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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오 Oct 10. 2022

EP3. 졸업과 임관, 그 의미와 실재

[EP3. 졸업과 임관, 그 의미와 실재]     


2019년은 내게 잊을 수 없는 해이다.     


“ ROTC를 시작했던 첫 해였고,

사춘기가 뚜렷하지 않았던 나에게 뒤늦게 찾아온 방황의 시기였고,

진로에 대한 외로운 고민이 나를 뒤덮었던 시기였다. "     


 대부분이 그렇듯, 나는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특히, MBTI 중 'E'항목이 굉장히 강한 외향적인 성향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자 했다. 또한, 중ㆍ고등학생 시절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의 경험을 이어서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감투를 쓰고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일들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진학함과 동시에 고삐가 풀렸다. 학과 다양한 선배 동기들과 즐겁게 생활하며 학교에 살다시피 했다. 학과 학생회에 들어가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학과 내에 다양한 소모임에 가입해서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 맺는 방식을 터득했다. 축구 소모임, 학과신문기사 작성 및 편집 소모임, 밴드 소모임, 마라톤 소모임 등 활발한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을 여한 없이 이루고 있었다. 2학년 때에도, 학과 학생회장을 하며 학과와 단과대학 내에서 다양한 일과 역할을 경험할 수 있었다.     

2018 정치외교학과 학생회장 임기 종료 당시 사진

 나는 학과와 굉장히 잘 맞았다. 나는 정치외교학과 소속이었는데, 학과 특성 상 사회 이슈 전반에 말하고 토론하기를 즐겨하는 이들이 많았고, 발표하고 글을 쓰는 수업이 많았다. 주변에 다른 이들 중 학과와 잘 맞지 않는다며 복수전공이나 전과를 택한 이들도 꽤나 있었지만, 비교해봤을 때 나는 우리 학과가 다루는 주제, 분위기, 사람들의 특성과 잘 맞았던 것 같다.

2018 학교 축제 당시 집행부원들과 함께 준비한 학과 주점

     

 특히 내가 학과 생활을 하며 다양한 이들과 관계 맺고 이야기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주장이 뚜렷하면서도, 성향적으로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토록 배우던 ‘민주주의’의 개념 아래에서 다양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곧 ‘정치’라는 생각을 통해 사고를 넓히고, 나와 다른 사람들과 유연하게 관계 맺고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살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일종의 ‘막힌 사고방식’을 깰 수 있어서 좋았다. 논리적인 물음과 답변 없이 그저 ‘맞고 틀림’의 나만의 규범 아래에서 사고했던 모습에서, 다양한 이들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어서 내게는 진일보 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을 이 글을 통해 우리 학과와 학과 속에서 관계 맺었던 많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위와 같이 학과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과 활발하고 바쁜(외롭지 않은) 대학생활 속에서 놓치고 있던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었다. 대학생활 로망의 실현, 다양한 경험, 즐거움을 핑계로, 당시의 내가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피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을 지향하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삶을 사는지 약 2년의 시간동안 생각하기를 유보했다.     


 다음에, 나중에, 지금 말고     


 이렇게 차일피일 미뤄오던 인생의 중요한 시절의 고민과, 감정에 대한 세밀한 고찰은 상황의 변화와 함께 내게 물밀 듯 몰려오며 해답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이런 종류의 생각을 미뤄왔기에 나는 해답을 제시할 수 없었고, 방치된 생각과 감정은 뒤늦은 사춘기의 근원이 되었다.     


 ROTC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겨울방학을 보내고 나니 바로 3학년 1학기가 시작되었다. 당시 학기의 시작은 지난 1,2학년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함께 학과 생활을 함께 했던 동기들은 군대를 가거나 휴학을 했다. 나를 이끌어 주었던 선배들은 취업준비가 한창이어서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2학년 때 학생회장을 마치고 나니, 과방에 들어가기가 좀 애매한 분위기도 있었다. 그리고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 학기 시작과 동시에 헤어졌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이전까지의 대학생활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속에서 학기를 시작하도록 만들었다.     


 우선 공강 시간에 갈 곳을 잃었다. 그리고 함께 다닐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외로웠다. 주변에 많은 이들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없이 혼자인 것 같았다. 즐겁게 놀던 그 시절 함께 했던 이들은 무엇인가를 해내고 있다고 생각됐다. 나는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졌다. 외로움의 감정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몰라서, 저녁마다 약속을 만들었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선ㆍ후배들과 약속을 잡고, ROTC 동기들과 약속을 잡으며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지 못했기에 늘 찝찝했다. 약 두 달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괴로웠다. 굉장한 무기력함이 나를 뒤덮었다. 해결할 수 있는 의지도 힘도 없었다.     


