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못칠까봐 시험을 앞둔 날마다 엉엉 울었던 소녀의 이야기
어쩌면 나는 남들보다 더 많은 불안을 느끼고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무던히 넘어가는 것들도 나에겐 이상하게 불안하고 두근거리는 경험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갔을 때 영화 시작 전에 화재시 비상대피로를 알려주면 진짜 불이 나서 내가 죽을 것 같은 불안감, 엄마, 아빠가 내 자취방에 오다가 사고가 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 내가 놀이기구를 탔는데 고장나서 죽으면 어쩌지 하는 시덥잖은 불안함들 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앞에서 언급한 불안함은 30대인 지금도 가지고 있어서 여전히 나에겐 두근거리는 것들 이다.
이러니 나에게 있어 시험에 의한 불안함은 남들과는 다르게 불안함을 넘어서 두려움에 가까운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나도, 엄마도 영재인 줄 알았던 나
TV가 있어야할 곳에 책으로 가득찬 덕분인지 유난히도 책을 좋아했던 나는 삼국유사, 과학동아잡지, WHY 시리즈 책 등 모든 책들을 닥치는대로 읽어댔고, 그 덕분인지 여러 잡다한 상식들이 쌓여 공부를 곧잘 했다. 또 승부욕도 엄청나서 한살 위의 언니를 공부로 이겨먹으려 한 덕분인지 자연스레 영어학원에서도 내 또래들이 으레 하던 것들은 몇일만에 다 해버리고 언니보다 더 빠른 진도를 나가기도 했다. 영어대회를 나가 시에서 1등을 하기도 하고 우리 나이대의 아이들이 다하던 오르다 대회를 나가 동상을 타기도 하고 수학은 중학교 3년 동안 학원의 도움도 전혀 없이 학년당 적어도 4번씩, 총 12번의 시험내내 3점짜리 문제 딱 하나 틀린게 다였다.
#시작된 시험 불안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 넘쳐나는 승부욕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성적 때문인지 시험에 대한 불안감이 극도로 심해졌다. 아니, 사실 그 이전부터 불안은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 방침은 8시30분까지 등교였지만 나는 항상 6시 40분 경에 오는 마을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서 전교에서 1등으로 학교에 도착해 나만의 0교시 공부를 하였다. 집에 와서는 다이어트를 위해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항상 줄넘기를 2천개씩 하고 저녁을 생략하는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중학교 3학년 내내 전교 5등이내의 성적과 몸무게 10kg 감량이라는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의 성공이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되었던 것인지 이렇게 나를 몰아붙이는 방식만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에도 역시 7시 이전에 등교해 자습실에서 나만의 0교시를 하고 수업이 끝나면 야자 대신 집 근처의 독서실에서 10시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와서도 나머지 공부를 하고 1시에서 2시쯤 잠에 들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교과서, 내가 풀었던 문제집을 보면 문제 번호위에 O,X가 여러개 나열되어있는데 O는 알고 풀었을 때, X는 모르거나 헷갈릴 때 실수로 틀릴 때 하는 표시이고 O가 5개 연속 즉, 알고 푼게 연속으로 5번이 나와야만 그 문제를 다시 안풀어봐도 된다는 나만의 표식이었다. 지금에서야 3번정도만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땐 그것도 어찌나 불안한지 동그라미 5개를 채우고 나서도 문제의 보기마다 이 보기가 왜 틀렸고 왜 맞는지 코멘트를 모두 달았다. 또 이렇게 공부를 하고도 시험 전날이 되면 공부한 것을 틀릴까봐, 공부한 것보다 시험을 못칠까봐 불안해서 울면서 공부를 했다. 부족한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