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에서 데이터로
중세 시대의 권력은 토지에서 나왔다. 토지는 식량을 생산했고, 식량은 군대를 먹였으며, 군대는 더 많은 토지를 점령했다. 이 순환 구조가 봉건 권력의 본질이었다.
근대의 권력은 자본에서 나왔다. 자본은 공장을 세웠고, 공장은 상품을 생산했으며, 상품은 더 많은 자본을 창출했다. 이것이 산업 시대 권력의 본질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의 권력은 무엇에서 나오는가?
정보다.
정보는 예측을 가능하게 하고, 예측은 선점을 가능하게 하며, 선점은 통제를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플랫폼 시대 권력의 본질이다.
아마존은 당신이 무엇을 살지 예측하고, 그 상품을 미리 당신 근처의 물류센터로 옮겨놓는다. 구글은 당신이 무엇을 검색할지 예측하고, 광고주들에게 그 정보를 판다. 넷플릭스는 당신이 어떤 드라마를 좋아할지 예측하고, 그런 콘텐츠를 제작한다.
이것은 단순한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권력의 문제다.
과거에 권력자는 "나는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의 권력자는 "나는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말한다. 후자가 훨씬 더 강력하다. 왜냐하면 저항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주는데, 왜 거부하겠는가?
알고리즘이 여론을 만드는 방식
과거에는 신문사가 여론을 만들었다. 편집장이 어떤 기사를 1면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대중의 관심이 결정되었다. 이것을 "의제 설정 이론(agenda-setting theory)"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금은 알고리즘이 여론을 만든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은 당신이 다음에 볼 영상을 결정한다. 페이스북의 뉴스피드 알고리즘은 당신이 어떤 게시물을 먼저 보게 될지 결정한다. 트위터(현재의 X)의 타임라인 알고리즘은 어떤 트윗이 확산될지 결정한다.
문제는 이 알고리즘들이 진실을 우선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참여도(engagement)를 우선시한다. 클릭, 댓글, 공유, 체류 시간. 이것들이 알고리즘의 목표다.
그 결과 무엇이 일어나는가? 분노를 유발하는 콘텐츠가 확산되고, 극단적인 의견이 증폭되며, 합리적인 토론은 묻힌다. 알고리즘은 우리를 더 많이 참여시키기 위해 우리를 더 극단적으로 만든다.
이것은 의도된 것이 아니다. 단지 시스템의 작동 방식일 뿐이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국가보다 플랫폼이 더 정확히 개인을 아는 이유
정부는 당신의 주민등록번호를 알고, 당신의 주소를 알고, 당신의 납세 기록을 안다. 하지만 정부는 당신이 어제 밤 11시에 무엇을 검색했는지 모른다. 당신이 어떤 유형의 영상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당신이 친구와 나눈 메시지의 감정 톤이 어땠는지 모른다.
플랫폼은 안다.
구글은 당신의 검색 기록을 10년 넘게 저장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당신이 "좋아요"를 누른 모든 게시물을 기록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당신이 각 사진을 몇 초 동안 바라봤는지 측정하고 있다. 아마존은 당신이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삭제한 상품까지 분석하고 있다.
이 데이터들을 종합하면 무엇이 나오는가? 당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아는 프로필이 나온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페이스북 '좋아요' 300개만 분석하면 알고리즘이 당신의 배우자보다 당신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이것은 통계적 사실이다.
그리고 이 지식은 권력이다. 마케팅 권력, 정치적 권력, 사회적 권력.
당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아는 자는 당신을 설득할 수 있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자는 당신을 유혹할 수 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자는 당신을 분류하고 관리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이런 권력을 국가만 가졌다. 그것이 감시 국가의 위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민간 기업이 이 권력을 가졌다. 그리고 그들은 감시한다는 느낌조차 주지 않는다. 단지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