 외로움의 감정 그 이후에, 삶의 방향성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3학년이 되니 내가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 지 당장 선택해야만할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괴롭혔다. 준비된 게 없는데, 준비할 수 있는 힘도 없다고 생각됐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의심이 들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막연했다. 이전부터 조금씩 고민하고, 조금씩이라도 준비했더라면, 감정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한 번에 나에게 덮쳐올 일은 없었을 텐데, 미뤄오던 불편한 감정과 생각들이 몰려오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동시에 종교적인 방황의 시기도 함께 찾아왔다. 후에 다른 주제를 다루며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개신교인이다. 모태신앙인으로 살아오며 내 삶의 규범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나라는 존재에 대한 기원과 규정은 종교로부터 지배되었다.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며 사상을 다루는 때가 있는데, 치열하게 토론하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내가 믿어왔던 ‘신’,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물음을 던지며 신앙적인 방황의 시기를 지났다. 그러다보니, 어려운 순간이 찾아왔을 때 지금까지 의지해오던 종교도 의심스러웠다.     


 이 총체적인 어려움 속에서, 절대적인 의미의 시간과 다르게 상대적인 시간의 개념으로 내게 조급함과 압박을 주었던 것이 바로 ‘졸업과 임관’이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군대의 문제를 일찌감치 해결하러 다녀와서 졸업을 준비할 수 있는데, 나는 졸업 이후의 진로를 군 복무와 함께 고민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압박이 사실 컸다. 사실상 졸업은, 16년 간 나를 규정해주던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는 첫 경험이라고 생각하니, 나를 감싸던 울타리 하나가 없어진듯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임관은, 장교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생각되기보다, 내가 도태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들은 군 복무 과정이나 휴학의 과정을 통해서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변화의 과정을 거치고 진로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한 뒤에 취업준비와 대학생활의 마무리를 병행하고 있을 나이일 텐데, 나는 그 나이에 군에 입대해야했고, 전역 이후에 취업 경쟁에 있어서 도태되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졸업과 임관의 의미 = 두려움

 졸업과 임관의 실재 = 혼란스러움     


 졸업도 축하할 일이고, 임관도 축하할 일이지만, 그 두 이벤트가 내게 가지는 의미는 ‘두려움’이었다. 졸업식의 학사복 가운과, 임관식의 장교 정복의 화려함 뒤에 남겨진 실재는 ‘혼란스러움’이었다. ROTC라는 선택이 주는 어쩔 수 없는 숙명 같기도 했다. 홀로 남겨진듯한 외로움, 미뤄왔던 고민들에 비해 준비되어 있지 않은 현실에 대한 두려움, 해결할 수 없는 무기력함은 ROTC를 시작해서 졸업과 임관을 앞둔 나의 대학생활의 가장 큰 난제였다.     


 다행히 나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갔다. 주변의 도움도 있었고, 종교적인 도움도 다시 회복할  있었다. 1,2학년의 대학생활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3,4학년을 보내며 점점 다가오는 졸업과 임관을 대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때의 고민과 방황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다고 생각이 된다. 다만, ‘제때에  삶에 대한 고찰을 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지금은 최대한 제때에 나의 감정과 고민을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ROTC 후보생들은 어쩌면 일반적으로 조금 외롭고, 고독하고, 혼란스러운 시절을 보내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각자의 방식으로 극복해내며 졸업할 자격과 임관할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쟁취하는 것 같다. 스펙으로 제시할 수 있는 정량적인 발전과 성장보다, 더 큰 내면적인 성장을, 나는 이 시기에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를 잘 거쳐서 졸업하고 임관한 모든 학군장교들을 존경하고 응원한다.   

   

2021 대학 졸업식 당시 사진


2021 임관식 당시 사진

 졸업과 임관, 그 의미와 실재는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이었지만, 그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의 과정을 졸업과 임관을 통해 끝마쳤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나름의 방식으로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을 극복해낸 이들은 졸업과 임관 그 이후에 펼쳐질 더 많이 남은 인생을 보다 지혜롭게 살아낼 수 있는 능력을 얻었을 것이다.      


 그 시절의 내가 조금은 부끄럽지만, 그 시절의 내게 고맙다. 잘 버텨주고, 이겨내줘서.     


 (다음 화 예고) : EP4. 나를 따르라, 나 좀 따라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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