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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오 Mar 19. 2023

EP8. 아니 대체 어떻게 합격한거야?

[EP8. 아니 대체 어떻게 합격한거야?]     

살면서 잘했다고 명확히 말 할 수 있는 일 = 군 생활과 학업을 병행한 것     

 오기를 발휘하며 꾸역꾸역 일을 감당했지만, 누구나 그렇듯 ‘소위’로서의 군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지휘관 지시사항 이행, 훈련 참여, 상급부대 지시사항 이행, 재정행정업무, 간부 숙소 관리, 징계 관련 사항 처리 등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일들이 쏟아졌다. ‘온 나라’라는 행정 업무 시스템에 있는 ‘메모보고’는 시간 단위로 쌓여갔다. 과업을 잊지 않고 진행하기 위해 적어놓고, 완수 한 일은 삭선 했지만, 아무리 많은 줄을 그어도 아직 해야 할 일이 항상 더 많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그래도 앞선 화에서 이야기했듯이, 주변의 많은 선배ㆍ동료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꾸역꾸역 버텨나가던 차였다.     


 사실 ROTC가 확정되고, 군 생활의 목표가 있다면 세 가지였다.

① 저축을 통한 자금 마련

② 남는 시간에 영어 공부

③ 헬스     


 어쩌면 나 뿐 아니라, 나와 비슷한 학군 장교 후보생들의 일반적이고 현실적인 군 생활 목표일 것이다. 지금은 용사 월급의 인상으로 뚜렷한 이점으로 부각되지는 않지만, 장교로서 공무원 월급을 복무기간 동안 받고, 그것을 저축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것은 ROTC 장교들의 메리트였다. 또한, 출ㆍ퇴근을 할 수 있기에 퇴근 후 개인정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할 것 없는 군대에서 운동에 재미를 붙여서 ‘바디프로필’을 찍는 것도 나의 바람 중에 하나였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은, 전역일을 100일 남짓 남겨둔 시점이다. 짧은 군 생활을 잠시 되돌아보며, 처음 세웠던 세 가지 목표 중 목표치만큼 달성한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저축보다는 소비를 즐겼다. 대구라는 근무하기 좋은 여건 속에서, 차량도 구매를 하고, 이래저래 소비를 하다 보니 목표만큼의 저축을 해내지는 못했다.     

 남는 시간에 영어 공부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취미가 좀 많은 편이다. 구기 종목 위주의 스포츠를 좋아하고, 사람을 만나 약속을 잡는 것을 좋아한다. 또, 악기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긴다. 약간의 틈이 나면 즉흥 여행을 가는 것도 좋아한다. 대부분이 야근이었던 시절이었지만, 퇴근 후나 주말에는 보통 위와 같은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느라 영어 공부라는 최초의 목표를 쉽게 망각했다. 또 당시에는 중대장님을 따라 퇴근 후 골프를 배우러 다니면서, 굳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헬스는 꾸준히 해보고 싶었다. 보병학교를 마치고 함께 자대배치를 받아 지금까지 룸메이트로 생활하고 있는 동기를 따라 헬스에 재미를 붙이기 위해 노력해봤지만, 사실 재미가 없었다. 헬스가 필요한 몸이라는 것을 알고, 꼭 재미를 붙이고 싶었지만 몇 번의 시도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삶의 루틴으로 정착시키지 못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축구도 한 달에 한 두 번 할까말까하는 근무여건 속에서 내 딴에는 재미없는 헬스에 내 시간을 투자하기 아까웠던 것 같다.


