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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Aug 14. 2024

미셸 공드리 <공드리의 솔루션북>을 보고 (2024)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긴 여정

스포일러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 <공드리의 솔루션북>을 영화관에서 시청하고 왔다.

영화를 보면서, 미셸 공드리의 다큐멘터리이자 하나의 애니메이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미셸 공드리와 노암 촘스키의 행복한 대화> (2014)를 떠올렸다. 다큐멘터리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언어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노암 촘스키가 창시했던 이론인 '변형 생성 문법 (Generative Grammer)'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언어학 교재를 가지고 공부를 했지만 '변형 생성 문법'의 아이디어만 이해할 수 있을 뿐, 그것이 왜 통사론에서 중요한지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공드리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동안에 왜 '변형 생성 문법'이 혁신적인 이론인지를 깨달았다. 애니메이션이 주는 재미는 덤이다.


돌아와서, <공드리의 솔루션북>을 해부하고 요약하는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

1)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영화라는 점. (메타성)

2) 영화를 만들기 위한 네 가지 규칙 (논리성)

3) 감정을 과장해서 보여주는 연출 / 이것은 아트하우스계 영화의 투명한 리얼리즘과는 반대편에 있다.


영화의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공드리의 솔루션북이라니. 대체 공드리가 뭘 알려준다는 말인가.

이런 당황스러운 제목은 <홍상수 영화를 찍기로 했다>라는, 오래 전에 나온 홍상수 스타일의 한국 작품을 상기시킨다. 정작 이 영화는 홍상수와 관련이 없다. 하지만 본 영화의 제목은 관객을 속이려는 의도는 없다. 왜냐하면, 미셸 공드리의 '솔루션북'이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주인공인 마크를 미셸 공드리 본인으로 해석한다면, 영화 속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해결의 책 (Livre des Solutions)'은 공드리가 쓴 책이기도 한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공드리의 솔루션북>의 중심 테마가 바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영화, 메타 영화라는 것이다. 그동안 공드리 감독이 시도해 왔던 비현실적인, 환상적인 스토리 텔링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의 서사는 자전적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사소설 풍 영화처럼 자기 자신의 인생을 연민하려는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영화를 제작하는 동안에 마크는 매우 다양한 실수를 저지른다. 기분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편집자와 비서, 조감독에게 막말을 한다. 저렇게 막말을 하고 나면 기분이 풀리는가 싶지만, 역시나. 기분이 풀리기는 커녕 스스로의 정신적인 문제 = 강박관념에 빠져 들어서 새로운 문제에 직면한다.


첫 장면부터 강렬하다. 공드리의 자전적인 캐릭터 '마크'는 제작 중인 영화의 지휘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는 소식을 듣는다. 영화 투자자들에게 가편집 영상을 보여줬더니, 이걸로는 안 되겠다면서 면전에서 교체를 명한다. 이 때, 마크의 임기응변이 빛을 발한다. 담배를 핀다고 말하고 나가서, 같은 건물의 아래층에 있는 편집실에 들어가서 실비아, 샤를로트와 함께 컴퓨터 장비를 챙겨서 현장에서 도망친다는 선택을 내린다. 영화를 포기할 수 없다는 강한 집념과 동시에, 저래서 어쩔 것이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마지막 장면에서 마크와 스탭들은 관객의 박수갈채를 받는다. 당연히 관객들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모른다. 알고 나면 박수를 칠 수 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을 거다.

마크는 책상 서랍에서 꺼낸 그의 [해결의 책]을 펼쳐서, 인생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들을 그 책에 적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나는 프랑스의 오래 된 전통 중에서도 모랄리스트적인 전통을 떠올렸다.

중세 이후로, 프랑스에는 자신의 체험을 회상하고 에세이로 적으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훈을 기술하는 모랄리스트가 몇 명 나타났다. 우리에게 유명한 작가로는, <에세>를 저술한 몽테뉴가 있을 것이고, <팡세>를 저술한 파스칼이 있다. 파스칼 이후로는 루소가 있고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라 로슈푸코가 있다.

이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가정한다면, 마크는 나름대로 인생의 구구절절한 사건 속에서 교훈을 끄집어 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발견하는 네 가지 규칙이라고 하는 것들이 모두 특이하다.

"계획을 실행하라", "하면서 배워라",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마라", 마지막으로 세 번째와 모순되는 "남의 말을 들어라"라는 것이다.


영화 중반까지, '마크'는 숙모 집에서 살면서 억지로 따라오게 된 그의 스탭들과 시도 때도 없이 싸운다. 주로 싸움을 거는 건 마크다. 조감독은 알레르기가 있어서 기침을 자주 하는데, 여기에 대고 마크는 "네 폐는 대체 어떻게 된 거냐"면서 조감독 탓도 아닌 기침을 질책한다. 실비아는 제작자 겸 비서로 잡다한 부탁들을 들어주지만, 마크는 고맙다는 말은 커녕 새벽마다 찾아와서 뭘 해 달라고만 한다. 게다가 연애 사정 때문에 실비아가 미인으로 묘사되는 가브리엘에게 질투를 하는 일도 생긴다. (결국에는, 마크와 가브리엘이 연인이 되는 듯하다)

놀랍게도, 마크가 만든 인생의 네 가지 규칙은 그가 영화를 완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마크는 자기 앞의 문제를 두고 도망치지는 않는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사람을 부려서) 실행하고, 활동하는 도중에 실패하면 방법을 바꾼다. 그러다 보니 숙모 드니즈의 건강 이슈를 해결하기도 한다. 실비아에게 졸라서 영국의 밴드 '스팅'에게 베이스를 녹음해 달라는 메일을 보내는데, 스팅의 멤버 고든이 흔쾌히 응하면서 영화의 주제가를 위한 베이스 연주를 부탁하는 데 성공한다. 이 부탁이 성공한 이후로 마크는 "사람들이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회상한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몇 가지 요소에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컨대 무모하게 보이는 마크의 계획들은 좋든 나쁘든 결과물을 얻는다. 그것은 그가 가능하면 계획을 실행하기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미래의 계획을 세웠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계획은 실패하더라도 의미 있는 경험을 남겼다. 대신, 계획을 실행하는 경우라고 해도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 듯하다. 마크도 강박관념을 빼면 신중한 편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가 영화 제작에 대한 영화라는 건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영화를 제작하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비록 내가 영화를 만들어 본 경험은 없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시작이 반이라고들 하지만, 나머지 반을 채우기 위해서는 정말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마크는 영화를 끝까지 보지도 못하면서도--어릴 적에 트라우마를 겪었다는 설명이 지나간다--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 죽어라 노력한다. 그러다 마을 면장을 맡기도 하고, 겨울이 돼서 마을을 떠나서 파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서 칩거하기로 한다. 모든 인생의 장면이 영화의 완성에 기여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도 바로 그렇다.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것처럼 보이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묘한 긴장감이 있다.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 처음 보는 시사회에서 마크는 사람들을 웃긴다. 그러나, 이는 웃기려고 의도한 게 아니라 솔직한 표현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마크가 앉은 자리에는 사람이 없고 등받이에 끝없이 파인 두더지굴이 남아 있다. 완성된 영화로부터 그는 다시 도망친다. 마크를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오늘도 글을 쓰는 작가라면, 마크의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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