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나는 왜 보병이 되었는가]
안보딱.
“안이오 보병이 딱이야.” 내 본명보다 많이들은 대학교 4학년 즈음의 별명이다.
“보딱아~”하며 나를 불러대는 친구들이 글을 쓰는 이 순간 조금 그립기도 하다.
에피소드 2화를 맞아 최근 브런치 연재를 계획했던 나의 의도를 먼저 전해볼까 한다. 나는 통상 수필이나 경험을 다루는 글 혹은 문학 등의 글을 쓰기보다, 설명하고 비평하는 분석 글을 주로 쓰는 편이다. 주 관심사는 정치/종교/사상이고, 브런치 작가신청을 하며 제출했던 글도 앞서 말한 주제들을 가지고 썼던 어쩌면 조금 딱딱한 글이었다.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고, 처음 연재를 기획한 것은 보다시피 [알장알짱, ROTC 장교의 삶]이다. 지금 쓰는 글은 앞서 내가 주로 다루던 주제들과는 조금 다르고, 분위기도 사뭇 가볍다.
내가 브런치 첫 연재를 이와 같이 기획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작가 소개를 위함이었다. 누가 쓰는 글인지를 알리고 싶은데, 프로필에 그저 그런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소개하기보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이 누구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먼저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글을 통해 조금씩 나에 대한 정보를 노출할 생각이다. 둘째는, 일상을 가볍게 나눔으로써 독자와의 벽을 허물고 싶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재미없는 주제를 나만의 방식으로 재밌게 다뤄보길 원하는 작가이다. 그런 글을 누군가에게 읽을 수 있도록 창구를 마련하려면, 내가 관심 갖는 주제가 갖고 있는 독자들에 대한 진입장벽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허물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에피소드로 돌아가서,
나는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통상 ROTC 장교후보생들은 학과분류와 성적을 기준으로, 병과를 지망하여 선발된다. 보통 대부분은 일명 ‘보포기’라 불리는, 보병, 포병, 기갑으로 가곤 하는데,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대부분의 선배들은 ‘공보정훈’이라는 특기를 지망하고, 해당 특기를 부여받았다. ‘공보정훈’ 병과는 말 그대로 공보와 관련된 업무와, 정신전력교육, 언론/취재 활동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비전투병과’ 중 하나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공보정훈장교’가 될 줄 알았다. 사실 나는 정치외교학과에서 배우는 것들과 학과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분위기와 굉장히 잘 맞았다. 그래서 군대를 가게 되어도 학과 특성을 고려한 직책과 특기를 부여받으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앞선 화에 이야기한 것처럼 ‘폐급 후보생’이었지만, 학과가 특수해서 학군단 성적이 크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기에 앞선 선배들을 따라 공보정훈 특기를 부여받을 줄 알았다.
4학년 후보생이 되어, 임관 전 마지막 1년을 보낼 때에도 나는 학군단에 열정적이지 않았다. ‘어차피 군대 가서 열심히 할 건데 왜 지금부터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머리도 기르고, 군사학 수업에 그다지 의미를 부여하거나 열정을 투입하지 않았다.(지금에서는 조금 후회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말 그대로 ROTC 내에서는 ‘폐급’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제 그 타이틀을 즐기는 시기를 보냈었다.
내가 학군단 생활 중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은 축구였다. 나는 축구를 정말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고, 주변에서 꽤나 인정받을 만큼 잘 하기도 했다. ROTC 생활을 하면서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수요일 아침 체력단련을 마치고 운동장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겐 행복이었다. 3학년 때에도 4학년 선배들과 축구로 관계를 맺기도 했고, 동기생들과도 축구를 하며 정말 많이 친해졌다.
축구에 열정적이고 운동을 좋아하는 모습 때문인지, 4학년 2학기 병과를 지망하는 시점부터 친한 동기들 사이에서 ‘안보딱’이라는 내 별명이 생기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내가 보병을 가면 돈을 모아서 축구화를 사줄테니 보병학교에 가서 함께 축구나 하자며 이야기했다. 친구들은 “너는 보병이 딱인데”라며 놀리는 듯 나의 병과 지망에 대해 물어봤다.
“너는 병과 지망을 어떻게 쓸거야?”
“나는 정외과라 공보정훈 될 거야.”
공보정훈 특기를 받아서 미리 군 생활을 시작한 학과 선배들 조언에 따라서, 나는 공보정훈 병과를 지원하기 위한 자격증도 땄다. 학과와 자격증으로 나는 공보정훈이 될 것이라고 거의 확신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안보딱’이라고 놀려도 웃음으로 받아칠 여유가 있었고, 병과 지망 순위를 물어봐도 공보정훈을 확신한다는 듯이 이야기 했다.
1지망 : 공보정훈, 2지망 : 보병, 3지망 : 인사행정
1지망에서 무조건 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혹시라도 친구들 말처럼 공보정훈을 떨어지게 된다면 포병으로 끌려가기는 싫어서 2지망에 보병을 썼다. 1지망에서 떨어진다면, 다른 것은 볼 것도 없이 2지망 보병으로 가는 것이 확실하게끔 지원을 한 것이다.
어느덧 4학년 2학기도 마치고, 임관 전 마지막 입영훈련을 다녀왔다. 또 다시 한 달간 괴산에 위치한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딱 한 달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2월 한 달은 군대를 가기 전 온전히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훈련 중에도 퇴소 후의 한 달을 계획했다. 나도 혼자 여행을 가고, 주변 지인들을 모두 만나고, 졸업식을 즐겁게 보내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보내던 중, 타학교 ROTC 동기들을 통해 병과발표가 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같은 학군단 친구들 단톡방이 그 때부터 술렁였다. 대표 후보생이 훈육관님께 닦달을 하여 받아낸 병과 특기가 단톡방에 공유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안보딱ㅋㅋㅋㅋㅋㅋㅋ”
“이오야 힘내,,,”
“축구나 하자~”
조금 늦게 단톡방을 들어간 내가 볼 수 있었던 풍경은 위와 같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에 병과분류표를 확인했다.
안이오 - 보병
우려하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져서 잠시 멍해졌다. 혹시 잘못 봤나 하고 여러 번 고쳐봤지만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 후에 들어보니, 내가 임관하던 당시에 공보정훈 병과에 지망이 가능한 학과 범위가 대폭 늘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지원율이 높아졌고, 학군단 성적이 매우 저조했던 나는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든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든 상관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보병이 되었다.
(다음 화 예고) : EP3. 졸업과 임관, 그 의미와 실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