 그렇게 최초 목표했던 것과는 다르게 군 생활을 하던 찰나, 허둥지둥 일을 하다가 당시의 나를 돌아보게 된 시간이 있었다. 10월쯤이었으니 자대를 배치 받고 약3~4개월 임무수행을 하고 있을 때였다. 처음 설정한 목표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삶의 패턴으로 살아가고 있고, 대구라는 좋은 근무 여건을 노는 데에만 활용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보병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책을 읽었을 때는, 머리가 좀 돌아가는 것 같았는데, 자대에 와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며 최소한의 생각만 하고 살아가는 내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마음을 잡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자     


 그 생각이 들고서야, 주변을 둘러보며 내가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대구는 대도시였고, 학교나 학원 등 공부할 수 있는 여건들에 대한 접근성은 좋은 환경이었다. 나는 궁극적으로 군 생활을 하며 사고가 메이지 않기를 바랐다. 학부 시절 정치외교학과 생활을 하며 비판적 사고와, 추론 등 능력을 함양했지만, 군대에서 상명하복을 일삼다보니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마비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학부 전공을 살려서 내가 잘 할 수 있고, 더 공부하고 싶은 것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인근 경북대학교가 있어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사회과학대학에서 운영 중인 일반대학원 전공 중 ‘정치행정학과’가 있었다. 전공을 살려 그곳으로 지원해볼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렇게 의미 있는 공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상 군 복무라는 현업이 있는데 일반대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학원이나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교육대학원’이라는 배너를 보고 자동적으로 클릭해서 모집요강을 살펴보게 되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교육대학원은 현직 교사들이 대부분 활용하는 교육과정이었기에, 주로 야간에 수업이 이루어졌다. 특별히, 일반 대학원은 졸업할 때 석사 학위만 받지만, 교육대학원을 졸업할 때는, 2급 정교사 자격증과 함께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메리트가 있었다. 마침, 대대장님과 차량으로 이동하며 나누던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대대장님께서도 대위 시절 학군단 훈육관을 하면서 교육대학원을 다니었다고 한다. 그 때 당시 단장님께 교육대학원에 가도 될지에 대해 의견을 여쭈어보셨는데, 당시 단장님께서 굉장히 쿨 하게 “해~!”라고 승인해주셨다고 했다.     


 이틀쯤 고민했을까. 다른 날과 같이 아침 보고를 들어가며, 대대장님께 퇴근 후 교육대학원을 다니고 싶어서, 지원해보고자 한다는 말씀을 드렸다. 대대장님께서도 나에게 말씀해주셨던 본인의 일화가 생각나셨는지, 약간의 미소를 지으시며 “해~!”라고 답해주셨다. 삶의 생기가 다시금 살아나는 듯한 감정이었다. 승인을 받고 난 뒤, 군으로부터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나, 군 위탁 정원 외 입학이 가능한지 찾아보았다. 하지만 나는 단기자원이었기 때문에, 국가가 내 학비까지 대줄 수 있지는 않았고, 전역예정일보다 졸업예정일이 늦었기 때문에 위탁 입학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냥 일반전형으로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정치외교학과 전공을 살려서 ‘일반사회’를 할지, ‘도덕ㆍ윤리’를 할지 고민을 했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고, 잘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학부 때에도 ‘정치사상’을 위주로 공부하며 즐거움을 느꼈었기에 ‘윤리교육전공’을 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음을 먹고 원서접수 일정을 알아보았다. 원서접수부터 시험과 면접을 볼 때까지 단 한순간도 평탄하게 흘러간 것이 없었다.     

주말에 EBS를 보며 윤리 공부를 했다. 일수로는 이틀.

 원서접수 전, 학점인정확인기간이 있었다. ‘윤리교육전공’을 하기 위해 학부 때 관련된 수업을 들었는지, 학점을 인정받아야 했다. 학점인정확인기간은 2주일이었고, 모두 평일이었다. 윤리교육전공으로 지원하기로 마음먹고 홈페이지를 봤을 때가, 학점인정확인기간 종료를 약 3일 앞둔 화요일이었다. 과 사무실에 부랴부랴 전화해서 절차를 알아보고, 서류를 작성했다. 서류를 제출하기만 하면 됐지만, 학교 근무시간도 부대 일과시간과 동일했기 때문에 시간을 빼서 학교로 다녀올 수가 없었다. FAX도 안되었기에, 난감한 상황이었다. 포기할까 생각을 하다가, 학점인정확인기간 마지막 날인 금요일에, 대대장님께 보고를 드리고 점심시간에 택시를 타고 다녀오겠다고 했다. 승인을 받고, 점심을 먹지 않고 택시를 잡아서 경북대학교로 갔다.     


