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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오 Feb 25. 2023

EP.6 좋은 사회경험으로 생각해

좋긴 개뿔 뭐가 좋아

[EP6. 좋은 사회 경험으로 생각해좋긴 개뿔 뭐가 좋아]     


※ 전반부(프롤로그 ~ EP.5) 이후 잠시 공백을 두고, 후반부(EP.6 ~ 에필로그)를 다시 작성합니다.    

 

D-125. 조금씩 전역이 실감이 나고 있을 즈음 다시 브런치를 업로드 해본다.     


기억은 가끔 이상하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들로만 기억될 것 같았던 군 생활의 시간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상황이 주어진 뒤로 일정부분 미화가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분명히 마음속으로 수없이 욕하며 지나보냈던 시간들이 많았고, 울고 싶은 기억들이 많았는데, 되돌아보면 어쩌면 짧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낭만 있었지(?)’라고 미화되는 기억들도 꽤나 많은 것 같다. 이러한 기억의 이상함을 체감하면서도, 내게는 미화될 수 없는 아픈 기억이 두 개가 있다. 그 중 한 가지가 오늘 에피소드의 주요 소재이다.(다른 하나는 <EP.10> 정도에 등장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장교로 임관하여 군대에 입대했다는 것은, 나로서는 처음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고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삭제시킨 ‘첫 경험’이다.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입학한 것이, ‘성인’으로서 책임을 져야하는 일종의 부담을 안겨주었다면, 대학을 졸업해서 바로 군대에 입대한 것은, ‘사회인’으로서의 첫 발걸음이었다. 새로운 환경은 언제나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내게 주어진 ‘임관’이라는 새로운 환경은 ‘사회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설렘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을 주는 주요한 사건이었다.(<EP.3> 참고)     


‘임관’을 거쳐 교육기관을 무사히 수료하고(<EP.4>), 자대로 전입(<EP.5>)이 되어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안고 열정적으로 임무 수행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격리기간(당시 2주)을 지나 첫 출근을 하고 이틀 뒤에 전임 인사과장 선배가 전역을 했다. ‘인사가 만사다.’라는 우스갯소리가 군 내에서는 일종의 ‘업계의 정설’처럼 사용된다. 더군다나 나의 자대는 후방지역 관리형 대대의 편제가 변경되면서, 소ㆍ중위급 장교 1명이 인사업무를 온전히 총괄해야하는 부대였다. ‘인사는 만사’라며 쏟아지는 일은 많은데,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은 사실상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내게 가시적으로 주어진 인적자원은 곧 전역을 앞둔 상병 인사행정병과 나보다 3주정도 먼저 전입온 이등병 인사행정병이었다. 그래도 패기로 부딪혀봤다. 매일같이 야근을 일삼으며, 이런 저런 일들을 아무것도 모르지만 물어물어 처리했다. 그 때 나의 심정은 한 마디로 ‘조세호’였다.     


아니모르는 데 어떻게 해요.”     


하지만 이곳은 군대다. 저것은 심정일 뿐 저렇게 말했다간 큰 일 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울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꾸역꾸역 일들을 해냈다. 다행히 상병 인사행정병 친구가 소위 ‘에이스’ 축에 속하는 용사여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내가 삶을 살아가며 가지는 일종의 신념이 있다면, ‘모르면 누구에게나 묻고, 틀리면 무엇이든지 고치고, 잘못하면 재발하지 않도록 뉘우치자.’이다. 이제 막 전입온 소위가 간부와 용사들 눈에는 ‘얼마나 어리바리해보였을까' 내 스스로 생각하며, 쓸데없는 계급적 권위를 세우기보다 모르는 것은 어떻게든 물어보려고 했다. 다행히 주변 선배 장교들과 부사관 동료들이 소위 ‘츤데레’처럼 도움을 주었고, ‘에이스’ 인사행정병이 내가 모르는 업무들을 많이 알려주어 어느 정도 운영은 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이등병이었던 인사행정병도 바짝 군기가 들어있는 모습으로 나를 잘 따라줬다.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간부들과 나를 잘 따라주는 인사행정병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나도 얼른 내 몫을 하고 주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적응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지는 일들을 못하겠다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내가 하겠다며 다 받았다. 업무를 시작한지 약 2주쯤 지났을 때부터는 대대장님께서 이전에 잡지 못했던 업무 시스템을 새롭게 잡아가기 위해서 이런저런 미션들을 명령하셨다. 그 중 하나가, 인사업무에 있어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병력신상관리’ 체계 확립이었다. 군에 복무해본 이들은 모두 알겠지만, 모든 부대는 장병들의 신상정보, 입대 전 이력, 성향, 관계 등을 바탕으로 ‘병력관리’를 한다. ‘병력신상관리’ 시스템이란 육군규정에도 명시되어 있는 핵심적인 업무로, 월 단위로 ‘신상관리위원회’를 구성하여 실시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핵심적인 업무임에도, ‘초짜’ 그 자체였던 나는 ‘신상관리 시스템 확립’이라는 미션이 주어졌을 때 그게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또한, 아무래도 용사들의 신상정보가 담겨 있다 보니 이것은 행정병들이 할 수 있는 업무 범위가 아니라 온전히 인사과장의 고유 업무여서 기존에 도움을 받던 용사에게 의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어쨌든 미션을 받고 지침을 주신대로 일을 처리하려고 준비를 했다. 우선 당시에는 업무속도가 현저히 느렸기 때문에, 보통 일과시간에는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급한 불을 끄는 형식으로 일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저녁 초과근무를 하며 남은 업무들을 처리했다. ‘병력 신상관리시스템 확립’을 위한 제반업무도 야근 중에 하다 보니, 남아 있는 간부가 없어서 물어볼 데가 없었다. 그래도 전임자가 남겨놓은 몇몇 양식들을 토대로 업무를 진행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식 없이 의욕만 앞섰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 과정에서 용사 한 명의 개인 신상정보가 노출되는 엄청난 업무상 과실이 발생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군에서는 ‘인트라넷’이라는 보안을 위한 별도의 인터넷 국방망을 사용하기 때문에, 행정복지센터에 위치해 있는 예비군 중대와 업무 연락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 연동이 되는 체계가 필요하다. 부대에도 그런 체계가 있어서, 예비군 중대와 업무 연락을 위해 사용하는데, 부대에서 문서에 암호 잠금을 해서 올리면 예비군 중대에서는 암호가 풀린 상태로 열람된다고 한다.      


