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시간을 감당하고자 하는 장단
내년 2026년, 부산교사국악관현악단에서 거문고가 단독으로 산조를 하기로 했다. 재작년에는 해금이, 올해에는 아쟁이 독주로 공연의 레퍼토리를 풍성하게 했다. 그리고 그다음은 거문고 차례다. 파트장님께서 “이번엔 우리가 한다”라고 웃으며 말씀하셨고, 그렇게 흐름을 따라 산조가 바로 옆으로 와버렸다.
내가 거문고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산조였다. 2006년 드라마 황진이에서 황진이가 거문고를 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스르렁 징 뜰징 뜰-’ 이 소리가 너무 매력적이었지만, 그게 어떤 곡인지는 알 수 없었다. 거문고를 취미로 시작한 지 몇 해가 지나서야, 그 장면의 음악이 ‘산조’였고 그중에서도 중중모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악보를 구해달라 선생님께 졸랐고, “산조는 나중에 배우는 곡”이라며 좀 더 연습하라고 했던 곡이다.
드라마 속 설정이 위트인지 장난인지, 오류인지 모르겠지만 황진이는 조선시대 중기인 16세기 인물이고 산조는 19세기에 만들어진 음악이다. 그러니 황진이가 산조를 탈 수는 없다. 마치 세종대왕님께서 컴퓨터 자판으로 한글을 치는 장면처럼, 약간의 시간 여행이 섞인 설정이다. 아마도 황진이가 거문고를 연주할 때에 조선시대 중기 음악보다는 사람들 귀에 익숙한 ‘산조’를 연주하는 것이 극의 흐름상 잘 전달될 것 같아서 그리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속에서 오래 이해되지 않던 장면이 하나 있다. 황진이 어머니 ‘현금’이 세상을 떠난 뒤, 교방에서 악기를 만져주고 손보던 악공 ‘엄수’가 떠나는 장면이다. 갈 곳도 정하지 않은 채 길을 나선다. ‘현금’의 곁을 조용히 지켜주던 그에게, 사랑하는 이가 없는 교방은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사랑한 사람이 있었던 그 공간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 악공 ‘엄수’의 말이다.
진양은 사랑이다.
산조에서 가장 느린 장단의 진양. 난 이 거문고 산조 진양을 들을 때마다 악공 엄수의 말이 떠올랐지만, 너무 느리고 왜 그런지 느낌이 오지 않았었다. 진양조는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에 사용된다고 한다. 춘향가 중 ‘적성가’나 ‘긴 사랑가’처럼. 윤홍균의 <사랑 수업>에서 말하는 사랑하기 전에 친해져야 한다는 말처럼, 두근거리고 어색하고 쑥스러운, 그 미지근한 시간을 감당하고자 하는 장단. 시간을 견디며 몸으로 지나가야 하는 진양이다.
202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