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자대전입, 안소위의 대구행(feat. 200만원 아반떼]
‘21.06.11. 수료식이 진행되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외박과 외출은 단 한 차례도 나가보지 못하고, 끝내 수료식이 왔다. 수료를 앞두고 우리 모두는 분주했다. 자대전입 전까지 약 1주일의 시간동안 주어질 첫 휴가를 어떻게 알차게 보내야할지, 1분 1초의 효율적인 동선을 생각하며 움직였다. 여행지 예약, 만날 친구들과의 연락 등 약 4개월 동안 고대하던 5박6일을 위해 우리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지금 생각하면 짧게만 느껴지는 당시의 4개월이, 그 때는 뭐가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탈출’이라는 생각과 함께 수료식을 마치고, 동기들과 사진을 남긴 뒤, 위병소를 그 누구보다 앞서서 나가기 위한 효율적인 동선을 활용하여 이동했다. 당시 훈련을 받던 전라남도 장성은, 나의 친가 쪽 고향 인근이다. 그래서 가족들과 일정을 맞춰서, 수료식 날에 장성에서 만나서 전라도 일대 가족 여행을 1박 2일 하고 올라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뭔가 나름 늠름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그저 가족들 눈에는 막내였던 것 같다.
가족들과의 여행을 마치고, 초ㆍ중ㆍ고ㆍ대학 선ㆍ후배 동기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나기 위한 시간계획으로 움직였다. 군인인 친구를 만나주는 정말 고마운 이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그렇게 너무 즐겁고, 행복했던 약 5박6일의 시간을 마치며 이제는 자대전입을 앞둔 긴장된 모습으로 대구행 차를 탔다.
사실, 휴가 중 나의 전임자였던 당시 인사과장 선배를 통해 연락을 받고 하루 일찍 대구로 내려올 뻔했다. 당시 대대는 전술행군을 앞두고 있었고, 신임 소위들이 하루 일찍 휴가를 반납하고 내려와서 참여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권유(?)였다. 나와 함께 전입을 가는 것으로 예정되었던 동기와 전화로 연락하며, 착잡한 마음을 뒤로 하고 일찍 대구로 내려가기로 결정을 했다.
다행히도, 당시 코로나19 격리지침으로 혹시 모를 감염에 대비해서 격리 이후 부대 활동을 시작하는 것으로 지침이 하달되어 일찍 내려가게 되지는 않았다. 아무튼 하루의 소중한 시간을 더 번 상태에서, 앞으로 펼쳐질 자대에 대한 생각들을 하며 긴장된 모습으로 대구로 내려갔다.
마찬가지로, 바로 대대로 올라가 전입신고를 하지는 못했다. 코로나19 격리지침으로 2주간 격리생활을 하다가, 정식 전입신고를 하고 임무수행을 하게 되었다. 부대 안에서 격리하며 야전 교범을 읽고, 초급간부 길라잡이를 공부하면서 조기 적응을 위한 노력을 했다. 4개월 간의 보병학교 생활이 몸에 익어있던 상태라, 통제되지 않아도 동기와 시간을 맞춰서 공부하고 체력단련을 했다. 마침내 2주간의 격리를 마치고 정식으로 전입신고를 했다.
“차렷,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강철!”
패기넘치는 신입 소위의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누구보다 목소리를 크게 내고, 이전에는 신경 써 본 적 없는 장교만의 각을 잡으며 움직였다. 하지만, 인사과장으로 임무수행하기 위해 전임자로부터 인수인계를 받는 이틀의 시간을 거치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격리로 인해서 인수인계 기간은 약 이틀밖에 주어지지 않았고,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처럼 일을 모두 배우기에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이틀 그 마저도, 하루는 주말이어서 대대장님과 초급간부들이 함께 팔공산을 등반하는 것이 계획되면서 실질적으로는 ‘근무일 하루’만 인수인계 기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학생회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은 있었지만, 내가 이해하고 있는 범위는 앞으로 해야 할 범위의 1%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사과장으로서 임무를 시작했다. 이미 인사 업무와 관련한 수많은 전화는 내 휴대폰으로 걸려왔다. 나는 아무것도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알아보고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우선, 일을 빨리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대 상황과 사람들을 빨리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대장님을 비롯한 장교 선배들, 주임원사님을 비롯한 부사관단과의 관계, 여단 내 인접한 간부들에 대해 파악하고 적응하기 위해 관심을 두고 일을 했다.
다행히, 대대장님을 비롯한 주변의 많은 간부들은 갓 전입온 소위를 이해해주고 배려해주었다. 그리고 전역과 전출을 앞둔 전임자 선배들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후배를 잘 지도해주었다. 함께 등산을 하면서도, 참모로서 대대장님을 수행하는 법을 간접적으로 배울 수도 있었다.
내가 전입 간 부대의 위치는, 팔공산 인근의 예비군 훈련장 쪽 부대였다. ‘광역시’인 대구의 행정구역에는 포함되어 있지만, 아직도 기름보일러를 쓰고, 버스도 자주 다니지 않는 산골짝에 가게 되었다. 자동차가 없으면 대구의 이점을 누리기가 쉽지 않았다. 차를 타고 교통이 편한 곳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약 20분 가량을 가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찬스’를 썼다. 여기서 ‘아빠찬스’는 ‘찬스’라고 하기 애매하긴 하지만,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서 싸고 탈만 한 자동차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일주일 정도 알아보니, 연락이 왔다. 200만원짜리 중고 아반떼이고, 성능 검사를 했을 때 이상이 없어서 출퇴근용으로는 좋을 것 같은데, 계약을 할 건지 물어보셨다. 사진을 확인하고, 아버지께 나머지 점검을 부탁드린 뒤 200만원을 지불하고 계약을 했다.
내 인생의 첫 차가 뭘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흰색 구형 아반떼가 내 인생 첫차로 왔다. 그 누가 뭐래도 내겐 가장 소중한 차였다. 차를 받아서 팔공산 자락의 언덕에 위치한 부대를 출퇴근 하고, 퇴근 이후나 주말에는 일대의 시내로 가서 구경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대구 생활을 시작했다.
사회초년생으로서의 첫 시작이었다. 200만원짜리 중고 아반떼를 끌고, 인사과장이라는 직책으로 장교로서 임무수행을 하는 것이 설렘이었다. 그래서 잘 하고 싶었고, 잘 하고 싶은 마음으로 노력과 열정을 투입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등병’ 소위였지만, 사회초년생의 패기와 열정으로 임무수행했던 그 시절이 있어서 지금의 나로서는 참 다행이다.
(다음 화 예고) : EP6. 좋은 사회 경험으로 생각해, 좋긴 개뿔 뭐가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