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나에게 살아갈 가치, 그 가치는 무엇인가?
명사보다는 동사로 이루어진 꿈이 더 살아갈 가치가 있게 만든다고 말하는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를 보았다.
살아갈 가치라는 문장을 들으니 우리는 역시 피투 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작정 세상에 던져졌기에 우리는 불안을 느끼며 확고하다고 생각하는 저마다의 믿음, 신앙을 가지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에 내가 가지는 신앙은 언젠가는 믿음이 되고 언젠가는 융통성으로 바뀌며 후에는 객기 따위가 되어버릴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객기가 융통성이 되며 믿음이 되고 신앙이 되고 철학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객기를 가지길 원하며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정확히 그것들이 무엇인지 파악한다면 우리는 명사보다는 동사로 이루어진 꿈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고뇌해본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가치에서 믿음이 없으면 난 살 수 없기에 오늘도 객기에서 시작해 믿음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나는 약속을 신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원래는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객기 측에 속했다.
어렸을 때는 그것은 나에게 객기였고 지금에 와서는 사회를 이루는 것은 약속이다라는 신앙으로 변했으며 융통성은 사라졌다.
최선을 다해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사회화의 결과일 수도, 잘못된 표상으로 생긴 인식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나는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그저 오늘도 과거의 잘못된 나에게 말을 걸 거나 현재의 나에게 타협을 건네는 정도이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개방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끝까지 개방적인 사람으로 남고 싶다. 아니 되고 싶다.
진화한 나의 객기가 융통성을 지우고 신앙을 가지려고 애쓴다. 나는 최소한, 신앙으로 인해 새로운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폭력적인 믿음이 아닌 포용하는 믿음을 가지며 신앙의 가치에 추락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기에 많은 경험을 통해 객기와 신앙이 하나 되는 그 간격이 좁아지며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그런 초인적인 사람,
내 꿈은 그런 초인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