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방드, 잘가라

음악에 안겨 그리워하다

by 이녹스

아침 공기가 차가워지며 새 차 핸들에 온기가 전해진다. 따듯한데, 낯설다. 지난겨울 급작스럽게 보낸 나의 차가 생각난다.


백화점에서 예쁜 신발을 사려다 닳은 앞바퀴 두 개가 눈에 밟혀 “바퀴 바꿔줘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랑 달까지 가자고 약속했는데, 38만 킬로미터. 25만 킬로미터를 달려왔는데, 혼자 먼저 갔다. 13년 동안 나와 함께한 차.


나 너 집에 바래다줬다
잘 살아라
나 간다


하고서는 갑자기 훌쩍 가버렸다. 평범한 퇴근길 집 주차장에 거의 다 와서 푸르르 파르르 덜덜덜 하더니. 집에까지 데려다 주곤 가버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별이었다. 당황했고 갑작스러웠고 마음의 준비도 못했다. 오래도록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지금도 가끔 그렇다.


그래도 끝까지 나를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떠난 내 차가 고마웠다. 내 의지로는 절대 보낼 수 없었을 텐데, 아마 내가 힘들어할까 봐 먼저 떠나 준 걸지도 모르겠다. 책망하지 않게, 미안해하지 않게.




바흐의 사라방드와 샤콘느를 들으면, 슬픈 선율에 나의 차가 생각이 난다. 저음의 화음이 낮게 깔리면서도 섬세한 멜로디가 흐르는 음악. 함께 했던 때가 떠오르다가도, 이제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슬픔이 훅 들어온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기분을 달래듯 아기자기하게 예쁘게 음악이 흐르기도 한다. 마치 그 슬픔을 토닥이며 달래는 듯이. 바흐의 샤콘느가 들릴 땐 내 차가 떠오르고, 내 차가 그리울 땐 바흐의 사라방드와 샤콘느를 찾는다. 어린 왕자의 여우처럼 길들여진다.


많은 사람들이 연주하는 것처럼 여러 음이 동시에 울리는데도, 단 한 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는 음악. 처음 들었을 땐 생소했고, 지금도 여전히 신기하다. 슬퍼해도 된다고, 마음이 아파도 괜찮다고 위로해 주는 것 같다. 브런치 작가 “춤추는 늘보”에 의하면,

진심을 담은 예술만이 예술가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진심을 담은 예술은 그 어떤 기록보다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보편적인 기록물이 되고
시대를 뛰어넘어 다시 모두가 저마다의 내밀한 이야기를 저장할 수 있는 일기장이 되어준다.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사람이 손을 내밀어 주는 것 같고, 그 음악에 기대 안겨서 울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한다.


(왼) 제주도를 가기 위해 기다리던 장흥 노력항, (가운데) 경주 대릉원, (오른) 산청 별아띠천문대의 명물 겹벚꽃나무와 함께



* 제주 바다가 보이는 홀에서 바흐의 파르티타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고 연주해 주신 김강훈 바이올리니스트/지휘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미니콘서트 세트리스트 @ 소노캄제주 2025.10.17.

알레망드 (Allemande)

쿠랑트 (Courante)

사라방드 (Sarabande)

지그 (Gigue)

샤콘느 (Chacon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