해지고

목표에 의해 우선순위가 정리되고

이에 따라 계획된 일상에는 군더더기가 없으며(말 그대로 단순 그 자체)

내 정신은 24시간 살아 있다.

신체? 아줌마 뱃살 팔뚝살 빼고는 나름 괜찮다. 


새벽독서가 인류를 구하는 엄청난 혁명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나의 삶'을 바라보도록 시선을 전환시켜준

나와 나의 삶이 조우하도록 삶이 나를 보듬어준

인생길에 만난 대지진이자 

삶의 허리에 등장한 대혁명인 것만은 분명하다.


새벽독서의 반복은 

나의 지성을 훈련시켜 지력(知力, 지식의 힘)을 지력(智力, 이해의 힘)으로 승격시켰고

나의 정신을 재건하여 인식과 의식, 이성과 지성을 정돈시켰으며

나의 신체를 정신과 연동시켜 행(行)의 시기와 강인함을 연마시키면서

나의 감각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여 감정을 다스리게 하니

새벽독서는 

내 인생의 궤도(軌道)에 있어 가장 중심맥(脈)이 되어준 혁명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은 없다.  


새벽에 만난 책속의 저자들은

'김주원'이란 정체를 알게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쓰여야 할지, 그러기 위해 어떤 관점으로 무엇을 얼마나 바라봐야 할지, 나의 흐릿했던 시선을 시야로 확대시켰고 부지런하기만 했던 다리의 보폭을 조절할 수 있게 했으며 약했던 정신에 단단한 질서를 만들어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는 인간으로 나를 이끌었다. 


때로, 아니 자주 나약한 나와 마주쳤지만 

해보라고, 할 수 있다고, 알려준대로만 하면 된다고 나를 채근해 주었고 

신기할 정도록 딱! 그 때 필요한 문장을 눈 앞에 들이밀었으며

가끔 '이제 그만할까?' 나태와 오만이 유혹할 때에도 

엉덩이를 팡팡 두들겨 맞는 문장들로 나를 혼쭐내곤 했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 비춰주는 태양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어 나는 매일 태양마중을 나간다.

그리고 대화한다. 

오늘도 고맙다고, 

나 잘해보겠다고, 

당신의 기운 덕으로 오늘 하루도 멋질 것이라고.


태양이 비치기 전과 후, 세상이 창조되는 모든 기운과

수천, 수백년간 수많은 이들의 영혼을 움직였던 죽은 자들과의 만남

나는 이렇게 1500여일의 새벽을 보낸 것이다.


이제는 안다. 그리고 느낀다. 믿는다.

내 능력말고 세상의 손을 잡고 가는 위력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보호를 받고 있는 위력을..

단순한 일상, 단 하나의 집중이 지닌 가공할만한 위력을...

우주가 내 자리를 정해놓고 그리로 이끌기 위해 내민 손을 나는 잡고 있는 것이다.



멈출 수 없고, 멈춰서도 안되는 이유


새벽독서 2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읽게 된 '미치호로위츠'가 '윤리적 가치', '삶의 성공'을 외치며 제발 좀 이렇게 해봐! 라고 적은 그의 책 일부다. 이 글을 읽고 쾌재를 부르며 카페에 글을 썼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미츠호로위츠 '미라클클럽'

https://cafe.naver.com/joowonw/4170


호로위츠는 도덕경부터 소로우, 에머슨, 아우렐리우스, 빅터프랭클, 나폴레온힐을 읽고

9개월간 미친듯이 꼬박 열정을 쏟으란다.


'오마이갓! 나는 다 읽었는데!!!'


얼마나 기쁘던지!!!

얼마나 뿌듯하던지!!!


호로위츠가 거론한 책들만이 아니라 

학자 : 제레드다이아몬드, 유발하라리, 니콜라스나심탈레브, 말콤글래드웰, 마우리기옌, 마이클샌들, 스캇펙, 린다그랜튼, 다니엘핑크, 조던피터슨, 리차드파인만, 샤피바칼 등등등 /  

철학가 : 애덤스미스, 세네카, 몽테뉴, 소크라테스, 발타자르그라시안, 쇼펜하우어, 니체, 랄프왈도에머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한나아렌트, 아미엘, 키케로, 루소, 소크라테스, 플라톤, 루크레티우스, 에피쿠로스, 질 들뢰즈, 공자, 노자, 귀곡자 등등등/ 

사상가이자 성공학자 : 찰스해낼, 린그라본, 그렉브레이든, 제인로버츠, 앤서니로빈슨, 짐로저스, 제임스알랜, 월러스워틀스, 나폴레온힐, O.S.마딘, 하브에커, 등등등/ 

