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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어느 커피숍 직원의 오른손

by 어린길잡이

커피집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초록색 니트와 회색 청바지를 입은 청년은

눈살을 찌푸린 채로 카프카의 변신을 읽는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은 음료를 마시며

오순도순 정답게 수다를 늘어놓는다

검은색 정장의 여성은 에스프레소 한 모금 들이키며

노트북으로 장황한 문서 작성을 한다


나는 그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쭈뼛쭈뼛 내 자리에 앉는다

멀뚱멀뚱 주변을 보며

내 커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언제 다 만들어질까,

속으로 커피숍 직원을 재촉한다


삐리리 삐리리

진동벨이 카페의 침묵을 깬다

옆사람이 놀랐는지 몸을 움찔거린다

부끄러움이 사무친다

부리나케 진동벨을 움켜쥐고

종종걸음으로 음료를 가지러 간다


그곳엔 방긋 웃는 커피숍 직원이 있다

내게 반갑게 인사하며 음료를 건네는

커피숍 직원의 오른손은

불그스름한 생채기와 멍 투성이이다

그 오른손을 바라본다


키오스크의 뒤편에는

적갈색 철판처럼 녹슬어버린

어느 커피숍 직원의 오른손 하나가 있었다

책을 읽고, 떠들고, 일을 하고, 글을 쓰는 뒤편에는

어느 커피숍 직원의 오른손 하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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