 하지만 부대도 점심시간이었지만, 학교도 점심시간이었다. 과 사무실 문은 잠겨있었다. 몇 번을 두들기다, 점심시간보다 늦게 복귀할까봐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과 사무실 문 아래 틈 사이로 봉투에 담지도 않은 학점인정확인서 두 장을 밀어 넣은 채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부대에 복귀했다. 반 포기 상태로 일상을 보내던 찰나, 일주일 뒤쯤 전화가 왔다.     


“안이오 선생님 맞으신가요? 학점인정신청서 확인되어서 원서접수 가능하십니다.”


 기대도 안했는데, 과 사무실 조교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니 합격한 듯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당장 원서접수가 이틀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먼저 유웨이 어플라이로 원서접수를 했고, 그것을 출력해서 다시 제출하기만 하면 됐다. 마찬가지로, 일과시간에 다녀와야 했기에, 또 점심시간에 부대를 나가기는 눈치가 보였다.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다가, 다음날 당직을 내가 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다음날 근무취침 시간에 학교를 다녀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일 당직을 내가 서겠다며 다른 간부에게 부탁을 했고, 다른 간부 입장에서는 당직이 줄었기 때문에 좋아했다. 다음 날 당직을 서고, 근무취침을 하지 않고 학교로 향했다. 가는 길에도 여기저기에서 업무 관련 전화가 왔다. 비몽사몽 정신도 없고, 이런 저런 전화를 응대하며 학교에 가서 거의 마지막으로 원서를 제출했다.     


 마지막 남은 것은, 시험과 면접이었다. 사실 핑계지만 매일 같은 야근과 주말 출근 등으로 뚜렷하게 시험공부를 한 적이 이틀인가 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시험 당일날 휴가를 내놓기만 했다. 시험 전날 이발을 하고, 양복을 사야 했어서 그날만큼은 칼 퇴근을 하기 위해 미리 업무를 다 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부대 내 부조리 관련 신고가 접수되어서, 가해용의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징계관련된 절차를 급하게 시행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17시쯤 퇴근 시간이 임박했을 때, 대대장님께서 호출하셨다. 오늘 이 상황을 어느정도 마무리하고 퇴근을 해야할 것 같다고 하셨다.     


 23:50분 칼 퇴는 무슨, 역대급 늦은 퇴근 이었다. 대대장님과 작전과장님과 함께 아주 늦은 밤 퇴근을 했다. 더군다나, 다음 날은 휴가를 내놓은 상태였는데, 위와 관련된 일로 아침에 출근했다가 시험을 보러 가게 되었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 여느 때와 같이 군복을 입고 출근해서 09:30분까지 업무를 했다. 그리고는 빨리 잘 다녀오라며 대대 간부들이 배웅을 해줬다. 숙소에서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학교 근처로 가면서 옆에 보이는 ‘파크랜드’ 상설 매장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정장 하나만 빨리 주세요.”     