문학가이자 사상가 : 올더스헉슬리, 릴케, 알랭드보통, 파올료코엘뇨, 괴테, 헨리데이빗소로우, 릴케, 오그만디노, 톨스토이, 세익스피어, 윌리엄블레이크 등등등/

영성학자이자 양성학자 : 뤼디거달케, 빅터프랭클, 파올로코엘뇨, 데이빗갓맨, 그렉브레이든, 네빌고다드, 스웨덴보그 등등등/

모두 거론할 수 없지만 '지독한 새벽독서' 선언 이전엔 손도 가지 않고 눈길도 주지 않고 정신적으로는 외면했던 책들과 나는 늘 함께였다. (이 모든 목록은 체계적으로 리스트업하여 현재 독서모임에서 개인별로 컨텐츠로 진행중)


호로위츠가 말한 9개월은 물론, 4년이 넘었으니 호로위츠 말대로라면 

나는 '나의 삶을 바꿀 수 있을만큼의 아주 중요한 시간'을 4번 이상 보낸 셈이다


'책'을 읽는다고 떡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그렇게까지 안해도 되는데 왜 그러냐?'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싼다'

'뭘 더 얻으려고 그러느냐 욕심 좀 그만 내라'

'그냥 네가 하는 일이나 잘해라'


별의 별 조언으로 나의 지독한 책읽기를 안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들을 멀리 하는 것을 택하며

적어도 4년전 그 때보다 내면이 단단해진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세상의 시선에서는 이해못할 선택들을 해왔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이 요구하는 나, 세상속 인간들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정신의 부, 내면의 공간을 내가 아닌 세상이 원하는 바로 채워나가 더 큰 존재가 내게 바라는 삶의 길을 걷는 것이다. 


혼자 묵묵히 4년간 지켜낸 새벽은 나에게 귀하디 귀한 선물을 한보따리 투석했다.

4-6시 독서 후 6-7시 강의 및 토론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기 시작한 '함께 사유의 길을 가는 사람들', '14개월 전부터 시작한 글(브런치)'이 대표적이다. 이제 나의 새벽은 함께 걸어가는 이들과 동행하며 연대하고 있다. 투입된 양은 글로 세상으로 보내지고 있다. 글의 숙련도는 아직 미숙하나 이 역시 매일 새벽 5시 발행을 지켜오며 400여일을 해온터라 이렇게 1500일까지 가면 가공할 위력을 드러낼 것이라 믿는다. 온라인으로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이들, 1600명에 가까운 브런치 독자들... 나에게 사람이, 그들의 인생이... 오고 있다... 


사람과 사유와 책과 글... 

그리고 모두의 성장이 있는 삶의 길....


이를 기반으로 과거 한창 전문적으로 임했던 코칭을 새롭게 나만의 코칭으로 학계에 발표하고 직접 과학적으로 입증해냄으로써 전문 코칭을 진행하며 나아가 함께 독서한 이들에게 코치가 될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나를 해체하고 발견하고 새롭게 나의 길을 다듬어가는 길목에서 미리 계획하지 않은, 수많은 자원들이 나에게로 오는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면서, 나는 세상이 날 제대로 쓰려는 힘을 느끼며 더더욱 나를 귀하게 쓰기 위해 나는 나를 키워나가고 있다. 


내가 보낸,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보내게 될 새벽독서는 

애덤스미스의 자리(自利), 

사무엘스튜어트의 자조(自助), 

랄프왈도에머슨의 자시(自時)이다.

나부터 '제대로 된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조화'를 위한 이타이며

내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이라는 것을

성인들의 가르침을 통해, 

그리고 직접 경험을 통해 나는 알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멈출 수가 없고 멈춰서도 안된다.

충분히 채우고 흘러넘쳐 자신으로서 어딘가로 스며드는 분수같은 나.

닮아도 괜찮고 따라가도 믿을만한 존재로서의 나.

삶의 길이 증거가 되어 증명되는 인생을 보여주는 나.

그렇게 내면의 충만함이 진정한 행복임을 알게 하는,

새롭게 부여받은 하루의 첫시작,

새벽, 그리고 독서.

매일매일 창조된 하루가 선물처럼 내게 오니

나는 나를 통해 창조되어야 할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내 하루의 중심이어야겠다.



* 지담놀이터입니다. 매일 독서로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놀이터, 

  삶과 사유, 사람이 함께 하는 곳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지담북살롱 : 네이버 카페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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