나는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병력관리 책임이 있는 예비군 동대장에게 신상관리위원회를 위한 종합 양식을 공유하기 위해 야근 중에 용사 개인의 신상정보가 담긴지 모르는 채로 암호화된 양식을 업로드 했다. 다음날 출근을 했는데, 말 그대로 난리가 난 것이다. 한 명의 개인신상정보가 타인들에게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제 서야 사고를 알게 된 나는 해당 자료를 빨리 삭제했지만, 이미 노출이 발생한 이후였다. 해당 피해자로부터 고소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대대장님을 포함한 간부님들이 여러모로 중재를 시도해주셨지만 잘 되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너무 크게 당황했다. 우선은, 해당 용사와 피해를 입은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렸다는 죄책감이 심했다. 다음은, 대대장님을 포함한 부대 간부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컸다. 그 다음이, 두려움이었다. 다행히 상호 합의를 통해 크게 번지지 않고 사건 자체는 마무리 되었으나,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는 정신적, 물리적 충격이 컸다. 사회에서 첫 발을 내딛는 시점에 발생한 큰 과실과 일련의 감정들은 나를 위축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람과 모든 업무에 있어서 눈치가 보였고, 열정 하나 밖에 없었던 나로 하여금 열정마저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인식 되었다.     


그 때 당시에는, 주변의 몇몇 사람이 사회생활 하다보면 발생할 수 있는 일이고 초급 간부일 때 좋은 사회경험 한 것으로 생각하자고 위로의 말을 해주어서,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생각해보면, 결코 ‘좋은 경험’이라고 할 수 없다. 일차적으로는 피해자가 있는 사건에 대해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이기적인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사실 발생하지 않았어야 할, 그리고 발생시키지 않을 수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에 ‘좋은 경험’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조금만 더 인수인계를 확실히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부대 차원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써줬다면 충분히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평생을 살더라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미화하면 안 된다.     


나와 같은 사회 초년생이 많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개인 스스로 주의를 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 초년생들을 위한 실질적인 교육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마련될 필요성을 느낀다. 특히, 군에서는 야전과 교육기관의 괴리가 크다. 부대의 형태, 편제, 업무의 방식 등 ‘맨땅의 헤딩’식으로 스스로 익혀 가야하는 업무들이 많다고 느껴지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나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비슷한 ‘좋지 않은 경험’들이 재생산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지 않은 경험’을 “좋은 사회 경험으로 생각해.”라는 말로 인식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좋지 않은 것’, ‘잘못된 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이 더욱 건강한 접근이고, 재발방지를 위한 실질적 마음가짐일 수 있다. 상대방이 위로를 목적으로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자.”라고 제안하더라도, ‘좋긴 개뿔 뭐가 좋아, 다시는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앞으로의 사회 생활을 경각심을 가지고 해나갈 수 있길, 나를 포함한 ‘사회 초년생’들에게 다시금 추천한다.          


 (다음 화 예고) : EP7. 악기 발휘? 오기 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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