 대낮에 추격전을 벌이듯, 허둥지둥 사장님께 정장을 달라고 하니, 사장님도 적잖이 당황하셨는지 같이 허둥대주시며 정장을 주셨다. 몇 개의 선택지로 고를 새도 없이 그냥 결제를 하고 가지고 나오다가, 바지 길이를 줄여야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또 맞은 편 세탁소에 가서, 대충해주셔도 되니까 30분 안에 바지 기장을 줄여달라고 사장님께 부탁드렸다. 세탁소 사장님도 허겁지겁 정장 바지를 받아 들고서는, 제대로 계측도 하지 않고 수선을 해주셨다. 한 20분 만에 정장 바지 수선을 마치고, 탈의실도 없는 세탁소 구석 한 켠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막 학교로 출발하려던 찰나, 대대장님께 전화가 왔다. “이오야, 혹시 부대카드 너한테 있니?” 눈앞이 아찔했다. 다행히 세탁소가 있는 위치가, 부대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철물점 근처였기 때문에 카드를 철물점에 맡겨 놓고, 다른 간부 통해서 받아갈 수 있도록 임기응변을 했다.     


 다시 엑셀레이터를 밟아서 경북대학교로 달렸다. 대대장님께서는 내심 미안하신 마음에,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보내주시며 시험과 면접을 응원해주셨다. 하지만, 시험과 면접을 위해 준비한 것도 없고,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었다. 경북대학교 앞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으며,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논술 시험에 활용할 수 있는 시사 상식을 알기 위해 뉴스를 보는 일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시험장으로 들어섰다.

    

 시험은 논술형으로, 여섯 문제 중 두 문제를 골라서 쓰게끔 출제 되었다. 시험지를 받아드니, 내가 그나마 꾸역꾸역 쓸 수 있는 문제가 두 문제였다. 그 사실에 감사하며, 진지한 마음으로 답안을 작성했다. 모두 제출을 하고, 면접 대기실로 이동했다. 한 교실의 반 정도를 채울 정도로 지원자가 있었고, 대부분 현직 교사 같은 느낌을 풍겼다. 그래서 더 긴장이 됐지만, 그래도 쉽지 않았던 입시 여정이 면접만 마치면 끝난다는 생각에 얼른 면접을 보고 부대로 복귀하고 싶었다.     

면접 당일, 허둥지둥 산 정장과 함께

 앞서 면접을 보고 나오시는 분들을 보니, 들어 간지 3~4분 정도 되어 나오는 것을 보며, 너무 짧게 끝난 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면접장에 들어가서, 별 다른 질문은 받지 않고, 어디 부대 근무 중인지 등 입시와 관련 없는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고는 교수님께서 “전공자가 아니라서 이번 시험 어려웠을 거예요, 이번에 지원자가 많아서...”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묘한 기분 나쁜 감정을 않고, 다시 현업으로 복귀하기 위해 차 시동을 켰다.     

 그렇게 입시는 끝났고, 여전히 허둥지둥 인사과장으로 살아갔다. 한 달쯤 지났을까, 합격 발표날이 되었다. 마침 금요일 조기퇴근의 날과 겹쳐서, 얼른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확인을 했다. 합격이었다. 대체 어떻게 합격이라는 결과가 나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직까지 신기하지만,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 중 하나로 군 생활을 하며 학업을 병행한 것이라고 아직까지 생각한다. 처음 군 생활 목표로 잡았던 세 가지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남들은 쉽게 누릴 수 없는 군 생활과 대학원 학업의 병행을 할 수 있다는 가장 큰 이점을 얻어냈다. 이를 통해 향후 진로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군 생활 동안 머리를 굳히지 않고 공부를 하며,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교수님과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다.     

 만약 입대를 앞두고 있거나, 복무 중인 장병들이 있다면 꼭 학업과 병행하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나처럼 대학원을 다니는 것이 아니더라도, 위탁교육, 사이버대학원, 원격학점인정, 군 복무 학점인정 제도, K-Mooc을 통한 학점은행제 등 군에서 지원하고 승인하는 여러 루트의 학업 시스템을 활용했으면 좋겠다. 물리적으로는 대부분 비슷한 군 복무 기간이지만, 그것을 얼마만큼 자신에게 이익이 되도록 활용하는지는 개인에게 달렸다.     

합격 후 경북대학교 북문에서

 (다음 화 예고) : EP9. ◆◆, 능성에서 복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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