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사람
무더운 여름
상돌이 할매의 부지런함이 등어리를 굽어지게 한다.
가랑이 사이로 벌건 땀이 한줄기 핑 하고 흘러내려간다.
몇발작 되지 않는 오르막길을 오르며
"배가 고파서 집에 가야 긋다"
할매는 항상 빈손을 보인 적이 없다
"참외 먹제?"
"네"
땀을 억수 같이 흘리던 상돌 할매는 목에 맨 수건으로 계속 얼굴을 훔친다.
얇은 수건은 땀에 졌어 흔근한 붉은색을 하고 있다.
도저히 더워서 시멘트 바닥에 발도 딛고 싶지 않은 그런날이다.
두말할 겨를도 없이 축진법이라도 쓰는 사람처럼 할매는 보이지도 않을만큼 멀리 가버렸다. 아이를 재우다가 같이 잠이들어 멍한 나에게 이따금씩 왔다가 사라지는 할매.
상돌할매.
할매가 준 참외는 땡볕에 익어 먹을 엄두고 내지 못하고 냉장고속으로 들어간다.
여름대낮 내려 쬐는 햇빛에 개미 한마리 지나가지 않는 마을 구석에 덩그러니 있는 컨테이너 우리집 우리아기와 나.
잠을 잘자지 않는 아이를 1년동안 키우다보니 하루하루가 비몽사몽이다.
낮에는 혹시나 할매들이 지나가다 밖에서 부르기라도 할까봐
늘어져 자지도 못한다.
"요세 젊은것들은 팔자가 늘어진다"
아무도 내게 그러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것 같은 우울감 혹은 좌절감이 밀려오기라도 하면 하루에 몇번이고 눈물이 난다.
땀에 젖어 자는 아이와 내 목뒤에 질척이는 땀을 감수하고 낮잠 한숨 불편하게 자고 나면
기나긴 여름해가 꺽인 느낌이 든다.
땀 식힐만큼 시원한 바람은 아니지만
마당에 나가 볼만할때가 되면
상돌할매가 우리집으로 걸어 온다.
손에 한움큼 호박잎에 꽃다발을 만들고있다.
얼마나 가지런히 손질하고 엄선해서 땃는지는 줄기의 길이를 보면 알수 있다.
한다발은 한꺼번에 싹둑 자른것 처럼 가지런한 호박잎 다발은 살짝 돌담에 놓아 두는것도 조심 스럽다.
"된장에 빡빡 치대서 멸치 한움큼 넣고 끓여 먹어"
"더운데 풀숲에서 이거 딴다고 계셨어요?"
낮에는 땀으로 범벅을 하고
저녁녁에는 모기 물린자국으로 빠꿈한대가 없다.
"아이고 몸서리야"
할매는 열이 많고 땀도 많고 모기도 잘타는 채질이셨다.
농사짓기 힘든 체질이다.
저녁에 할매가 준 호박잎을 멸치 육수 내고 된장 넣고 마늘도 조금 넣은뒤 팔팔 끓여본다.
냄새는 그럴듯한데
내 몸을 따라 움직이는 아이를 놀래켜 가며 어떻게든 업지 않으려 오만 동물소리 질러가며 전기 밥솥에 밥도 했다.
해질녁 들어온 신랑은 바깥 평상에 앉아 딸그락 거리던 맥주를 한잔 한다.
애를 봐주든 밥을 빨리 먹든 뭔가를 어서 하고 쉬고 싶은 내 마음에 철벽을 친 우리 신랑.
싱크대에서 밥하는라 나온 설겆이를 들그락 거리며 눈믈이 주르륵 흐른다.
일하고 온사람에게 애보는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는 투정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예전에 마음 먹었었다.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설명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사실이다.
푸념하지 않으리라
식탁위에 오른 꽃다발 호박잎 된장찌게는 신랑에게 퇴짜를 맞았다.
뭐 닥히 젖가락이 가지 않는 반찬들이 였는지
물에 밥을 말아 버린다.
너무 화가 나서 말도 나오지 않고 엉뚱한 말이 튀어 나온다.
"참외 먹을래요?"
"참외?"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이지만
냉장고에서 참외를 꺼내 깍아본다.
"왠 참외?"
"낮에 상돌할매가 밭에서 땄다고 두개 주시길래"
세로로 껍질을 깍아내고
나름 칼질을 하여 길쭉한 면을 살려 접시위에 올렸다.
아무소리 없이 덥썩 먹더니 반토막이 났다.
남은 반은 접시 위에 올려 놓더니
"이건 뭐 단맛이 없네"
이런다
아무말이 안나온다.
가만히 접시만 바라보고 있었다.
삼십분이 지나고 신랑은 참외 한조각의 반토막을 끝내 먹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것을 이성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이유식하다가 남은 채소, 먹다남은 통조림, 반쯤 남은 김치 이것저것 엉망징창인 냉장고를 보니
꼭 나를 보고 있는것 같았다.
밤도 식히지 못한 한낮의 후덥지근함.
냉장고 문을 열러둔 채로 소리를 질렀다.
아이도 놀래 우는듯했다.
신랑는 등뒤로 놀라 인기척이 느껴졌다.
눈물이 쏟아지고
소리가 점점 커지자 냉장고 문을 반쯤닫았다.
냉장고문에 목을 끼우고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고 엉엉 울었다.
눈물콧물 범벅이 되고 정신을 차리니 김치통을 붙들고 있었다.
냉장고의 시원한 냉기가 울음을 식히고
콧물눈물 닦고 냉장고 앞에 앉았다.
속이 시원하다.
신랑은 일하러 나가고 점점 오후를 향해 후덥지근함이 컨테이너 깡통에 쌓이는 중이다.
밤새 자지 않던 딸아이는 지쳐서 잠이 들었다.
괜히 우두커니 서 있는 에어컨을 물티슈로 닦아본다.
돈이 없어 설치를 미루던 에어컨이 나를 더 참혹하게 만드는 기분이다.
밖으로 잠시나가 돌아서는데
뽀시락 거리는 소리가 잠시 들리더니
풀숲 더 안쪽으로 들어가 버린다.
한시간쯤 뒤 상돌할매는
오늘도 땀 범벅이 되어
우리집에 들렸다.
"호박잎 먹어봣소?"
"네"
"맛있던가?"
"......"
그냥 맛있게 잘먹었다고 할것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 젊은 양반들이 입맛에 맞겠나?'
"제가 요리를 잘 못해서..."
"애들 키우고 할 때는 다 그래"
"........"
"우리도 애들 키우고 할 때 먹을게 하도 없으니 오만거 다 뜯어 먹고 살고"
"....네...."
"그 때 생각하면 몸서리 친다. 아이구"
"......."
"그래도 그 때가 좋아"
"저는 혼자 이리저리 다니시는 할머니가 더 부러운대요"
"..........."
"애 키우기 너무 힘들어요"
"..........."
"빨리 시간이 갔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그때가 좋아 그때는 내가 젊었잖아"
"..........."
모자끈 짜매고 할매는 또 땡볕아래로 갔다.
도저히 진정되지 않는 억울함 같은것이 밀려든다.
생각이 두번째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주제 없이 뱅뱅 머리를 돌다가 다시 맥락없는 다른생각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한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에어컨만 설치하고 나면 이 이상한 기분이 좋아질것 갔다.
아이 깨지 않게 물티슈 한장을 꺼내 에어컨을 닦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