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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당신과 당신의 틈

by 어린길잡이


만일 당신이 뒤돌아본다면

그곳에는 나지막한 속삭임이 있을 겁니다

조금 더 웃어봤다면

우리 사이에 파인 홈은

얇은 주단 한 장으로도 메꿔졌을 거라고


만일 당신이 뒤돌아본다면

그곳에는 닳아버린 아쉬움이 있을 겁니다

했으면, 혹은 하지 않았으면

훌훌 날아간 시절은 날개를 모은 나비처럼

내 손에 고이 앉았을 거라고


만일 당신이 뒤돌아본다면

그곳에는 여물지 못한 헌신이 있을 겁니다

한 발짝 먼저 움직였다면

나의 사랑들에 새겨진 팔자주름은

포개진 배려들 입 안 가득 채워 펴졌을 거라고


보도블럭 사이에는 미세한 틈이 있다

그 틈을 응시하며 그곳을 밟아보면

발의 중심은 심연으로 빠져들 듯 간지럽다

그러나 먼 곳을 바라보며 걸을 적에

수많은 틈엔 구름다리가 놓인 듯

당신은 그냥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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