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악기발휘? 오기발휘!]
‘남은 군 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지난 화에 다루었던 에피소드의 충격은 이제 막 임무수행을 시작한 나로 하여금 진지한 기로에 서게끔 만들었다. 내가 과연 남은 군 생활을 정상적으로 마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일을 하기가 두려웠다. 그 때쯤인가, 종종 생각나던 주변사람들이 한번 씩 해주었던 말들이 생각났다. “고문관이 되면 차라리 속 편해”와 “앞서가지도, 뒤처지지도 않을 만큼 중간만 해라.”였다. 평소 나는 “경험하지 않는 것보다, 경험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살아나가고, 무엇이든 하면 앞서기를 좋아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가담하고 있는 일과 공동체에서 뒤처지거나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나의 성향과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기만큼은 앞서 말한 주변사람들의 말 위에 슬그머니 편승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실상 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던 찰나였다. 돈은 계급에 맞게 꼬박꼬박 들어오고, ‘열정페이’, ‘애국페이’ 등으로 생각하며 헌신적으로 일한다고 단기 자원인 나에게 실제적으로 이득으로 느껴질 만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일을 열심히 하지도 말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적당하게만 하고, 부대에 대한 애정도 적정수준으로 조절하고 슬그머니 살아가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은 저명한 사실 같았다. 어차피 지나갈 군 생활, 그냥 흘려보내듯 지나갈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힘을 뺄지, 힘을 좀 더 줘볼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내 선택은 ‘그래도 다시 한 번’이었다. 위와 같은 생각들이 지배적으로 찾아왔지만, 그렇게 타협한다면 앞으로의 내 군 생활과 인생이 그다지 생기 있지 않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라는 말처럼, 위기를 조금만 잘 지나보내면 내게도 군 생활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한 번 더 열심을 내보기로 했다. 그래서 속도는 느리지만, 내게 주어진 일들을 꼼꼼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하며 일을 진행했다.
인사과장이라는 이름의 참모로 일 함에 있어서, 군대에서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보고’였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고 처리할지 지휘관의 지침과 의도를 파악하는 작업이 곧 ‘보고’였다. 또한, ‘보고’의 가장 중요한 성격은, 일종의 ‘책임전가’이다. 참모로서, 특히 초급 간부로서 스스로의 판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들을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경험과 군 지식이 많은 지휘관에게 보고해야한다. 보고 된 문제는 지휘관이 책임을 지지만, 보고되지 않은 문제는 온전히 실무자의 책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대대장님 실 문을 노크하기로 결정했다.
적어도 07시30분에는 출근해서 그날의 업무들을 쭉 노트에 적었다. 출력해서 보고해야할 것들을 출력하고, 아침에 서명 받아야할 것들을 준비해서 08시쯤 대대장님 집무실 문을 노크했다.
“강철! 인사과장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대대장님. 오늘 인사 업무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 대사가 그 당시부터 전역을 100여일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의 내 루틴이고, 하루의 시작이다. 사소한 일도 최대한 보고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해서 누락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점차 일의 방향성이 잡히고, 누락되는 것들을 줄여나가며 적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대장님께서도 그런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사실은 처음 부대에 전입오자마자 대형 사고를 친 초급 간부라서 말 못할 고민과 고충이 많으셨을 텐데, 내가 다시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주시고, 보고하는 것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침을 주시며 소통해주신 대대장님께 소소한 감사의 인사를 전해드리고 싶다.
악기발휘? 아니 오기발휘!였다.
요즘에는 없어졌지만, 옛날 군대를 경험해본 이들을 통해 들어본 말 중에 “악기발휘”라는 말이 있다. 나는 처음 ‘아끼바리(?)’라는 일본어인줄 알았으나, 악기를 발휘한다는 하나의 단어라고 한다. 통상 이 용어는 선임자가 후임자에게 먹을 것을 많이 사주고 다 먹으라고 한다던가, 먹지 못할 음식을 먹으라고 하는 등의 부조리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임무수행한지 2주 만에 대형 인사사고를 친 초급 간부가 ‘악기발휘’까지는 아니더라도, 오기를 부려보자 다짐하며 꾸준히 버티고 일 해봤을 때, 그 오기와 노력을 인정받는 순간이 왔고, 보람 있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 사건이 있었던 7월 중순부터 3개월이 지나, 사단에서 ‘부대안전진단’을 위해 우리 대대로 찾아왔다. ‘부대안전진단’은 말 그대로 부대가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각 기능(인사, 군수 등)을 점검하는 행사다. 상급부대에서 지적을 포함해서 점검을 하러 오는 행사인지라, 걱정이 많이 됐다. 인접부대 인사과장 선배들은 대충 말로 때우면 된다고 이야기 했지만, 여기서도 오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가점검표를 확인하며, 점검표 항목들에 대해 증명할 수 있는 서류들을 취합해서 목록화하는 작업을 했다. 그것을 또 대대장님께 아침에 보고를 드리고, 더 필요한 부분들을 보완하는 작업들을 했다. 부대안전진단 당일, 사단 인사참모님과 안전보건장교님이 와서 이것저것 자료를 요구하셨고, 대부분 내가 준비해놓은 자료에서 다 증빙될 수 있게끔 준비를 해놓았다.
소위의 열정을 기특하게 봐주셨는지, 인사과장 3년차인 지금 생각해보면 부족한 자료였음에도, 사단에서 3명에게 주어진 사단장님 표창을 받게 되었다. 대대장님을 포함한 대대 간부들이 함께 제일인 듯 좋아해주었다. 특히, ‘안전분야’에 있어서 대형 인사사고를 쳤던 인사과장이 오기를 발휘하고 노력했던 것이 헛되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기회로 극복시켜서 성과까지 달성했다는 것을 함께 인정해주셔서 그동안의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는, 자신감을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인사업무를 처리해 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탄력을 받았다. 무엇보다, 위기가 찾아왔을 때, 나만의 방법으로 극복해내고 새로운 기회로 창출해낼 수 있었던 경험은 내 인생에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는 중요한 실전적 배움이었다.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다루기 껄끄럽던 업무였지만, 동일한 상황을 보다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껄끄러운 일을 피하기보다 더 꼼꼼하게 처리해보고자 하는 ‘오기 발휘’가 통했다. 이 것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좋은 경험’이었다. 스스로 장교로서의 자부심을 얻을 수 있는 계기였고,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애착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처럼 누구나 각자 나름의 의미를 군 생활에서 찾아내야 한다. 굳이 돈을 많이 모아서 전역한다든지, 사회 진출을 위한 자격을 많이 획득하는 것이 아니어도 된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을 얻어내는 것이다.(ㅋㅋ) 내게 불현 듯 찾아오는 마음이 꺾일만한 사건과 상황들이 있을지라도, 마음을 지켜내고 극복해낼 수 있는 힘을 길러내기에는 군대만큼 특수하고 적절한 환경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음 화 예고) : EP8. 아니 대체 어떻게 합격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